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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462 추천 수 0 2016.06.11 23: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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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5:19-26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5.9.27 주일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창25:19-26


  지난번에 방글라데시 방문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온 순간 세상에 이렇게 좋은 집이 다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좋은 나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살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물론 우리보다 더 좋은 나라,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방글라데시와 같은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나라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된 일입니다. 그것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남자로 태어나느냐 여자로 태어나느냐,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 부자 집에서 태어나느냐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일을 보게 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결혼한 후에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는데, 리브가는 20년 만에 마침내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의 태속에는 쌍둥이 아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리브가가 이 문제를 하나님께 여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태속에 있는 쌍둥이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두 아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동생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들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의지와 성품, 노력이나 인물됨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해 놓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택의 교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 기독교의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교리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일이 순조롭지 못할 때


  우리는 예수 믿은 후 모든 일이 순조롭고 형통할 것을 기대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통함을 주십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도, 때로는 일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오묘한 뜻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우리는 이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전도서7:14상)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20년 동안이나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모든 축복과 하나님의 언약을 물려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려면 이삭도 빨리 아들을 낳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도록 리브가는 임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 부부에게 이런 어려운 일이 생겼을까요?


  오랫동안 기다린 후에야 아들을 낳은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가 비슷했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이나 기다린 후 100세가 되어서야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삭은 결혼하고 20년을 기다린 후 60세가 되어서야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은 25년이 지난 후 100세가 되어서야 약속하신 아들을 낳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들은 자연적은 방법으로 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삭의 경우 역시 하나님께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삭의 경우에는 같은 아들, 쌍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대하여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오랫동안 기다리며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슬하에서 자라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예비해주신다는 것을 경험으로 확인하면서 배웠습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독자인 이삭 자신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도, 하나님께서 제물로 드려질 양을 이미 준비해놓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해주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후 처음 몇 년 동안은 아들이 없어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 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자, 마침내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삭이 그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21절)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쌍둥이 아들을 주실 작정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을 통하여 이루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이삭과 리브가의 관심을 집중시키셨으며,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고, 마침내 그 기도를 응답해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고, 일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신데, 왜 그런 일이 생길까요?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가르쳐주시고자 하시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럴 때 불평하거나 실망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선하시고 놀라우신 계획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일이 잘 안 되는 것이 문제입니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기도하기를 힘쓰십시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며, 우리를 향하신 선하시고 놀라우신 계획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태속에서 싸우는 두 아들


  20년 동안이나 자녀를 낳지 못했던 이삭이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가 쌍둥이 아들을 잉태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아들들이 태속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22절) 아마도 처음에 리브가는 자신이 쌍둥이를 임신한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쌍둥이 아들들이 배속에서 서로 싸울 때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단지 배가 요동치며 아파서 매우 놀라고 걱정을 했을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당장에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로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가 쌍둥이 아들을 임신했다는 것과, 그 쌍둥이 아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23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리브가는 왜 자기 뱃속에서 태아가 그렇게 요동치며,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한이 차서 리브가는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60세였더라”(24-26절)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이 쌍둥이 아들의 출생에 있어서 특별한 점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태중에 있을 때부터, 즉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들에 대한 뜻과 계획을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쌍둥이 아들 중에서 아우를 택하셔서 형보다 강하게 하실 것이며, 형은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선택은 자연적인 어떤 조건 때문에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 같이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에게서, 그것도 쌍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은 또 어떤 선행이나 공적에 의해서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기도 전에 선택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앞으로 나타내게 될 성향을 미리 아시고, 그 중에서 더 선한 쪽을 택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두 아들이 태어났을 때, 사람이 보기에 더 바람직한 경향은 보인 쪽은 오히려 형 에서였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장자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대장부답게 씩씩하고 튼튼했습니다. 반면에 동생 야곱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 9:10-13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러면 이 선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선택은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약한 자를 택하셨습니다. 택함을 받은 야곱이 어떤 선한 행동을 했거나 노력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에서가 버림을 받은 것은 어떤 악한 행동을 했거나,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어떤 장점을 보이거나 선행이나 노력을 하기도 전에 선택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선택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 선택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원리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고쳐먹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선한 일을 행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된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믿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선한 마음이 있거나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안 믿는 사람들 중에 우리보다 착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건 없이, 오직 당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서 우리를 택해주셨습니다.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가장 은혜롭고 복된 진리


  리브가가 낳은 쌍둥이 아들 중에서 하나님 백성이 될 만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둘 다 하나님 백성이 될 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중에 하나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두 사람을 다 택하지 않으시고 한 사람만 택하셨습니까? 그것은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따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셔야 할 의무나 책임이 전혀 없으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시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와 버리신 자의 특징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삽니다. 누가 그렇게 시켜서가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자기 맘대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죄를 짓는 일이든, 원하는 것을 즐기는 일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습니다. 많은 고난과 손해와 욕을 당합니다. 그러면서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욕을 당해도 같이 욕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은 아무리 인간적인 본성이 끌린다 해도 외면하고 포기합니다. 어떻게 보면 모자라는 사람 같기도 하고, 바보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연단을 받아 점점 거룩하고 성숙된 모습을 갖추어 갑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을 점점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오늘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실을 확인해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이 진리에 대한 오해와 반론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시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선행이나 장점이나 노력이나 잠재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공평하시지 않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20-21) 하나님께는 권한이 있으시며, 우리는 그 분의 섭리와 무한하신 지혜를 알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셨다면, 전도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굳이 전도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결국 믿게 될 것이며, 택하시지 않은 자들은 아무리 전도를 해도 믿지 않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이끌어 내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하실 때는 반드시 먼저 믿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반드시 전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택함 받은 자인지를 알아야 전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 없지만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하면 믿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인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선행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택하신다면, 택함을 받아 구원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해도, 택함을 받았다면 어차피 천국에 들어가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자격도 없이, 아무 공로도 없이 오직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가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해서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충성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기를 원하고 힘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각 사람이 행한 것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택하시고 구원해주신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해서, 또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칭찬과 상급을 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도 없이 나를 택하사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합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은혜를 생각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충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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