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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285 추천 수 0 2016.04.11 09: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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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0:28-34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0장 28절-34절: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 앞에 연속으로 보면 영생 받은 걸 전제하고, 그리고 ‘핍박을 받되’ 했는데 핍박은 알고 보면 시련 연단을 해서 영능의 실력자로 만들어지는 일이니 감사 찬송할 일이다. 주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으시니 이것이 믿어진다면 자기의 믿음을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내 신앙 믿음이 질적인 면에서 천국복음에 적중성인가?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될 자로서 먼저 될 자가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람마다 누구든지 가장 훌륭한 으뜸이 되고 싶어서 밤낮으로 뛰는 것이지 꼴찌 하려고 뛰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꼴찌가 되고, 못난이가 되고, 왜 처절하게 되는 것일까? 그와 같은 격차가 왜 생겼을까? 누가 자기를 꼴찌가 되라고 뒤에서 잡아당겼나? 자기 자신의 마음에 의해서, 정신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느냐?


신앙인격의 세계에서는 한 번 추월당하면 그걸 따라잡으려면 두세 배의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잘 안 된다. 왜 안 되느냐? 자기의 시간과 나이와 건강과 물질과 환경의 조건이 자기가 생각을 먹은 대로 두 배나 뛰어지는 것이냐 하면 아니다. 하루 동안에 자기에게 무슨 돌발적인 일이 일어날 런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물질세상에서는 추월이 있지만 신령천국에 들어가서는 추월이 없다. 가견적 현상적인 세상에서는 아무리 가장 먼저고 첫째고 으뜸이라고 떠들어도 그날에 가서는 비참하고 처절한 자가 많을 것이다. 이건 교회 안에서 교인들 목사들의 얘기다.


32절-34절: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있다’고 말씀하시고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가신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화평의 도시인데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외식으로 흐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까지 이방 강대국 로마황제를 자기들의 왕으로 삼고 있다. 역사적으로 그랬다. 오늘날 예수 믿으면서도 현재적으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 자기 속에서 무엇을 왕으로 삼고 있느냐는 걸 생각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사두개당파와 같이 세상 현실주의자들이다. 바리새교인들은 종교 외식자들이고 사두개인들은 종교 현실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종교라기보다 세상이 더 가깝다. 그래서 이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성전 안의 법궤 안에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된 십계명의 두 돌판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가 들어있는 항아리는 없어진지 오래다.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들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남은 것은 외식이요 껍데기뿐이다.


이것은 어쩌면 오늘날 교회의 신앙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영적으로 말하면 마귀가 먹으라는 선악과를 먹고 나온 신앙정신 사상 전부는 세상 아래, 죄 아래이다.(세상 아래는 죄 아래가 되는 것이다) 사람 위에 물질이 올려져 있으면 그건 세상이 올려져 있는 것이고, 기독자의 신앙정신으로 보면 그게 죄가 되는 거다. 자기 머리 위에 하나님이 계셔야지 세상이 물질이 사건이 돈이 올려져 있으면 그것을 죄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건 죄의 포로가 되는 거다. 다시 말하면 그것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거다 그 말이다. 오늘날 이걸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백성들을 구하시려고,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려고, 하나님과 백성이 화목 된 길을 열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서서 올라가신다. 이 삶의 걸음걸이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설정된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최고로 고상한 전무후무한 삶의 걸음걸이요 이력이요 그 역사다.


이 역사 속에서 주님의 33년의 전 인생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주님의 전 삶이 어디에 투자가 됐고, 시간은 어디로 흘러가게 만드는 건지? 자기 인생도 이 주님을 기준으로 세워놓고 봐라. 세상과 세상적으로 흐르는 세상 속화된 신앙은 주님의 그것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그 속 중심을 인지를 못한다. 영의 눈이라야 그걸 알 수가 있다.


주님의 삶 전부는 영생이고, 생명이고, 죽을 것 죽은 것이 없고, 전부는 영원히 산 것이라는 것이 부활로써 증명이 될 것이다. 이 삶이 천상천하에서 가장 첫째요 가장 먼저요 가장 으뜸이요 제일가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 부활로써 증명이 될 것이다. 당시로 보면 이것이 시간적으로 보면 미래가 되는 거다. 그 때 증명이 돼 나온다.


‘저희가 놀라고 쫓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왜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일까? 부자는 계명을 잘 지켰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너의 물질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면 보화가 있다. 그 후에 나를 따르라’ 하니까 부자는 겁이 덜컥 나서 돌아서 가는 걸 봤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도 했지, 또 ‘예수님 당신과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부모나 전토를 버린 자는 백배의 합당한 보상이 있지만 핍박을 겸해서 받지만 영생은 보장된다’고 말씀을 했으니, 영생의 조건이 세상에 있는 물질을 다 팔고 버리고 핍박을 받아야 한다는 이것이 심히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이 된 자가 또 먼저가 될 자도 있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바로 믿는 건지? 제자들이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말은 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금 예수 믿는 자들이 예수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자기를 하나님 앞에 사망신고를 해놓고 따르는 건지, 목숨을 내놓고 따르는 건지, 아니면 예수 믿으면 이 세상에 사는데 무엇이든지 지장을 받지 않고 무난히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예수를 믿는 건지, 아니면 이 근심 걱정 많은 복잡한 세상에서 좋은 소리 듣고 정신수양이나 하고 가려는 뜻으로 예수를 믿는 건지, 아니면 어떤 사건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어떤 처소에서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향하신 구원목적대로 적극적으로 전투적으로 죄와 세상의 유혹과 미혹에 굴하지 않고 살고자 함인지, 아니면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니 천국에 가기 위해 믿는 건지? 예수 믿으면서 과연 예수님의 말씀에 100% 아멘인지, 아니면 제자들처럼 두려운 건지,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그냥 남의 말처럼 들리고 무감각인지?


32절-3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 앞서서 가시면서 당신이 당할 일을 미리 말씀을 하신다. 왜 미리 말씀을 하실까? 도망을 가라고 하는 것이냐? 겁을 주려는 것이냐? 따라오려면 단단히 마음을 먹으라는 것이냐? 예수 쪽이던 바리새인 쪽이던 미리 결정을 하라는 뜻이냐?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간다. 그런데 인자가 대지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를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능욕하고 침 뱉고 채찍질 하고 죽일 것이나 그러나 제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이 말씀을 들을 때 제자들이 즉각적으로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듣는 제자들 입장에서 삼일만이 살아나는 것은 앞으로 될 일이니 살아나봐야 알 일이고, 예수님께서 죽는다고 하니 당장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여 마음을 어떻게 정해야 될지? 예수님이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실 때 ‘우리는 저 쪽에서 하겠습니다’ 하고 도망을 가야 하나? ‘머리가 아픈 걸 보니 감기에 들린 것 같습니다’ 하고 집으로 도망을 가야 하나? ‘누굴 데리고 오겠습니다’ 하고 그 길로 자취를 감출까?


그런데 궁금한 것은 누가 예수님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주는 것일까? 멀리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넘길까, 가까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넘길까?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넘길까,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넘길까? 본문에 누가 넘긴다는 말은 안 나와 있지만 ‘누가 넘길 것이다’ 하는 것은 들어있다. 물증은 없으나 심증은 있다.


가룟유다가 넘기느냐, 돈을 사랑하는 자가 넘기느냐? 둘 중에 어느 거냐? 돈을 사랑하는 자가 예수님을 넘기게 된다. 이 두 물음에 하나는 허점이 있는 거다. ‘가룟유다가 넘기느냐’ 하는 건 그냥 가룟유다를 말하는 것이고, ‘돈을 사랑하는 자가 넘기느냐’ 하는 것은 ‘어떤 성분을 가진 자가 넘기느냐’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가룟유다다.


‘가룟’은 지방이름이다. ‘유다’라는 이름은 많다. 그러면 ‘가룟지방’에 ‘유다’라는 사람이 한 사람뿐이냐? ‘유다’의 뜻은 좋은 뜻인데, 조상 유다도 있고 나라이름으로 되는 유다도 있다. 나라이름으로 되는 유다는 유다지파가 권을 많이 쥐고 있기 때문에 유다나라라고 한다. 어쨌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누가 예수님을 넘길 것이라는 말은 본문에 안 나와 있지만 어떤 자가 넘길 것이라는 것은 들어있다. 돈을 사랑하면 하루 품삯에 예수님을 넘기게 된다. 돈을 사랑하면 사람 팔고, 부모형제 처와 자식 남편도 팔게 된다. 이게 바꿔치기 하는 거다. 스승도 팔고 제자도 팔고 진리도 팔고 생명도 팔게 된다. 바꾼 사람, 판 사람 전부는 그 사람이 바로 가룟유다다. 그걸 가르쳐 주려고 가룟유다를 동원시키는 거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님을 믿는 자기 신앙의 정조를 돈 때문에 팔았다면 이거는 한 번 팔아도 가룟유다요 두 번 팔아도 가룟유다이다.


대제사장은 뭐하는 사람이냐? 성전 안에서 하나님 백성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의식을 치르는 대제사장이다. 그런데 이 대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외식밖에 없다. 서기관은 문서 기록자이면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은 모세오경 성경 속의 하나님의 은밀한 뜻은 안 찾고 율법을 외우는 것, 율법을 문자대로 가르치는 것뿐이었고, 절기는 거창하게 지켜도 마음은 하나님과 멀다. 이러니 구원과도 거리가 멀다. 계명은 지켰다고 해도 인격의 변화는 없다. 예수 믿으면 인격의 변화가 와야 하는데 변화가 없는 것은 잘 못 믿고 있는 거다.


가룟유다는 예수구원보다 예수님을 넘기고 돈을 받아 챙기고, 진리생명보다 돈이 더 귀하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오경 성경을 가지고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인다. 어찌 그런 정신 마음들은 궁합이 잘 맞는지? 예수를 이용하여 돈 벌고, 예수구원을 죽이고, 세상에게 잘 보이고, 성경을 가지고 세상을 가르치고, 교인들을 예수이름으로 세상 것을 구하게 한다. 33절의 본문은 말세 기독자들의 신앙까지 포함된 정신의 말씀이다.


가정의 무슨 사업 때문에 주일예배에 못 나온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별 것이 아님에도 못 나온다?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핍박을 받아도 교회 전체적인 핍박이 아닌 개인적인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께 정신과 마음이 신앙의 질이 더 나가야 한다.


부요할 때는 부요에 빠져서 안 나오고, 핍박을 받을 때는 힘들어서 안 나오고, 어려워질 때는 어렵다고 해서 안 나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예수 믿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자기 목숨이 끊어지기 때문에 예수를 못 믿겠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신앙 믿음은 인간의 어떤 잘잘한 것에 속박되지 않는 건데 어렵다고 믿음에서 멀어지는 것은 자기가 그렇게 만드는 거다.


특히 교회에서 직분을 가질수록 사소한 일로 교회 못 나온다면 이건 문제 덩어리다. 교회에 본이 안 된다. 어려울수록 이기고 나와야 한다. ‘영문 밖의 길’ 노래에 ‘굶더라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라고 하지 않더냐? 내 경험적으로는 밥을 굶더라도 교회 나왔고 거지로 살았어도 교회에 나왔다. 남처럼 학교를 못 가도 교회를 나왔다. 자기의 신앙 믿음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어떤 상황에서 교회를 못 나오는 건지 거기에서 자기 신앙이 다 들통이 난다.


34절. 능욕이 나오는데, 능욕은 업신여겨 욕을 보이는 것.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니 연약한 여자를 욕을 보이듯이. 또 침을 뱉고 채찍질 한다고 했는데, 사람에게 이렇게 하는 것은 짐승취급이다. 또 죽이고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 사람 존재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다. 이걸 영적으로 보면 복음이 내려갈 대로 내려가서 완전히 무시된 처절성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는데 만능의 능력자가 왜 가만히 있을까? 우리가 만능의 능력을 가졌다면 자기가 무시를 당하는데도 가만히 있겠느냐? 만능의 능력자께서 무능자로 계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구원 때문이다. 우리도 만능의 능력자는 아니지만 나와 다른 사람의 구원이 들어있는 고로 물질적 면에서나 인격적 면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는 거다.


복음이 무시되고 처절성이란 교회 안에 세상성이 들어와서 판을 치고, 진리이치의 깨달음이 없고, 교회의 정신이 일반화 되어서 세상 밑으로 들어가서 봉사라는 이름으로 시녀노릇을 하고 비위를 잘 맞춰주는 음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모든 교회가 세상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주님을 내버리는 상태가 되니 옳은 진리이치의 복음이 중단이 된다는 면에서 무시되고 처절성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면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시를 당하고 처절성이 된 것이다.


교회 안에서 천국복음을 귀한 보석처럼 알아주지 않고 성경을 가지고 세상 육적 비진리적 옛사람 부패성적 마귀적인 일을 하고 있고, 세상의 부귀와 돈을 구하는 가룟유다나 외식운동 종교운동을 하며 강대국을 하나님처럼 의지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유대 종교인들과 같은 사상이 신앙인 것처럼 혼합되어 있는 것이 교회의 처절성이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아무리 무시를 해도 3일 만에 부활체로 살아난다 하심은 예수님의 33년의 삶 전부는 죽지 않을 자로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어떤 환난 핍박을 받아도 마음과 정신이 죽을 자로 살지를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도 천국복음 때문에 무시당하는 일이 있어도 죽지 않는 부활성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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