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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472 추천 수 0 2016.08.21 15: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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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3:13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3장 13절: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진리대로 사는 성도가, 거룩한 성도가 왜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일까?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사람을 보면 어떤 경우에 미움을 받느냐? 바른 말하는 사람. 그러면 나쁜 소리, 더러운 소리, 사람 같지 않은 소리를 해서 미움을 받는 것과, 옳은 소리, 바른 소리, 사람을 바로 세우는 소리를 해서 미움을 받는 것과 비교를 하면 어느 것이 나으냐?


그러면 바른 소리를 해도 미움을 받을까봐 겁이 나고, 또 더러운 소리를 해서 미움을 받는 것도 싫고 하면 가만있으면 되겠느냐? 가만히 있으면 미움도 사랑도 안 받는 거냐?


세상은 잘못 투성이다. 선악과 따먹고 타락된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예수 믿으면서 생명과를 먹고 즉,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사람은 극히 적다. 그래서 교회마다 세상 속화된 말을 하니 교인들마저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수준이 됐기 때문에 옳게 바르게 살려고 하는 교인을 향해 핍박을 하게 된다. 지금 그 말이다.


오늘날 모든 교회들이 지금은 말세라고 하는데, 그러면 이 말을 하는 것이 신앙이 바로 됐다는 말이냐,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쪽으로 들어가 있다는 말이냐? 말세의 교회가 하는 일들을 보고 말하는 거다. 교인들이 이걸 잘 모를 때는 안 믿는 세상이 되어지는 것을 보고서라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비유해서 교회는 빛이다. 밤의 달과 같고 하늘의 별과 같다. 그래서 나그네로 사는 사람들의 뱃길을 알려주는 거다. 교회는 그런 역할이 들어있다. 교회는 수준적으로나 위치적으로나 존귀적으로나 천상에 속한 신분이라는 면에서 ‘해 달 별’로 말을 하는 거다.


지상의 스타, 배우나 가수들이나 운동계의 그런 스타들을 따라가지 말아라. 그건 땅의 운동이다. 믿는 사람으로서 건전한 체육도 있다. 이건 적당히 하면 된다. 그런 정도는 돈 주고 할 필요는 없다.


모든 교회들이 지금이 말세라고 한다면 복음의 날을 더 예리하게 세워야 하는 것인데, 영적 감각성적인 면에서 구별하고 분별하고 민감하고 민활하고 민첩하고 예리하게 세워야 하는 건데 그렇지 않고 이방 불신세상에게 더 잘 보이려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그런 사람들의 기준에 들도록 그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대로 정신 사상 소원성을 따라가면서 그 밑에서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충성봉사를 해 주느라고 교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주 열심이다. 웬만한 교회에서 이걸 다 볼 수 있다. 문제는 바로 믿으면서 그런 환경과 그런 일들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가는 게 아니라 신앙을 그렇게 해야 만이 신앙이라고 기준을 세우는 게 문제가 되는 거다.


그런데 본문에 왜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한 것일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은 연장이나 좋은 칼이 되려면 그냥 쇠몽둥이를 갖다가 두들기면 되는 게 아니라 불속에 시뻘겋게 달궈서 자꾸 쳐야 한다. 그러면 쇠똥이 떨어져 나간다. 그래야 좋은 연장이나 칼이 된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사람 속에서 사람을 만들려면 사람 속에서 이런 저런 별의 별 사람을 다 겪어야 한다. 그게 사람을 훈련하는 거다. 그런데 보통 보면 자기 자기를 늘 위해주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만 상대하려고 한다.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하듯이 우리는 아닌 말로 사서라도 고생을 해야 한다. 이건 사람 됨됨이를 말하는 거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건 자동적으로 돼 있다. 교회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이런 사람들과 관계를 지으며 겪는 거다. 겪으면서 깨닫는 사람은 자기 발전이 되는 거다. 모르면 남 잡고 싸운다.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로 들어가는 물의 발원지가 헐몬산이다. 헐몬산은 눈 덮인 산이다. 강물이 거기서 출발을 해서 내려오면서 이스라엘의 들판을 적시고, 요단강으로 내려오면서 들판을 적시고 짐승들을 먹이고 한다. 그렇게 해서 헐몬산에서 출생한 강물이 들판을 내려오며 들판과 짐승들을 살리고, 바다로 들어가면 고기를 살리고, 이렇게 해서 종착지가 사해바다다. 헐몬산에서 출생 시작된 그 물이 사해바다에서 자기의 일생을 마친다. 이걸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과 같다. 출생해서 사는 과정에서 많은 생물들을 살리고, 그리고 자기 끝은 사해바다에서 일생을 고하는구나.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남을 살리는 일이 많은지,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살다가 남 살리는 것 없이 자기 일생을 마치는 건지? 모든 산천초목 들판을 보면 전부는 깨달을 거다.


미움을 받는 교회는 좁은 길 진리 길 생명 길을 가는 교회요, 이게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좁은 길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세상에게 잘 보이려는 교회는 이방인들과 같이 가는 길이다. 이거는 하나님과의 의사단일성이 아니니까 제각각 제 멋대로 가는 넓은 길 사망 길 심판의 길이다.


좁은 길로 가는 성도들은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말을 하면 이 옳은 것이 자동적으로 자신들의 옳지 못한 것을 정죄를 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그걸 듣기 싫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넓은 길로 가는 교인들이 좁은 길로 가는 성도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예수 믿어 천당’만 알지 구원을 뜻을 모르는 거다.


우리는 그 수준에 머물면 안 된다. 마귀도 귀신도 이 정도는 다 안다. 이런 자는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모르는 자들이다. 오늘날 교회가 자기를 인간으로 지으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바로 안다면 바로 믿는 사람인데 대부분 이걸 모른다. 우리는 알면 묻는 자들에게 분명히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자가 돼야 한다.


자기의 출생목적과 재세기간의 목적을 모른다면 인간으로서 창조의 목적이 없이 사는 인간이다. 자기를 지을 때 분명한 목적이 있는 존재로 지었는데 그 목적이 없이 사는 인간이구나. 자기의 출생목적, 나그네 세상에서 재세기간의 존재목적이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걸 무시하고 살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 이것을 모른 채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하고 살다가 세상에게 걷어차이면 어떻게 할 것이냐? 세상이 자기를 싫다고 걷어차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자기 속에서 세상을 붙잡으려다가 세상에게 걷어차이면 자기는 어디에 붙어서 살겠느냐? 신앙의 세계는 영적인 정신 사상의 세계인데 물질성적인 개념으로 살다가 세상이 싫어서 ‘네 까짓 거’ 하고 쫓아내면 어디로 가겠느냐? 세상을 소원 목적하는 자기가 어디를 간들 받아주겠느냐? 박쥐신세가 되면 안 된다. 박쥐신세는 죽을 지경이다. 세상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비참한 신세다. 이런 자들은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을 모르는 자들이다.


믿는 사람의 생각의 출처와 안 믿는 사람의 생각의 출처는 다르다. 안 믿는 사람들은 땅에 기반 기초를 두고 생각을 갖는 것이고, 이건 육의 생각이다. 믿는 사람은 하늘에다 자기 생각의 근거를 둔다. 이건 영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 땅에 살지만 모든 이해타산을 하늘의 것에 두고 사는 이건 영의 생각이다.


그리고 성령의 일과 악령의 일을 모르면 어떻게 되겠느냐? 무턱대로 ‘예수이름으로’ 하면 하나님의 일처럼 생각을 한다. 사단 마귀는 성경구절을 가지고 세상적 임시적인 일을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땅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천국의 일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세상의 일인가? 교회 가면 천국의 일이고, 집에서 빨래를 하면 세상의 일인가? ‘천국의 일이다’ 할 때는 어디서 무엇을 하건 자기의 그 중심이 천국에 걸쳐서 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이해타산이, 자기의 소원 목적이 그 마음으로 이 땅에서 일을 하는 것은 자타의 구원을 위한 일이요, 이게 천국의 사상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좁은 길 넓은 길을 모른다. 왜냐? 교훈의 성격 성질을 모르니 이걸 알 길이 없다. 예수이름으로 하면 무조건 좁은 길인 것처럼 안다. 이게 하나님의 의사냐? 아니다. 교회에서 사역목적으로 하면서 성경구절을 둘러씌워서 예수이름으로 하면 그게 좁은 길이냐? 아니다. 넓은 길이다.


구약의 에덴동산에서 생명과는 먹고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했는데, 어느 교회 집사가 선악과가 무화과라고 했다던데, 그러니 별스런 일반사람에게도 속아 넘어갈 수 있는 성질이 그 안에 들어있는 거다. 예수님을 오래 믿으면서 구별도 분별도 못하고 있다면 속에 무엇이 들었겠느냐? 이방인들과 똑같이 들어있다. 이런 사람은 결과적으로 옳은 성도를 환난 핍박을 하게 된다. 옳은 것에 호응이 아니고 자꾸 걸고 들어온다. 이게 대립 마찰 충돌자다.


강대국 이방 로마의 세권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 종교인들이 합세하여 예수님에게 고난주고 핍박을 주고 죽인 것이다. 교회가 이방세력과 합세가 되면 구원이 죽는다. 자기 속에서도 세권과 교권이 합세가 되면 자기 속에 이뤄져야 할, 깨달음이 돼야 할 그게 안 이뤄진다. 그걸 죽여 버리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교훈적인 면에서 공기 중의 마셔서는 안 될 독성성분이 자기 속에 들어가면 자기는 죽는다. 똑같다. 선악과는 다른 게 아니라 성경구절을 이용하면서 세상 소원 목적성으로 들어가면 이게 선악과다. 에덴동산에서 ‘생명과는 따먹고 선악과는 먹지 말라’ 한 것은 무슨 과일을 따먹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고 교훈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러니까 먹어야 할 말씀에 순종, 안 먹어야 할 순종. 이게 바뀌면 안 된다. 그러니까 교회에서의 교훈의 말씀이 생명과가 있고 선악과가 있는 거다. 이건 신앙의 세계에서 정신 사상적으로 보는 거다.


예수님은 생명과다. 그러면 선악과는 마귀냐? 아니다. 마귀가 세상을 붙잡고 자랑하는 거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에게 ‘예수 잘 믿으면 세상에서 부자 된다’ 하는 눈으로 보는 보암직의 교훈이 들어있는 거다. 이 교훈의 중요성을 강조하자니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와서 ‘이건 먹고, 이건 먹지 말라’ 하는 거다. 무화과는 선악과가 아니다. 무화과는 열매 속에서 꽃이 핀다. 성도는 속에서 꽃이 피는 거다.


가인의 후손들과 타락된 하나님의 아들들이 합세하여 방주를 짓는 노아와 그 식구들을 핍박을 주었다. 소돔 고모라의 향락과 쾌락의 정신을 가진 모든 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길을 가는 성도들을 미워하게 돼 있다.


진리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 교훈대로 살면 세상에서 어떻게 밥 먹고 사느냐’ 하는 마음이 있느냐? 예수 바로 믿으려면 말씀대로 살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주일날 나가서 일하다가 하나님께서 ‘일곱 배로 이자를 내놔라’ 하면 어떻게 할 참이냐? 구약에 안식일 날 만나에 욕심을 부린 자들이 제대로 먹었느냐? 벌레가 쓸어서 하나도 못 먹었다. 그러나 말씀대로 순종을 하니까 적은 자도 모자람이 없다.


우리가 옳은 진리이치를 받는다면 이제 성격적 성질적으로 자기를 고쳐나가야 한다. 믿음이 없거나 안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성질 성격을 보고 있다. 그러니 진리를 알고 모르고는 나중 일이고 우리 입장에서 진리를 따른다면 자기 성격도 성질도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면 인인 연관관계도 잘 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신앙적으로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되면 하나님과 불통되는 건 없다. 이건 들어가도 나가도 복이다. 이건 없이 지식적으로만 알아서 모르는 사람에게 자꾸 억압 강압적으로 전하려고 하니 대립이 생기는 거다.


우리 자신들의 경험을 보면 예수 믿기 전의 친한 친구는 예수를 믿은 후에는 자연히 더 가까워지느냐, 멀어지느냐? 헤어지게 된다. 왜 그러냐? 성격과 성질이 달라져서다.


첫째는 바른 말씀을 받으면 자기 속에 감화되는 영감성이 이방 불신세상 사람과는 다르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과 백 날 같이 있어봐야 맨날 돈 얘기, 집 얘기뿐이다. 그러나 예수 바로 믿는 사람은 성경얘기로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그러면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사람이 늘 물질 얘기, 돈 얘기를 하면 피곤하다. 안 믿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하면 그래서 피곤한 거다. 이렇게 되면 하나는 좁은 길이요, 하나는 넓은 길이기 때문에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이 절대로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같이 못 가는 거다. 그래서 친구가 떨어지는 거다. 알고 보면 내 쪽에서 버리는 것이 아니고 그가 싫다고 나를 버리는 겪이다.


인생의 정로를 바로 알면 어느 것이 주격적 사람이고 어느 것이 주격적인 생각인지를 알게 된다. 예수 믿으면서도 믿는 사람과 절친하지 않고 안 믿는 사람과 절친하다면 이건 안 믿는 사람이 자기에게 오는 거냐, 예수 믿는 자기가 안 믿는 사람 쪽으로 가는 거냐? 믿는 자기가 안 믿는 쪽으로 가는 거다.


이 설교는 ‘예수 잘 믿어 세상에서 부자 되자’ 하는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니고 ‘실질적인 삶에서 자기의 정신 사상이 어떻게 돌아가면 어떻게 되겠구나’ 하는 걸 말하는 거다. 그래서 인생살이도 경험이 많아야 되겠구나. 그러면서 이치도 바로 알아야 되겠고. 그런데 성경에 보면 말세로 갈수록 젊은이들로 하여금 지도자로 삼는다고 했다. 정치세계도 그렇다. 사람을 인도하고 국민을 다스리려면 경험도 많고 노숙한 데가 있어야지 자기 감정이나 세우고 하면 안 된다.


예수 믿으면서 자기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이 안 믿는 사람과 얼마나 다른 건지, 아니면 똑같은 건지? 이걸 생각을 하면 자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안다. 따라가고 있는 건지, 인도하고 있는 건지? 예수님을 바로만 믿고 바로만 전하고 바로만 받아들여진다면 정신이 살아나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게 돼 있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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