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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

사도행전 류공석 목사............... 조회 수 1171 추천 수 0 2016.05.13 23:57:30
.........
성경본문 : 행2:43-47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
2011년 5월 7일(토) 창립 4주년 감사예배
본문: 사도행전 2:43-47

   4년 전에 우리 교회를 세우시고, 오늘 교회 창립 4주년 감사예배를 드리게 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 
   지난 4년을 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참 많은 교우들이 우리 교회를 거쳐 갔다. 모든 만남이 은혜요 모든 일들이 은혜였다. 그래서 감사밖에는 드릴 것이 없다.

  창립 예배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표어가 하나 있다. 매년 새로운 표어가 나오지만 변함없는 표어가 하나 있다. 교회 홈페이지와 주보에도 쓰여 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이다. 대 표어이다. 이 표어는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한 변치 않을 표어이고 목표라고 생각한다.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 참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 아닌가? 더불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생각해보자.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라고 했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이 질문에 대해 여러 대답이 가능할 것이나 대부분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답을 한다. 초대교회가 보여준 모습이야말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맞다. 모든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동감하는 내용이다.

  초대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능력이 넘치는 교회의 모습이었다. 거룩함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뜨거운 열정과 성령의 능력이 있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천국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초대교회 성도들 자신이 천국을 경험했고 그 천국을 이 땅에 이루고자 했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의 모습이어서 우리가 모델로 삼아 닮고 싶은 교회의 모습이다. 우리 텔아비브 욥바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가 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이자 기초가 하나 있다.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하나됨이다. 하나됨이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가 되는 가장 중요한 전제이자 기초이다. 주님의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가 되자고 외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될 만한 기초가 되어야 한다. 될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됨이다.

  하나됨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다. 주님이 원하심은 하나됨에 있다. 하나됨이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가 되는 기초이고 그릇이다.

  에베소서 2:14-16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화평이시다.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고 했는데, 여기서 둘은 원수였던 둘이다. 누구인가? 유대인과 이방인이다. 이 둘 사이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는 것이다. 원수 되었던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주님의 뜻은 하나됨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는 것이었다. 둘 사이의 막힌 담을 허셔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이 둘이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그 하나됨이 이루어진 교회가 바로 초대교회였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고 하나 되고, 주인과 노예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고,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섬기는 가족이 되었다. 원수 되었던 사람들이 하나 되고, 차별이 존재했던 사람들이 하나 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 되는 것이 주님의 뜻이고 그 하나 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 되는 공동체다. 하나 되어야 하는 교회에서 차별이 나타나고 분열이 나타날 때 그 교회는 병들게 된다. 교회는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가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됨에 힘써야 한다. 각기 다른 이유로 이스라엘에 왔고, 다른 신앙적인 컬러와 배경을 가지고 있고, 직업과 성별과 나이와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네 가지 모습으로 우리가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첫째, 믿음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믿음공동체, 신앙공동체다. 그 신앙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4년 전에 창립예배를 드리기 전에 그 준비를 위해 1박 2일로 갈릴리에서 수련회를 가졌다. 일정 중에 가이사랴 빌립보를 갔다. 일부러 갔다. 왜? 그곳이 교회의 기초가 선포된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했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던 곳이고, 그 믿음의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포하셨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확인했다. 우리 교회의 기초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그 믿음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는 교회가 되기를 간구했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공동체이다. 이 믿음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이다. 서로 달라도, 늘 새로운 사람들이 와도 우리는 이 믿음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이다.

  이 믿음은 그저 예배 때만 고백되는 믿음은 아니다. 예배 때 고백한다고 해서 하나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믿음은 실천적인 믿음이다. 목회자와 온 교우들이 날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고백하며 확인하는 실천적인 믿음이 될 때 이 믿음으로 하나될 수 있다. 아무리 고백해도 내가 살아있으면 하나될 수 없다. 우리의 믿음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믿음이다. 그리스도께서 사셔서 나를 주장하시길 원하는 믿음이다. 이런 실천적인 믿음이 있을 때 우리 교회는 믿음으로 하나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하나 되는 우리 욥바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둘째, 성령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시작되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하셨다. 즉 성령을 기다리라 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샤부옷, 칠칠절,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고, 그 결과 교회가 시작되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시는 영이시다. 성령강림 때 방언이 임했던 것도 그 증거이다. 바벨탑에서 범죄로 인해 언어가 나누어져서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 방언을 통해 서로 알아듣게 되었다.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이다. 동일한 마음을 주셨고 동일한 비전을 주셨다. 그래서 하나 되게 하셨고 하나된 교회를 통해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가셨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하는 것이고, 초대교회의 이야기는 성령님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다. 교회의 주체는 성령님이시다. 부흥의 주체도 성령이시다.

  그러기에 교회는 늘 성령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목회자와 모든 교인들이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의 뜻에 민감하고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육적으로 충만한 교회는 결코 하나될 수도 없고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없다. 성령충만할 때 성령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성령으로 하나 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성령충만을 사모하라. 성령을 모시고 있는 사람답게 성령의 뜻에 민감하고 그 뜻에 순종하라. 목사와 교인들이 늘 무릎을 꿇고 성령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고 성령충만을 사모한다면 어찌 하나 되지 않겠으며 어찌 성령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지 않겠는가? 성령으로 하나 되는 교회, 바로 우리 욥바교회인줄로 믿는다.

  셋째,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의 특징적인 모습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였다. 교인들 간에 사랑으로 섬겼고, 교회 밖에서도 사랑으로 구제했다.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였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사랑에 있다. 교회의 능력은 사랑에 있다. 사랑이 우리의 능력이고 우리의 정체성이다. 이 사랑에 실패하니까 세상이 교회를 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에 실패하면 안 된다. 힘써 사랑해야 한다. 힘써 사랑할 때, 힘써 섬길 때 교회는 하나될 수 있고, 그 하나됨이 세상 가운데 거룩한 영향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주 중에 아둘람을 찾아 갔다. 미국에서 온 목사님을 모시고 갔다. 2년 전에 아둘람에 가서 현장예배를 드렸었는데, 그 때 굴은 보지 못했다. 그것이 참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굴을 찾는 것이 큰 목표였다. 찾았을까 못 찾았을까? 찾았다. 어디서? 우리가 예배드렸던 바로 옆에서. 아둘람으로 가는 길 동안 차 한 대 만나지 못했고 한 사람도 보지 못했는데, 아둘람 위에 올라가니 마침 유대인 답사팀이 있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굴이 어디 있나 물었더니 바로 아래에 있단다. 가 보았더니 2년 전 우리가 예배드렸던 바로 그 옆이었다. 입구는 좁았다. 몸을 숙이고 들어가 보았는데, 그 안이 무척 넓었다. 우리 교회보다 넓었다. 그리고 옆에도 작은 동굴들이 몇 개 연결되어 있어서 족히 백 명 이상이 지낼 수 있는 크기였다. 그런 동굴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다윗 공동체가 머물렀던 아둘람 굴을 찾고는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다윗이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그 동굴 안에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였을까? 사무엘상 22:2에 보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아둘람에 있는 다윗에게로 모였다고 했다. 이들이 다윗과 함께 피신해있었고, 후에 이들이 다윗과 함께 왕국을 통치하게 된다.

  아둘람 굴에 모인 사람들을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라고 기록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하면 상처투성이, 문제투성이인 사람들이 모였다는 말이다. 이들을 가지고는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낼 수 없다. 이들이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내려면 먼저 이들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했다. 그 치유의 장소가 바로 아둘람이었던 것이다. 아둘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했던 사람 다윗을 통해 사백 명 가량의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치유 받고 하나 되어 마침내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둘람 굴을 교회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아둘람 굴과 같은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와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되고, 서로를 사랑하고 섬김으로서 치유되고 하나 되어 그리스도의 군사로 세워지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으로 치유되어 하나 된 아둘람에서 다윗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벅찬 비전을 선포했고, 마침내 그 비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교회 역시 초대교회처럼, 아둘람 굴처럼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로 더욱 더 든든히 서 나가기를 기도한다. 전에 우리 교우 중 한 분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전에 다른 교회에서 상처를 받으셨던 분이셨다. ‘내가 이 교회를 나오는 이유는 이 교회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이 말을 듣고 참 죄송했고 더불어 참 감사했다. 우리가 행한 사랑이 너무 보잘 것 없어 죄송했고, 그럼에도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줘서 감사했다.

  나는 많은 분들이 계속해서 우리 교회에서 사랑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든 교우들이 먼저 사랑하고 먼저 섬기는 사랑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는 사랑에 있다. 사랑하는데 욕심을 내자. 섬기는 데는 양보하지 말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섬김으로서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넷째, 비전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주 비전과 야망을 혼동한다. 비전은 야망이 아니다. 우리의 욕심도 아니다. 비전은 하나님의 꿈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전이다. 비전의 사람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나의 꿈으로 삼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비전을 품은 자, 비전을 품은 교회는 가슴이 뜨거운 것이다. 열정이 있는 것이다.

  원래 비전은 열정이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비전과 가슴은 같은 어원이다. 비전을 히브리어로 ‘חזון’이라 하고 가슴을 ‘חזה’라고 한다. ‘חזון’은 ‘חזה’란 동사에서 나왔는데, 본다는 뜻이다. 본다는 뜻의 ‘חזה’와 가슴을 뜻하는 ‘חזה’는 둘 다 같은 어원이고 글자로 같다. 둘 다 앞을 뜻하는 어원에서 나왔다.

  비전이 무엇인가? 앞을 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가슴으로 보는 것이다. 보기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을 바라보고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비전이다.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비전이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있어서 그 비전 때문에 가슴이 뜨겁고 그 뜨거운 열정을 품고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있기를 축원한다. 특별히 자녀들과 청년들에게 이러한 비전과 열정이 있기를 축원한다.

  우리 교회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그 비전으로 인해 가슴 뜨거운 열정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있다. 이스라엘 선교와 청년 선교다. 나는 이 비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는 청년들이 좋다. 청년들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가 가진 것 다 주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꿈 꿀 수 있다면 나는 내가 가진 것 다 주고 싶다.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이 귀한 청년들을 첫해부터 지금까지 계속 보내주셔서 섬기게 하셨으니 얼마나 큰 축복이며 은혜인가!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20년 전에 내게 주신 비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가슴에 품고 기도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었다. 스물여덟 청년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마음 한 가운데 있는 나라다. 예수님의 눈물이 적셔져 있는 민족이다. 몇 해 전 감람산 중턱에 있는 눈물 교회에서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눈물을 느꼈다.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던 주님의 눈물이 지금도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보여주신 것이 있었다. 요한계시록의 장면이었다. 모든 족속들이 하나님과 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여 각 나라의 방언으로 찬양하며 경배하는 모습이었다. 예루살렘 성에서 유대인들과 모든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 예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그 모습을 보여주셨고 그 황홀한 장면으로 내 가슴을 뜨겁게 하셨다.

  내가 교회를 담임하게 된 것도 이 비전 때문이었다. 비록 한인들이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가 되겠지만 이스라엘 선교에 대한 비전과 마인드만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선교를 할 수 있다는 응답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전대로 이스라엘 선교에 힘쓰고 있다.

  나의 평생의 비전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러길 바란다. 우리가 이스라엘에 평생 머물기는 어렵지만 이스라엘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힘을 모을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함께 공유하며 함께 뜨거운 열정으로 이 비전들을 사명 삼아 교회를 섬겨 나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비전, 더 뜨거운 열정을 주실 것이다. 이미 그리 하고 계시다. 한국과 미국 등에서 우리 교회와 함께 협력하고자 하는 교회들을 연결시켜 주고 계시다. 이스라엘에서도 메시아닉 유대인 사역자와 단체들을 더 연결시켜 주셔서 그들을 돕고 함께 동역할 수 있는 길들을 열어주고 계시다.

  내가 농담반 진담반 하는 말이 한번 욥바교인은 평생 욥바교인이란 말이다. 이스라엘에 머무는 시기는 다 다르고, 언젠가는 떠나야 하지만 성지 이스라엘에서 만나 이 땅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를 세워나갔던 그 기쁨이 우리에게 평생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평생 마음에 품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고, 또한 청년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요 군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지만 우리를 통해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를 이곳 성지 이스라엘에 세워나갈 수 있기를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슈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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