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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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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135744534 |
2011년 8월 21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2장 16절
설교제목 : 진리의 사람
<영성 시>
오늘
/ 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마태 2:16)】
<성경 이야기>
동방의 박사들이 이스라엘 땅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고자 했고, 이 소식을 들은 헤롯 왕과 그 신하들은 경악합니다. 마침내 동방의 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떠나고, 헤롯왕은 교활하게도 ‘유대인의 왕’을 찾으면 이야기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물론 죽이기 위해서였겠지요!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인 ‘아기 예수’께 경배한 후, 그들이 찾은 유대인의 왕을 헤롯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빠져나갑니다. 나중에 이를 안 헤롯은 미친듯이 화를 내었고, 정말 잔혹하게도 베들레헴 인근의 갓난아기 모두를 살해하는 죄악을 저지릅니다. 물론 하늘의 도우심으로 아기 예수 일가는 이집트로 탈출해 성공했고, 훗날 헤롯이 죽은 후에 다시 돌아와서 나사렛이라는 마을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의 줄거리입니다.
<성경 읽고 느낀 점>
오늘 성경을 읽고 느낀 점을 세 가지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예나 지금이나 원래 세상(세속 권력)은 하느님의 아들(진리의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닿는 대로 그 진리의 사람을 죽이려고 온갖 술수를 다 부린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세상은 진리의 사람을 죽이려고 할까요? 그것은 곧 진리의 사람이 세속의 권력(돈, 명예, 쾌락)에 대해서 끊임없는 회초리를 내려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해전 권정생 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대근 씨(경향신문 기자)는 이렇게 권 선생의 삶을 요약했습니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속의 거대한 권력층들은 진리의 사람이 핍박하고 죽이려 합니다.
그런 명백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메시지가 오늘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둘째, 진리의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때로는 어이 없이 죽기도 합니다만).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가까스로 예수의 가족들은 이집트로 탈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가까스로’입니다. 진리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겨우 겨우’입니다. 진리의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데,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란 죽음과 아주 가까운 ‘겨우겨우 죽지 않고 사는 삶’인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가족들이 베들레헴을 떠나서 이집트로 갔다가 나사렛로 돌아와서 살았다”는 이 한 줄의 이야기 속에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들어 있을까요? 아마 모르면 몰라도, 그 긴 여정 속에서는 무수한 죽음에의 위기들이 놓여져 있었을 것입니다.
셋째 예수의 삶이란 곧 그를 대신해서 죽은 베들레헴 인근의 수백 수천 아기들의 목숨값이라는 점입니다. 아기 예수 때문에 베들레헴 인근의 무수한 아기들의 처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예수는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예수는 이를 잊지 않고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 때문에 죽임을 당한 수천 명의 생명들을 대신해서 이 땅에서 아주 훌륭하게 살아주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민중신학자 서남동 선생은 나이 들어 철이 들 때부터 그의 서재에 동학혁명의 주동자 전봉준의 사진을 걸어놨다고 합니다. 그래요. 아주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계승’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요? 당연히 오늘 지금 살아있는 우리는 과거에 살았던 진리의 사람들을 오늘날에 계승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과거에 진리의 사람으로 살았던 이들은 한결같이 역사의 무대 속에서 처참하고 비극적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남동 선생이 전봉준을 계승한다는 것은 한 개인이나 인물에 대한 계승이 아니라, 진리의 사람에 대한 계승이었던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진리의 사람’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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