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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7:1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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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815) 2016.3.15 |
아브라함처럼 살라 (요한계시록 7장 13-17절)
< 눈물을 씻겨주시는 하나님 >
살다 보면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다. 그때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상태에서 죽었다면 슬픔 중에서도 슬픔을 이겨내게 하는 신비한 평안이 마음속에서 생겨난다. 왜 그런가? 곧 다시
만난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처럼 천국 소망이 확실하면 극한 슬픔과 죽음도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천국 소망이 없으면 극한 슬픔을
당하고 죽는 날을 당할 때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지 모른다.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한 세기를 풍미한 한
지성인이 폐수종으로 입원했다. 그는 한 달 동안 문병 온 사람들에게 고통스런 표정을 하며 미친 듯이 고함쳤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자기 병명이 무엇인지 곁에 선 아내에게도 묻지 못했다. 그가 바로 ‘자유’란 주제로 수많은 글을 쓰고 “죽는 문제에서도 자유를 찾으라!”고 외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다.
결국 그는 1980년 4월 16일 입원한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프랑스
신문들이 썼다. “왜 최대의 지성인으로 일컬어졌던 사르트르가 그렇게 수치스럽게 죽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 외쳤던 그의 말로가 왜
이렇게 비참했을까?” 그리고 신문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임종 때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고 한다. “내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구나!”
성도에게 가장 큰 소망과 위로가 되는 말은 무엇인가?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길은 나그네 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가끔 소외되는 일을 당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 성도는 천국에서 발행된
여권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사는 것이기에 이 땅에서는 소외될 수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본향에 가면 눈물을 씻겨주시는
하나님을 손길을 대하면서 누구보다 큰 기쁨과 위로를 맛보게 될 것이다.
< 아브라함처럼 살라 >
옛날에
미국 LA에 갔을 때 필자의 아버님이 신학교 졸업 선물로 사준 카메라로 열심히 근처의 좋은 장면과 신기한 장면을 찍었다. 한번은 밤에 인적이
드문 주유소에서 여자가 남자들에게 뭔가 호객행위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래서 자동차 창문을 열고 눈치도 없이 그 장면을 찍는데 밤에 찍으니까
플래시가 팍 터졌다.
바로 이어서 2명의 흑인 남자가 다가와 필자의 차를 막았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카메라 필름 전체를
내놓으라고 했다. 그때 말리부 해변에서 찍은 환상적인 석양 노을 장면을 비롯해서 여러 좋은 장면들을 많이 찍었기에 필름을 못 내놓겠다고 했다.
또한 필자도 옛날에 권투를 했었던 적이 있었기에 크게 겁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금 후에 한 흑인이 슬쩍 권총을 꺼냈다. 그 순간 필자는 즉시
“오케이!”라고 하면서 필름을 넘겨주었다. 그때 “아직도 총기가 없는 내 모국이 천국이구나!”란 생각을 했다.
외국에 가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다. 그런데 천국 시민권자에게는 이 땅이 외국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많다.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지혜롭게 상대의 불의를 깨닫게 해주어 상대가 조금이라도 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자극을 주되 그래도 막무가내로 나오면 “오케이!” 하고 가진
것을 넉넉한 마음으로 양보해주라. 그러면 하나님이 더욱 소중한 것으로 반드시 보상해주신다.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는가?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것을 과감히 양보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오늘날의 재벌과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향을
바라보며 양보하며 살았다. 그럴수록 하나님은 신기하게 더 채워주셨다. 성경은 재벌이 되는 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 재벌이 되어도 아브라함처럼
되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메시지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줄 알고 재물을 쌓고 욕망을 따라 살다가 허무하게 죽지만 아브라함은
재벌이면서도 본향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었다(히 11:11-16).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을 이 땅에서
다 받지 못했다. 만약 다 받았다면 본향에 미련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당대에 다 주지 않았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결코 원망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하고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다. 그처럼 더 나은 본향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늘 품고 살았기에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아브라함처럼 더 나은 천국 본향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씩씩하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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