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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기도의 영성

마태복음 김부겸 목사............... 조회 수 1012 추천 수 0 2016.05.16 23:58:04
.........
성경본문 : 마6:6 
설교자 : 김부겸 목사 
참고 :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132827423 

2011년 7월 17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6장 6절

설교제목 : 골방기도의 영성

 

<아름다운 기도> * 이해인

 

당신 앞엔

많은 말이 필요없겠지요, 하느님

 

그래도

기쁠 때엔

말이 좀더 많아지고

슬플 때엔

말이 적어집니다

 

어쩌다 한 번씩

마음의 문 크게 열고

큰 소리로

웃어보는 것

 

가슴 밑바닥까지

강물이 넘치도록

울어보는 것

 

이 또한

아름다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어도

괜찮겠지요?

 

*********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6)】

 

  <글 이야기>

  얼마 전 새길교회(www.saegilchurch.or.kr)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제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 글을 하나 읽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그 글을 옮겨 보겠습니다.

 

------

 

  수행의 문에 들며

 

정경일

 

身是菩提樹 몸은 보리의 나무

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

時時勸拂拭 부지런히 털고 닦아

勿使惹塵埃 때묻지 않도록 하세

- 신수(神秀)

 

  지난 해 말, 사소한(물론 그 순간에는 심각하게 여긴) 문제로 아내와 심하게 다퉜습니다. 결국엔 언제나처럼 서로 반성의 언어를 교환하고 사이 좋게 화해했지만, 그러고도 며칠 동안 속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지요. 내 안의 한심한 인간성 앞에 또 다시 무릎 꿇고 말았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매일 아침 몇 명의 동료들과 참선하고 있는 요즘 생활의 고요한 면 때문에, 일상 속에서 불거져 나온 내 인격의 유치함을 확인하기란 더욱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작심삼일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기도와 수행을 통해 새롭게 다짐한 삶의 원칙과 방식들이 작은 욕망을 못 이겨 무너진 경험이 부지기수입니다. 애초부터 명상도 기도도 없이 그저 주간, 월간 계획 세우듯 하다 틀어진 거라면 기분 찜찜하긴 해도 부끄러울 것 까지는 없을 텐데, 이건 세상 속에서 수행자로 살겠다며 서원해 놓고 못된 성질을 부린 꼴이니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깊은 부끄러움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음을 새로이 했습니다. '그래, 아직도 수행이 부족한 거야. 더욱 열심히 수행해 깨달음을 얻고 자유로워지자!' 그런데 그 반성과 각오의 경건한 순간에,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고 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어나는 이유는 또 뭔가요? 사실 이건 내가 오랫동안 궁금해하고 있는 것인데, 뭔가 깨달음을 이룬다고 해서 매일 24시간, 평생토록 '저절로'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살 수 있겠냐는 의문입니다.


  겨우 수행의 문을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지만, 수행할 때 내 마음이 맑아지고 고요해지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잠시만 경계를 늦춰도 내 마음은 성난 파도처럼 다시 격렬해지기 일쑤입니다. 부처님이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 잠시도 그대로 있지 못하다"고 가르치신 게 딱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이지요. 깨달음의 상태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 자체로 모든 것의 최종적 완성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깨달은 후에도 넘어야 할 산들은 있고, 깨달음은 그 산들을 포기하지 않고 넘어가게 하는 '믿음'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선(禪) 전통의 5조 홍인이 법을 전수할 이를 선정하겠다며 제자들에게 각자 깨달은 바를 게송(偈頌)으로 지어오라고 했습니다. 수제자였던 신수는 부지런히 수행하여 마음의 청정을 유지하자는 시를 지어 동료 수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그런데 허드렛일을 하고 있던 혜능이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거울 또한 거울이 아니다. 본래 아무 것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끼겠는가"라는, 즉 모든 게 공(空)한데 닦고 말고 할 게 뭐 따로 있는가 라는 도전적 시를 지어 결국 6대 조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의 정통은 뭔가 단박에 깨우친다는 돈오(頓悟)의 입장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 것인데, 그래도 매일 마음의 거울에 낀 때를 보며 괴로워하고 있는 나로서는 닦고 닦고 또 닦자는 점수(漸修)의 수행론에 마음이 더 끌릴 수밖에요. 물론 이는 내 한심한 인격에 대한 개인적 관찰에 상당부분 근거한 것이지만, 인간은 죽는 날까지 온갖 욕망과 싸우며 삶을 점진적으로 개선해가는 존재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수의 수행론이 혜능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고 북종선으로 지속된 것도 이런 현실적 인간이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방학 동안 몇 명의 미국인 동료들과 함께 학교 채플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자칭 "Zen fundamentalist"들인데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거라 열의가 대단합니다. 하지만 45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데서만큼은 확실히 내가 '수승'하지요. 그런데 구별된 시간과 공간에서 자세를 잘 유지하고 못하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미동도 않고 긴 시간 앉아 있을 수 있는 건 사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앉는 방식의 문화적 차이 때문일 뿐, 결코 수행의 근기가 더 강해서는 아니니까요.


  오늘 아침엔 모두 사정이 있어 나오지 않아, 나 홀로 십자가 밑에 앉아 호젓하게 명상을 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평온해진 마음으로 채플을 나서려는데, 문득 내 앞에 놓인 문이 수행을 마치고 나가는 문이 아니라 참된 수행을 향해 열린 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장시간의 결가부좌보다 더 어려운 진짜 수행은 내 일상의 모든 국면에서 인격과 영성의 진보를 실현하는 것이겠지요. 그 수행의 문에 들며, 제발 죄 좀 덜 짓고 살자고 마음을 여미는데, 격려하듯 도겐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사원의 종은 멈추지만, 그 소리는 꽃들을 피어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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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훌륭한 글입니다. 이 글에서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오늘 아침, 나 홀로 십자가 밑에 앉아 호젓하게 명상을 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평온해진 마음으로 채플을 나서려는데, 문득 내 앞에 놓인 문이 수행을 마치고 나가는 문이 아니라 참된 수행을 향해 열린 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장시간의 결가부좌보다 더 어려운 진짜 수행은 내 일상의 모든 국면에서 인격과 영성의 진보를 실현하는 것이겠지요. 그 수행의 문에 들며, 제발 죄 좀 덜 짓고 살자고 마음을 여미는데, 격려하듯 도겐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사원의 종은 멈추지만, 그 소리는 꽃들을 피어나게 한다."】

  이 짧은 글에서 깊은 감동은 느낍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6)】이 성경구절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위선적으로 기도하는, 즉 외식(外式)하는 기도를 꾸짖으시는 예수님께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신 기도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골방기도가 바른 기도임을 일깨워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왜 골방기도를 해야할까요? 그것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권면해주신 기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골방기도에는 ‘더 깊은 영성적 차원’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골방기도의 영성>

  골방기도의 영성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골방으로 들어가는 기도이고, 둘째는 골방에서 하는 기도이고, 셋째는 골방에서 나오는 기도입니다.


  첫째, 골방으로 들어가는 기도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기도법 중에 ‘통성기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통성기도법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통성기도법은 골방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기도법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나 사이의 일대일 관계입니다. 기도는 고독한 세계입니다. 함께 무리를 지어서 떼를 쓰듯이 하는 통성기도는 한 마디로 말해서 “골방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기도”입니다.


  둘째, 골방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골방에서 하는 기도는 솔직한 기도입니다. 아무런 숨김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일체의 거짓이 없습니다. 위선도 없습니다. 체면도 없고, 겉치레도 없습니다. 하느님과 나, 나와 하느님이 얼굴을 맞대고서 만나는 것입니다.


  셋째, 골방에서 나오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흔히 골방기도라고 할 때, 그 골방에서 모든 기도가 끝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골방에서 나올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기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정경일 씨가 쓰신 글 ‘수행의 문에 들며’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해 준 글입니다. 아주 훌륭한 일깨움입니다. 우리는 골방에서 나오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 골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골방에서 나오는 그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초점 / 들어가야 나올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초점은, 들어가야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것들이 기도제목입니다. * 사람들 사이의 갈등, * 경제적인 쪼들림, * 미래에 대한 불안, * 현실적 삶의 고달픔, * 전쟁 위험의 한반도 상황, * 자녀 교육 문제, * 생태계의 위기, * 건강의 걱정 … 정치경제 사회문화 모든 차원의 ‘생로병사’(生老病死), 그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기도제목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기도제목들이 아름답고 신비롭게 꽃피는 결실로 열매 맺으려면, 반드시 종을 치는 일, 즉 골방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골방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골방에서 나오는 기도를- 즉 제대로 된 참된 기도들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골방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원의 종을 쳐야만, 그 소리를 듣고 마침내 꽃들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골방기도의 영성’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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