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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열매

누가복음 신윤식............... 조회 수 503 추천 수 0 2016.03.08 23:59:47
.........
성경본문 : 눅3:7-14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대구시 국우동) http://www.onlycross.net/ 

제목 : (11강) 회개의 열매 
본문 : 눅3:7-14  

2012-05-20

 

<본문>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설교>

 

◉ 누가복음과 데오빌로 ◉


누가복음이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로마의 관리에게 보낸 편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누가복음이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님을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고, 예수님을 방문한 사람도 들에서 양을 치던 당시 사회적 계급으로 볼 때 천한 신분의 목자로 언급을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리아의 찬양에서도 예수님을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시며,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게 하시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시는 일을 하실 분으로 언급되는 것도 누가복음이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낸 편지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을 보면 데오빌로는 로마의 높은 관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로마의 관리를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는지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지만 사도행전도 데오빌로에게 쓴 편지임을 생각해 보면 누가는 이 데오빌로를 특별히 생각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에게 두 번씩이나 긴 편지를 보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가와 데오빌로의 관계는 단순히 안면이 있는 인간적 관계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교제하는 관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밝히는 것처럼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고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데오빌로는 이방인이고 로마의 높은 관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런데 누가는 무엇을 더 확실하게 하려고 이 같은 편지를 쓰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의 중심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가 증거하고자 하는 것, 다시 말해서 데오빌로로 하여금 확실하게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데오빌로가 로마의 높은 관리임을 생각해 보면 그가 예수를 알았다고 해도 낮고 비천한 자리에 오신 예수님으로는 알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낮고 비천한 자리에 오신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 신자는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세상의 힘과 권력의 허망함에 대해서 알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세상의 힘과 권력을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즉 가치관에 대한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십자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참된 권위와 힘은 세상에서 누리는 힘이나 권위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데오빌로의 높은 지위와 권력이라는 것도 낮고 비천한 자리에 오신 예수님 안의 세계에 들어가 보면 자랑할 것이 아님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안다고 할 수 있고, 예수님의 세계를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확실하게 하고자 한 믿음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오늘 본문이 말하는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독사의 자식 ◉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이라고 소리칩니다. 유대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은 단순한 욕이 아니라 마귀의 자식이라는 뜻의 말입니다.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충격적인 말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소리친 무리를 향해서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말하면서 육신의 관계는 구원에 있어서 아무런 효력도 의미도 없음을 증거합니다.

 

 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것은 어떤 사람도 죄 사함의 회개가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부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이라고 해도 죄 사함의 회개가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 들어갈 수 없고 결국 저주의 사람으로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 사함의 회개 앞에서는 민족이나 신분 등 높고 낮음의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5,6절)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의미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찾고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높아짐으로써 신분의 차이가 벌어지게 되는 것을 예수님이 주신 복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확실한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위치와 신분에서 예수님을 생각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데오빌로처럼 높은 자리에서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누리는 힘과 권력을 그 증거로 여기는 것입니다.

 

 상적 조건에서 아무 부족함이 없고 누릴 만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예수님을 찾으면서도 인간의 본질적 문제인 ‘죄’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면서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지 설마 독사의 자식이겠는가’라는 생각을 할 뿐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하고 나오기 때문에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같은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목사입니다. 목사라는 것 때문에 자신을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신이 설마 독사의 자식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목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런 방식으로 되는 것이라면 돌멩이도 목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목사 역시 죄 사함의 회개가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라는 것을 앞세워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문제 앞에서 목사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사실 목사의 자리에 있는 분들치고 목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라고 해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 간다는 것을 믿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목사라는 신분이 교회에서 종교적 기득권을 누리는 어떤 힘으로 등장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목사와 평신도라는 차별적이고 계급적인 구분이 아니라 단지 역할의 차이와 구분으로만 이해되어야 할 것이고, 예수님 앞에서는 하나같이 죄 사함을 받아야 할 동일한 존재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의미를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외친 것은 무리들이 여전히 자신의 육체적 신분과 조건에 매인 자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유대인으로, 힘 있는 자는 힘 있는 자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로, 부자는 부자로, 세상적 조건과 신분을 그대로 가진 채 나오기 때문에 독사의 자식이라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계 안에서 세상적 조건과 신분이라는 것은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무엇을 하리이까 ◉

 

요한의 말을 듣고 무리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묻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는 요한의 말에 ‘우리가 무엇을 하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무리의 물음에 요한은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11절)고 답합니다. 무리에 이어 세리들도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묻고 요한은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하고, 군인들의 같은 물음에는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답합니다.

 

 이것을 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마치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과 연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옷 두벌 있는 사람이 옷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은 구제로 이해할 수 있고, 세리가 부과된 것 외에 거두지 않는 것은 양심적인 삶으로 이해할 수 있고, 군인이 강탈하지 않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않는 것 또한 힘으로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 도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양심과 도덕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 회개의 열매는 신자에게서만 드러날 수 있는 독특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양심과 도덕의 삶은 회개와 상관없이 누구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말은 행위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에서 접근을 해야 합니다. 행위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게 되면 말 그대로 옷 없는 자에게 옷을 나눠주고 세금을 더 부과하지 않고 약자에게서 강탈하지 않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않는 행위가 있는 것으로 죄 사함의 회개를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된 증거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적 의미에서 접근하게 되면 옷을 나눠주고 세금을 더 부과하지 않게 되는 것에서 죄 사함의 회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1절의 내용은 사실 구제의 의미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옷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옷은 두벌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것도 모두 갖고 싶어 합니다. 혹 옷 없는 자에게 옷을 준다면 싫증이 나서 입지 않는 옷일 것입니다. 따라서 옷을 주라는 것은 삶의 방향과 즐거움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죄 사함의 회개는 나 같은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되었음을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회개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삶의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옷과 먹을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이 아니고, 자신의 부를 늘리는 것 또한 허망한 것임을 깨달았기에 세금을 더 부과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세상의 힘과 권력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았기에 힘으로 강탈하지 않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않으며 받는 급료를 족한 줄 알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적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믿음을 말하면서 여전히 세상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면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의 기쁨을 누리는 믿음의 세계를 알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데오빌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각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고, 힘과 권력을 가진 자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여기며 그 같은 성공이 자신의 삶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부도 힘도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에 확실하게 새겨 두어야 합니다.

 

 신자는 새로운 기쁨의 세계를 알게 된 사람입니다. 죄 사함의 회개를 통해서 참된 기쁨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깨달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돈과 권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고 믿기 때문에 돈과 권력으로 사는 것보다 은혜로 사는 것에서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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