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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409 추천 수 0 2016.07.31 18: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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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3:5-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3장 5절-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본문 앞에 보면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성전을 자랑했다. 예수 믿는 자들이 큰 건물자랑을 잘 한다. 세상 사람들도 건물자랑을 잘 한다. 교인들도 자기 교회 예배당이 크게 지어졌으면 자랑을 한다. 주보에도 기독교 신문에도 자랑스럽게 예배당 사진을 넣는다. 지하에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그 지하 예배당을 신문에 내겠느냐? 뭔가 떳떳해야 자랑을 하고 신문에도 내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이 무너진다고 하셨다.


그 앞에 보면 부자들이 많은 돈 가운데서 헌금을 한 게 있고, 가난한 과부가 헌금을 한 게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지은 성전이 있고. 이걸 보면 ‘교인들의 헌금을 가지고 무너질 것에 다 써버렸구나’ 이런 느낌이 든다.


부자들은 헌금을 해도 많이 있는 가운데 일부를 헌금하는 거니까 그냥 내는 거지만 가난한 과부의 구차한 중에 내는 것은 생각을 해 봐라. 그런데 주님은 참 과부를 자랑을 하신다. 참 과부가 아니면 그런 자랑을 안 하신다. 그러면 왜 참 과부라고 했을까? 이 과부는 부잣집 사람들이 헌금을 해도 그거 부러워하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유혹 미혹을 해도 자기의 신앙신조를 하나님 앞에 잘 지킨 느낌이 간다.


그렇다고 해서 과부보고 시집가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을 잡고 사느냐, 세상을 잡고 사느냐’이다. 과부가 아니라도 세상을 붙잡고 살면 주님은 바로 안 보신다. 부부가 같이 살아도 신앙정조 면에서 한 신앙으로 산다면 부부라도 참 과부이다. 이런 사람은 신앙정조 면에서 참 바르다는 표현이 붙는 거다. 과부라는 표현 속에는 이렇게 보면 이런 뜻이 들어있고 저렇게 보면 저런 뜻이 들어있다.


1절부터 보면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께 성전건물을 자랑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니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묻기를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어느 나라 군대가 들어와서 무너뜨릴 런지 그 연대와 날짜를 잘 측정해 봐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성전이 무너지는 것이 어디서부터 온다? 사람의 미혹에서 온다. 그러니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하라. 너의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전이다. 그런 네가 신앙정조를 세상에 팔아먹거나 네 속에 세상이 들어오면 너는 신앙 믿음이 무너지는 사람이다. 사상적 정신적으로 하는 말이다.


지금 사람의 미혹이 많다. 안 믿는 사람이 믿는 우리에게 와서 유혹 미혹을 하면 정신없는 사람은 넘어가지만 웬만한 사람은 그런 데 넘어가지를 않는다. 그런데 교회의 거짓된 인도자들이 세상을 가지고 와서 교인들을 미혹을 하면 거의가 넘어가 버리기 때문에 그런 데 미혹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다.


이단자들, 거짓 종들이 교회 안에서 물질 팽배성을 가지고 별짓을 다 한다. 돈 많은 교회는 주일학생들을 데리고 외국관광도 시켜주고, 부자교회는 교회버스가 있으니까 교인들 태우고 구경 가는 그 위주로 나간다. 그렇게 예수 믿는 것이 좋아서 그 쪽으로 마음이 건너가는 게 다 유혹 미혹이다. 유혹은 물질성으로 들어있고, 미혹은 세상적인 가르침으로 자기 마음을 뺏어가는 거다.


사람의 유혹은 대부분 미혹에서부터 온다. 성경의 역사를 계시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니까 이방우상을 의지하고 물질을 따라 살게 되었다. 그러니까 믿는 우리는 먼저 자신의 정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 거다. 이룰구원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거다.


‘말씀을 붙잡겠느냐, 세상을 붙잡겠느냐’ 그 둘밖에 없는데 네 자유를 가지고 어느 것을 붙잡겠느냐? 너에게는 절대적인 자유가 있다. 네 자유를 마귀가 와서 빼앗고 그런 게 아니다. 진리생명의 말씀을 붙잡을 때 마귀가 와서 손을 탁 치면서 뺏는 게 아니다. 또 내가 세상을 붙잡고 그 목적으로 살 때 하나님이 오셔서 내 손을 탁 치는 게 아니다. ‘말씀을 붙잡느냐, 세상을 붙잡느냐’ 하는 건 바로 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는 가치판단을 분명히 가지게 해줘야 하고, 영육 구별을 시켜주고, ‘어느 것이 사는 거고 어느 것이 죽는 거다’ 하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줘야 한다. 그 다음에 ‘네가 어느 것을 붙잡느냐’ 하는 것은 네 책임이다. 그래서 형벌이 들어가는 거다.


‘자기 사는 것이 이것이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서 사는 건데 내가 무엇을 붙들었느냐’ 하는 것은 ‘자기의 삶의 목적적 이해타산이 어디에 저울추가 많이 내려져 있느냐’에 따라 되는 것이고, 바로 그것이 현재 자기의 신앙 믿음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본질에 입각해서 내가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을 이뤄가는 것이 믿음이지 그게 아닌 세상화로 들어가면 그건 믿음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거다. 굳이 붙인다면 그건 세상믿음이다.


현재적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에서 떠나게 되면 떠난 것일수록 그만큼 세상이라고 하는 물결이 자기 속에 자꾸 차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자기의 정신과 사상은 이방군대가 그냥 들어올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가서 싸우는 것은 그만큼 힘이 약한 거다. 왜? 안에서부터 이방화로 됐으니까 이방군대가 들어오면 그냥 무너지게 돼 있는 거다.


성경에 어린아이까지 다 죽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을 가지고 계시적으로 볼 때 죄악의 씨는 절대로 남기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보면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정신은 절대로 용납이 되지를 않는 것이다. 믿는 우리는 신앙 영적 사상이 기준이 돼서 몸을 의의 병기로 써야 되는데 정신부터가 세상화로 돼 있으면 몸은 죄를 짓는데 쓰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고수한다고 하면서 지금의 땅을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고 하며 지키고 있다. 그래서 자기 나라에서 전쟁이 나면 다른 나라에 나가있던 청년들이 싸움에 참가하려고 스스로 돌아온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영적 신앙은 아니다. 구약에 보면 모세가 애굽 안에서 고생하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같이 고생으로 뛰어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나만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게 들어있다.


근본 본질로 보면 매사에 자기 마음에서 신앙 믿음 쪽으로 ‘땅’ 하고 내려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를 붙이게 되면 그 마음의 움직임은 벌써 한 쪽으로 건너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꾸 원망불평이고 딴소리가 붙게 되는 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심령을 가지고 판단을 하신다. 여러 변명이 필요가 없는 거다.


발람 선지자가 변명이 참 많다. 발락으로부터 뇌물이 왔으면 ‘이거는 안 된다’ 하고 딱딱 끊어버리면 될 건데 발람은 이미 이방정신이 들어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해보고’ 라고 말을 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해달라고 하는 거니까 그거는 기도해보고 말고가 없는 거다. 척 하면 판단이 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간다? 자기 속에 이미 이방정신이 들어있는데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니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니 가는 거다’ 라고 변명하기가 참 좋은 것이다. 그러니 발람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속에 교활성이 들어있다. 이건 사단의 짓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 생각이 마귀 쪽으로 교활성이 일어나면 딱딱 잡아라. 그걸 잡을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이방을 의지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군대를 불러서 징계를 했다. 그러면 전쟁으로 오는 이 징계에 하나도 안 죽겠느냐? 이방군대들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살을 하고, 아이들을 메어치고 둘러치고, ‘이거는 몇 개월이 됐나’ 하고 아이 밴 여자의 배를 가르고 했다.


왜 그런 장면을 눈으로 보여주느냐 하면 네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형태의 정신이 들어있다고 하는 것과, 그런 것이 들어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철저한 징계를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의 모든 움직임은 육의 생각으로 되었건 영의 생각으로 되었건 자기 생각에 의해서 되는 거다. 남이 억지로 하게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수종들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사이에서 중보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 역할은 예수님께서 하실 구속사역의 역사가 상징적으로 들어있는 건데 이 대제사장의 입에서 ‘우리의 왕은 로마황제 가이사니이다’ 라고 했다. 당시 로마황제는 이방나라에서 제일 우두머리 강대국의 왕이다. 대제사장 입에서 이런 이방나라의 왕을 자기 나라의 왕이라고 했으니 유대민족의 미래는 이미 끝난 거다. 다른 말은 필요가 없다.


오늘날 직분적으로 교회를 관할하며 하나님의 성경을 가지고 가르치는 종들의 입에서 세상 기준성의 말이 나온다든가 세상 정치적인 그런 위주로 나간다면 이건 다 끝난 것이다. 그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영적 역사는, 이룰구원의 역사는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나가고 있으면서도 ‘영적 면에서 죽었나 살았나’ 하는 그걸 모르고 있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께서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뭘로 보여주느냐? 눈으로 나타나 보이는 가견적 가식적인 전쟁이나 분쟁이 오게 돼 있다. 그걸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징계로 교회가 분쟁이 나서 교회가 쪼개질 때에 교인들은 어떤 이해타산으로 가서 붙느냐? ‘이쪽에는 돈이 많다’ 하는 쪽으로 붙느냐, 참 옳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쪽으로 붙느냐? 진리본질의 신앙이 없다면 제 멋대로 나가게 돼 있다.


참 목자가 없으면 양들은 이리 저리 흩어지게 되어있다. 이렇게 되면 표현을 하자면 이리가 양의 가죽을 둘러쓰고 ‘내가 목자다’ 하는 식이 되니까 이리저리 심리작전을 하는 거다. 이런 걸 얼마든지 볼 수가 있다.


‘우리의 왕은 로마황제 가이사니라’ 한 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알고 보면 미혹자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마귀의 자식들아’ 라고 했고, 세례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한 것이다. 이게 이방인들을 보고 한 말이 아니다. 로마사람들을 보고 한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보고 한 말이다.


거짓된 지도자들 인도자들은 미혹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친다고 하고 있으나 백성들로 하여금 세상을 로마를 더 의지하게 하고 있으니 이건 에덴동산에 나타난 마귀나 예수님께 세 가지 시험을 친 마귀의 짓과 똑같다. 성경을 들고 와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이치만 바로 알면 마귀의 종, 미혹자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가르침은 백성 하나하나가 신앙인지 세상인지 구별을 못하게 혼합으로 만들어 놨구나. 혼성 혼돈 혼란 혼잡으로 만들어 놨구나. 그러니까 말씀이 구별이 안 되는 거다. 그런 가르침에서는 그 인도자의 신앙사상이 어떤 것인지 구별이 안 된다. 그러니 별별 사람들이 목회한다고 일어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교회의 많은 인도자들이 미혹을 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구원 되는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대로의 구원이 되려면 하나님과 의사단일이어야 한다. 생명 길 좁은 길은 하나님과의 의사단일이요 영생 길이다. 그런데 교인들을 세상으로 자꾸 데리고 나가면 그건 넓은 길 사망 길이다. 그렇게 되니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세상 이방인들과 이방종교인들과 세 부류가 다 같이 손을 잡고 가게 되니 모든 사람들이 세상 넓은 길, 선악과 먹은 사상과 정신대로 죽음으로, 사망 길로 홍수처럼 내려가는 거다. 그러니 사람이 한 쪽으로 막 몰리는 그 면만 보지 말고 이방인이나 기독교인이나 정신이 어디로 몰려가고 있는지를 궤뚤어 봐라. 예수 잘 믿는다는 건 그런 걸 보는 거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셨듯이 이런 걸 잘 보는 눈이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가 있는 거지 그렇지 못하고 미혹된 가르침을 받으면 그 사람은 심령성전이 먼저 무너지는 거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에서 비진리로 가면 자기의 신앙은 다 무너지는 거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무너진다는 걸 결과적으로 미리 볼 줄 알아야 한다. 자신부터 먼저 뭘 받고 있느냐에 따라 결국은 무너지게 된다는 볼 줄 알아라. 사람이 비진리의 정신을 가지면 그 사람은 결과적으로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라. 자신이 무너지는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이치적으로 안다면 다른 사람이 무너지는 것도 안다. 눈이 밝으니까 그렇게 된다.


미혹의 외식된 운동을 중점으로 하는 자들이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들을 무너지게 만들고, 그렇게 되면 그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방군대들을 보내서 전쟁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무너지게 하듯이 영의 눈으로 보면 오늘날 기독교 안이 다 무너졌다. 세상 마지막 때 미혹의 영 거짓의 영을 가진 교회의 인도자들이 예수이름으로 많이 나온다고 했다. 그들은 껍데기는 예수이름을 말하지만 속사람은 세상 그대로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 율법자들도 속에 든 것은 교권이고 세권이다. 이런 신앙자가 가르치는 것은 전부는 세상 속한 것이다. 이걸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로 보면 전부가 외식이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르친다는 모든 자들이 세상적인 육에 속한, 세상에 속한 외식신앙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준 성경 즉, 율법 안을 들여다보면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돼 있다. 성경의 성문율이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문율이 나의 죄를 지적할 때에 ‘아이고, 큰일났구나. 이 죄를 어떻게 하지?’ 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예수를 만나는 쪽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모세율법을 가지고 가르치는 그 가르침을 받으면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다. 왜? 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가르쳤기 때문에 백성들이 미혹을 당해서이다. 그래서 율법주의로 나가는 자들은, 문자주의로 나가는 자들은 미혹자들이다.


당시의 바리새교인들이나 율법주의자들이나 사두개교인들은 정치색을 띤 세상성의 신앙자들이다. 바리새교인들이나 사두개교인들이나 헤롯당파 모두는 미혹자들이요 잡탕들이다. 오늘날도 교회가 정치교회 문화예술교회가 많다. 배우들이 많이 나가는 교회가 어느 교회냐?


예배당 안의 모임 속에는 별의 별 사람이 다 온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오건 생명 길 좁은 길로 뽑아나가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떡방앗간에서 기계에 쌀을 집어넣고 찧으면 처음에는 쌀알 하나하나가 제각기 뒹굴고 튀어나가지만 쌀알 개체 하나하나가 갈리게 되면 개체로 돼 있는 쌀알이 하나가 되고, 이것을 시루에 넣고 열을 가하면 맛있는 떡이 돼서 나온다. 그런 이치와 똑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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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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