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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493 추천 수 0 2016.05.18 23: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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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1:9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 87) 2016.2.1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9절)


< 기다림은 헛되지 않습니다 >

 매주 금요일 부둣가에서 우편물을 실은 똑딱선을 기다리는 76세의 한 퇴역 대령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부가 약속한 제대연금 수표가 담긴 우편물을 15년째 기다렸지만 그 우편물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은 재산은 괘종시계와 그림과 싸움닭인 수탉 한 마리뿐입니다. 그 수탉은 비밀문서를 배포한다고 해서 닭 싸움터에서 사살당한 아들의 유산이었습니다. 아내는 천식으로 숨쉬기 힘들어하고 가끔 발작도 했습니다.

 10월 어느 금요일 날, 그는 우편물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우체국장이 배에 올라 우편낭을 풀고 그것을 분류한 후 그곳에 모여온 사람들에게 우편물을 건네주었지만 대령에게 온 우편물은 없었습니다. 기다리는 제대연금 수표가 도착하지 않아서 그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1월에 있을 투계에서 자기 수탉이 이기면 큰 수입이 생길 것이란 희망을 가졌습니다. 문제는 그때까지 수탉을 먹일 옥수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도 그는 또 우편선을 기다렸습니다. 우편선이 도착했지만 역시 그의 우편물은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의사가 자기 우편물을 받고 우체국장에게 “대령님 우편물은 없어요?”라고 묻자 우체국장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대령님에게 편지를 안 씁니다.”

 다음 금요일에도 또 우편선으로 갔지만 역시 그의 우편물은 없었습니다. 아내가 “이제 기다림을 포기하자!”고 말하면 대령은 “더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제대연금 수표를 기다리던 다른 동료들은 이미 다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20살에 대령이 될 정도로 운이 따랐지만 연금 문제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연금이 나오면 아내와 몇 십 년째 가보지 못한 영화구경을 가는 소원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만화영화는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가게에서 외상을 얻을 때는 몇 번이나 사정하며 말했습니다. “다음 주일까지 갚겠습니다. 약간의 돈이 금요일에 올 예정입니다.” 편지를 기다리는 소망이 간신히 그를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당장 수탉을 처분하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수탉을 보면 닭 싸움터에서 사살된 아들 생각이 가끔 났습니다. 아들은 그 수탉이 부자가 되게 해줄 것으로 믿었고 남편도 그랬습니다. 문제는 그 수탉을 먹이기 위해 자신들이 굶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령도 어떤 대책이 없었습니다. 대책은 편지를 기다리며 부둣가를 찾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가 또 부둣가를 찾아 우체국장에게 말했습니다. “급한 항공 우편을 기다리고 있소. 오늘은 틀림없이 오기로 되어 있소.” 우체국장이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오기로 된 것은 죽음뿐입니다, 대령님.” 허탈하게 귀가하자 아내가 옥수수죽 한 접시를 준비해 그를 맞았습니다. 죽은 아들의 동료들이 투계시합 때까지 수탉이 연명하도록 가져다준 옥수수로 만든 죽이었습니다.

 대령이 죽을 먹으며 자조 섞인 어투로 말했습니다. “삶은 지금껏 발명된 것 중 가장 좋은 거요. 저 수탉이 우리를 삼년은 먹여줄 거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희망을 먹고 살 수는 없어요.” 대령이 말했습니다. “희망을 먹고 살 수는 없지만 희망이 사람을 지탱시켜 줄 수는 있소.” 아내는 남편의 체면치레에도 질렸고 자신의 오랜 체념에 질렸습니다. 아내가 기다림에 지쳐 정부와 의원들을 비난하면 대령은 자기의 마땅한 의무를 수행한 것이라고만 대답했습니다.

.아내가 부자 친구 얘기를 하면 대령이 그가 당뇨병으로 죽어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당신은 허기로 죽어간다. 체면을 먹고 살 수 없음을 알라.”고 했습니다. 결국 아내가 수탉을 팔자고 하자 남편은 수탉 대신 시계나 그림을 팔자고 했습니다. 아내가 그것을 팔지 못하면 어떡하느냐고 하면 대령은 “1월 20일까지 기다리자!”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수탉이 투계에서 지면 어떡하느냐고 하면 대령은 “자기 수탉은 질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지면 어떡하느냐고 하면 대령은 “그것은 44일 후에 가서 생각하자.”고 했습니다.

 이 소설은 198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란 소설 내용입니다. 살다 보면 기다림이 절망이 되고 꿈과 비전이 신기루가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때마다 부둣가에서 우편선을 기다리는 퇴역 대령의 심정이 되지만 그래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결국 희망의 싹은 틉니다.

 요새 한국 교회도 힘이 약해졌고 헌신도 약해졌습니다. 게다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선교후원도 많이 줄었습니다. 선교사들의 선교편지를 보면 글의 행간에 어려움이 많이 배여 있습니다. 그 행간의 의미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선교지에서 선교편지를 보내고 선교사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매주 금요일쯤 되면 한국에서 송금 소식이 있나 하고 인터넷으로 은행계좌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송금하지 않은 것을 알면 실망하지 않고 “다음 주에는 좋은 소식이 있겠지.” 하고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이 사역을 지탱할 힘을 줍니다.

 최근에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사역을 하면서 저도 그 선교사들의 심정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200페이지가 넘는 월새기 1권을 1000원에 공급하니까 월새기로 은혜 받은 사람의 헌신과 후원이 없으면 사실상 월새기 사역을 지속시키기 힘듭니다. 그래서 요새는 가끔 선교회 후원계좌로 들어가 봅니다. 그때마다 이런 기대를 가집니다. “이번 주에는 그분으로부터 혹은 누군가 무명의 헌신자로부터 사랑의 오퍼링(offering)이 있었을까?”

 그 기다림이 거룩한 사역을 위해 땀을 흘리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땀이 없고 기다림만 있다면 얼마나 삶이 우울하겠습니까? 그러나 열심히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리기에 그 기다림은 우울하지 않고 희망이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려면 지금 의미 있는 일에 땀을 흘려야 합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고 그 기다림이 희망의 싹입니다. 기다릴 사람과 기다릴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특히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누구보다 행복한 성도입니다. 그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 사랑과 겸손은 함께 갑니다 >

 본문에는 사도 요한이 자기 정체성과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장소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본문 9절 첫 부분을 보십시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이 표현을 보면 ‘사랑과 겸손’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흔히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원래 과격한 성격파였던 그가 그런 별명을 얻은 것 자체가 복음의 능력을 잘 보여줍니다. 게다가 ‘너희 형제’란 호칭이 더욱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당시 사도 요한의 위치와 신분과 나이를 생각할 때 그처럼 겸손한 표현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 쓰일 당시 예수님의 12제자 중 요한만 살아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교회의 살아있는 성자 같은 존재였습니다. 또한 계시록을 쓸 당시 요한의 나이는 90세가 넘었는데 그런 어르신이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라고 했으니 얼마나 겸손한 모습입니까? 성도는 신앙생활을 할수록 사도 요한처럼 겸손히 섬겨주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스스로 낮아지면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섬김이 없으면 처음 된 자도 나중 되지만 섬김이 있으면 나중 된 자라도 처음 되는 축복을 얻습니다.

 꿈과 비전과 스케일과 통이 큰 사람이 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마십시오. 사람은 겸손할수록 스트레스가 적어지고 반대로 기쁨의 크기는 커집니다. 또한 겸손할수록 감사가 많아집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겸손이 높은 자리에서 낮아지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상 겸손은 본래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래 자리는 낮은 자리입니다. 원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낮아지겠다는 것은 현재 마음이 높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낮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겸손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끔 이런 기도제목을 내놓습니다. “목사님! 제가 더 겸손하도록 기도해주세요.” 사람이 그토록 겸손하기가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계속 겸손을 추구하면 하나님이 겸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겸손을 잃지 않으면 고난과 상처가 있어도 꿈과 비전과 사명감과 열정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 위치나 자리나 능력에 비해 낮아지면 내적인 기쁨과 보람과 행복과 내일의 보상은 그만큼 커질 것입니다.

< 십자가를 질 때 축복 받습니다 >

 계속해서 본문을 보면 사도 요한은 자신에 대해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성도의 확실한 증거는 세상적인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10대 재벌 안에는 불신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결국 성도의 확실한 증거는 본문에 나오는 ‘동참’이란 단어에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비전 안에서 십자가를 기쁘게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기쁘게 질 때 참된 복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 사탄은 예수님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아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해서 성공했다면 예수님은 일약 당대의 스타가 되었겠지만 예수님은 당대의 스타가 되려고 이 땅에 오시지 않고 십자가를 지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일을 가장 두려워했기에 그 십자가를 막으려고 이 땅의 영광을 내세워 시험한 것입니다. 그런 시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이 주는 영광은 순간적이고 일회용입니다. 성도는 신기한 마술적인 삶 대신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십자가의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대신 마술적인 삶을 추구하셨다면 당대의 스타는 될 수 있어도 영원한 구세주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는 십자가를 지는 삶의 목표를 한시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려운 일도 맡아야 합니다. 참된 축복은 제 몫에 태인 십자가를 잘 질 때 주어집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다 보면 부딪칠 때도 있고 상처 입을 때도 있지만 그런 일들을 잘 극복해야 십자가를 지는 능력도 커지면서 결국 작품 인생이 됩니다. 기분과 감정과 상황에 따라 봉사 자리를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감정적으로 대하시지 않고 진실한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그처럼 기분과 감정을 버리고 자기 자리에 충실하며 제 몫에 태인 십자가를 힘써 지면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

 요한계시록은 어디서 기록되었습니까? 밧모섬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왜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있게 되었습니까? 전설에 의하면 당시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가 사도 요한을 죽이려고 온갖 방법을 쓰다가 안 되니까 최후에는 그를 펄펄 끓는 기름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아서 두려움 가운데 밧모섬으로 유배시켰다고 합니다.

 밧모 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의 모습은 어떤 교훈을 줍니까?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환경도 하나님의 허락을 벗어나 이뤄진 환경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라면 아무리 힘든 환경에 있어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바로 서 있으면 위기는 반드시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당시 밧모섬은 무인도처럼 척박한 섬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에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있었더니”라고 표현하지 않고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소아시아 일곱 교회 교인들이 그 섬의 명칭을 잘 모를 줄 알고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몇 천 개의 섬이 있지만 대부분의 섬들은 한 번도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밧모섬도 그런 이름 없는 작고 척박한 섬이었습니다.

 무인도와 같은 섬에 유배되었으니까 사도 요한의 인생이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요한은 거기서 인생 말년에 가장 위대한 사역을 합니다. 즉 외롭고 고독하고 갇힌 곳에서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거기서 미래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고 요한계시록을 남기는 위대한 일을 이룬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반전의 역사입니까? 외형과 숫자에 휘둘리지 않고 진리 안에서 환경변화보다 자기변화를 우선시하면 누구든지 그런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황이 달라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환경의 변화보다 우리 자신의 변화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람은 막힌 산이 평지가 되길 원하지만 하나님은 막힌 산을 통해 우리가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결국 환경에 변화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네가 먼저 변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자기 변화는 거부하고 환경변화만 요구하는 모습은 복된 모습이 아닙니다. 성도는 환경적인 응답이나 해결보다 자기 변화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사람은 ‘좋은 해결’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좋은 해석’을 원하십니다. 해결보다 해석이 중요합니다. 고난도 믿음으로 해석하십시오. 사람은 고난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고난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해석하면 복된 존재로 변화되면서 그때부터 환경도 따라서 변화됩니다. 베드로가 변하자 물 위를 걷게 되고 안 잡히던 고기도 잡혔습니다. 자신의 빈 배에 예수님을 모시자 물고기가 모여들었습니다. 내면의 변화는 외면의 변화를 따라오게 만듭니다.

 저는 천년영향력을 꿈꾸며 <성경전체 강해>의 비전에 매진해 현재 3분의 2를 완성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기 분야에서 천년영향력을 꿈꾸며 나가야 합니다. 성도의 거룩한 비전 성취는 오직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힘써 동참하고 헌신하면 그 시간이 크게 단축되어 당대에도 크고 위대한 일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하고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수와 실패가 없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에 힘써 동참하고 헌신하면 최종적인 의미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모함을 받아 애굽에 팔려갈 때 얼마나 좌절감이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된 후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들!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처럼 자신이 당하고 있는 어려운 현실도 결국은 하나님이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삶의 위기는 축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축복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축복을 주는 특별한 사람이나 특별한 교회나 특별한 기도원은 없습니다. 또한 신령한 축복산도 없습니다. 사도 요한처럼 겸손한 사랑으로 무장하고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면 삶의 여정에 고난은 있어도 때가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복된 자리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항상 사랑과 겸손으로 행하며 하나님이 맡겨주신 십자가를 잘 지고 나감으로 인물 성도의 꿈을 이루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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