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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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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789) 2016.2.3 |
요한계시록(2) 복 있는 자의 3대 정의 (요한계시록 1장 3절)
< 복 있는 자의 3대 정의 >
기독교는 ‘하나님이 복 주심을 믿는 종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에서 ‘복’을 앞세우면 기복주의가 되고 ‘하나님’을 앞세우면 복음주의가 된다. 기독교의 믿음은 ‘복을 믿는 것’도 아니고 ‘복이
주어짐을 믿는 것’도 아니고 ‘복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가 기복적인 종교가 되지 않게 하려면 ‘복에 대한 바른 개념’과
‘복 있는 자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누가 복이 있는 자인가? 본문에는 복 있는 자에 대한 3대 정의가 나와
있다.
1. 말씀을 읽는 자
본문 3절의 첫 부분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은 요한계시록을 뜻한다. 정말 요한계시록 말씀을 읽기만 해도 복이 있는가? 본문은 “그렇다!”고 한다. 물론 모든 성경 말씀을
읽으면 다 복이 있다. 성경 말씀을 계속 읽다 보면 믿음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본문은 특별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되다고
했는가? 요한계시록 말씀을 읽으면 천국 소망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뚜렷한 천국 소망이 삶에 큰 유익을 준다.
왜 요즘 성도들의
삶이 무기력해졌는가? 종말의식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늘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았기에 어떤 고난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초대교회가 힘 있게 뻗어나갔던 이유는 강한 종말의식 때문이었다. 교회사에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날 때는 한결같이 종말신앙이 투철할
때였다. 개인의 삶에서도 영적으로 가장 풍성해질 때는 종말의식이 투철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으며 종말의식이 새로워진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2. 말씀을 듣는 자
본문은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이 구절에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말씀을 귀로 듣는 것도 복된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 그러나 듣는 것보다 한 차원 더 나아가 이 예언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요한계시록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과
말씀이 많이 나오지만 그래도 그 장면들을 진지하게 마음속으로 그려보고 그 말씀들을 진지하게 열린 마음으로 들어보라. 하나님은 말씀에 열린
심령에게 복을 주신다.
특별히 본문은 요한계시록에 나온 예언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에는 각종 계시와 상징과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에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그 말씀을 잘 받아들이려고 하면 더욱 복된 은혜가 있다. 말씀이 상식과 이해와 경험의 범위를 초월하며 들릴 때도
그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그 모습을 기뻐하시고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이다.
3. 말씀을 지키는
자
본문에서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요한계시록에는 요한이 본 각종 상징들과 장면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지만 곳곳에 하나님의 명령과 권면과 도전의 말씀도 있다.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말씀은 눈과 귀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마음에서 입술과 손끝과 발끝으로 전달되어 실천으로 나타나야
진정한 은총과 역사도 나타나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서두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강조하지만 결론 부분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강조한다. 요한계시록 22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이
구절에서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는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지키라!”는 말씀이다. 요한계시록은 예언과 환상을 강조한
성경이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강조한 성경이다. 그러므로 종말의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말씀중심적인 삶을 살려고 해야
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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