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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14 추천 수 0 2020.10.26 22: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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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5:34-37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9.1.8주일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검색과 사색 그리고 탐색

15:34-37, 19:28-30


새해 들어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첫 주일에 저는 저 자신이 금년에는 시선을 바꾸고, 해석을 달리하며 살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서는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자신의 시점과 언어로 지금은 구원을 받을 때다했던 이야기를 했죠.

 

시선의 전환이란 이런 겁니다. 우리는 살찐 사람을 돼지 같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돼지가 살찐 짐승이라는 전제에서 하는 표현이죠. 그런데요, 돼지가 실제 살이 찐 걸까요? 아니면 다리가 짧아서 살찐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 만약 돼지가 지금의 다리 길이가 아니고 소나 말 정도의 다리 길이라면 그때도 돼지는 살찐 짐승이라는 선입견을 가질까요? 그러니 돼지가 본시 살찐 짐승이 아니라 사실은 다리가 짧기 때문에 살찐 것처럼 보인다는 전환이 일어나죠. 시점을 바꾸면 대산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는 인생을 사는 일에도, 성서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에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가볍게 하려고 합니다. 지난 연말부터 무거운 주제만 다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점의 전환이 어떤 것인지도 보여드리려고 그러는 겁니다. , 사실은 그래도 또 여러분에게는 어려울 테지만 말입니다. 여하간 오늘은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위대한 음악가들인 베토벤과 모차르트에 견주어 보고, 베토벤의 음악이 마가복음의 해석경향과 같은지, 모차르트가 요한복음의 음률과 같은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를 위해 보엠이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1악장(혹은 4중주)을 직접 연주하고, 베토벤은 연주 동영상을 통해서 들어보는 고급진 설교를 해보려고 합니다.

 

다시 말 할 필요도 없이, 베토벤과 모짜르트는 고전 음악의 어마어마한 거장들입니다. 그러나 음악을 아는 이들이 말하길 두 사람은 작곡형식과 기법에 있어서 서로 대립적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다른가 하면, 베토벤은 격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모차르트는 내적자유를 노래한다고 합니다. 베토벤이 폭풍우가 치는 산허리를 오르다가 후퇴하고 또 오르다가 후퇴하는 힘 겹고도 거대한 반복을 지속한다면, 모차르트는 이미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구름에 앉아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평화롭고 기쁘게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태양이 대낮의 사막을 이글거리게 하는 태양이라면, 모차르트의 태양은 청명하고 신선한 가을 해변가를 비추는 아침 햇살과도 같다 하겠습니다.

 

자 이것을 신학적 용어, 신학의 언어로 바꿔보겠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지상의 고통스러운 인간들의 삶과 연결되고, 모차르트의 음악은 천상의 영화로운 신성과 연관이 된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인생살이가 괴로울 때는 베토벤의 음악이 공감이 갈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평화를 느끼고 싶다면 모차르트의 음악이 유효하다 하겠습니다. 산의 깊은 계곡과 정상, 해방을 갈망하는 끊임없는 고투의 아픔과 신비스러운 합일의 기쁨이 두 거장의 음악에서 대조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절망이 베토벤의 음악이라면 아름답고 청아한 목소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인 거죠. 인간의 수치와 하나님의 영광이 베토벤과 모짜르트의 음악에서 상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음악적 해석이 성서 즉 신약성서에서는 어떻게 연관지어질 수 있을까요? 신약성서는 이 양극단이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서 속에 등장하는 예수를 어느 한 곳에서만, 어느 한 사건을 통해서만 섭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기도 하지만, 병든 사람을 고치기 위해 마을로 내려와 온갖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다. 제자들을 이끌고 변화산에 오르기도 하지만 곧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도 말하는 분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하지만 다시 인간의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기도 합니다.

 

마가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체포, 재판, 십자가형, 죽음을 생생하게 묘사한 수난 이야기(14~15)를 통해 예수님의 인간적인, 세상적인 수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보도하는 예수님의 최후의 말이 뭔지 아시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15:34)였습니다. 절망적인 고뇌에 찬 외침이고 탄원입니다. 이 장면 후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면서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15:37). 마가는 심지어 예수가 하나님에 의해 버림을 받았다고 묘사합니다. 이제 이를 앞에서 말씀드린 베토벤과 모짜르트에 연결해 보면 마가가 전하는 예수의 모습은 두 거장 음악가 중 누구의 음악성과 닮아 있습니까? 지상에서의 고뇌에찬 삶과 고통을 그리는 베토벤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고 하면서 껄껄 웃으며 하늘로 휙~ 날아가는 모차르트 입니까? 우리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때( 자주 듣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누가 베토벤을 이야기할 때면)마가복음에서 마가가 전하는 예수의 삶을 회상하고 현재의 나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아니면 반대로 마가복음을 읽을 때 베토벤의 음악이 귀에서 가슴으로 출렁거리며 흘러 나와야 합니다. 이게 시점의 전환이 가져오는 성숙이며 변화입니다.

 

그래서 베토벤 교향곡 [영웅]2악장을 동영상으로 보고 다시 설교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말씀 드린 대로 그런 느낌이듭니까? 마가복음을 읽는 거 같습니까?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마가복음서에서에 등장하는 그런 인생고에 고통스러워하는 예수는 없습니다. 물론 요한복음에도 예수님의 수난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의 수치에 시점이 있지 않습니다. 다른 시선으로 예수님의 삶을 보고 해석한다는 겁니다. 사람은 그가 보고 해석하는 것을 따라 그의 행동과 감정과 자치와 방향성이 정해지는 법이기 때문에, 뭘 보는지, 어떻게 보는지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게 곧 그 자신이 되기 때문이죠. 요한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마가처럼 보지 않고 예수님의 영광과 회복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으로 봅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육체적인 모습을 제기하기는 합니다(1:14). 그러나 그의 강조점 즉 시선은 예수님의 신적인 모습에 있습니다. 요한이 보도(보고 느끼는)하는 예수님의 최후는, 마가복음서의 고통스러운 외침과는 반대입니다. 요한복음 19:30을 보세요. 거기서 요한은 예수가 죽는 장면에서 예수님이 울부짖었다고 하지 않고 아주 엄청난 초월성을 지닌 언어로 다 이루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을 사랑한 하나님의 얼굴로, 어마어마하게 큰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교회 보엠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디베리티멘토 F장조를 들어 보겠습니다.

 

자, 우리는 이제 두 개의 시선으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마가복음은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하고 요한복음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 한다

 

평생 여러분이 듣던 중 처음으로 들어보는 소리일 겁니다. 그러나 이건 소리가 아니라 다른 시선을 가진 존재의 내면을 읽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생은 대부분 어느 하나의 고정된 시선으로 살아가는 외눈박이입니다. 거기서 온갖 삶의 부당과 불편과 내적 고통이 쉴 새 없이 번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한 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좀 더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생을 살려면 시점이 유연해야 합니다. 요한의 모짜르트도 듣고, 마가의 베토벤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상이나 삶의 스타일이 서로 다른 것은 괴로워하거나 제거해야 할 품목이나 대상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상보하고 기뻐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유연한 시점으로 사는 인생에게는 말입니다.

 

시선은 세 가지 삶의 양식으로 결정됩니다. 검색해서 얻어낸 시선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시선은 휴대폰이나 컴퓨터의 자판을 치면 나오는, 가공된 타인의 것을 손쉽게 차용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은 이런 것에서 자기 시선을 갖습니다. 이런 시선은 과거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보다는 창의적인 시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명상함으로써 얻어내는 사색이라는 시선입니다. 이건 순전히 자기의 시선이고 깊이가 있고, 감정이나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이런 시선은 현재를 관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사는 시선이 있습니다. 이 시선은 탐색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이런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모험심을 갖고 뛰어듭니다. 과거에 기대거나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미래가 열리는 것입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탐색적인 시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아닙니까?

허태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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