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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죽음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779 추천 수 0 2016.04.15 23: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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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3:1-9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5.8.9 희망의교회 

사라의 죽음                            

창23:1-9
 
    죽음에 대하여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당신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은 본래 죽지 않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후 죄의 결과로 죽음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입니다. 사람들은 죽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죽음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도 역시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죽음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이제 우리에게는 죄에 대한 형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죽음은 더 이상 죄에 대한 형벌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성도에게는 죽음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죽음은 더 이상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고,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그 문을 통과하면, 우리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죽음이 복된 것이 되었습니다.


  불신자의 장례식에 가면 난감하고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슬퍼하는 사람들도 불쌍하지만,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정말이지 불쌍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장례식에 가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지 모릅니다. 죽은 성도는 모든 싸움을 마치고 하나님의 품안에서 안식을 얻게 되었으니, 정말 복되고 부럽기까지 합니다. 남은 사람들은 슬픔을 이기기 어렵지만, 부활과 하늘의 소망이 있으므로 얼마든지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복되고 귀합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합니까? 성도에게는 죽음이 더 이상 저주와 형벌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과 축복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사라의 생애


  본문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정숙했던 믿음의 여인 사라가 죽은 것입니다. 사라는 127세를 살고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장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날 때 아브라함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그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삶이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당했던 모든 고생과 두려움과 실패와 갈등은 모조리 사라의 몫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죽는 날까지 사라는 아브라함과 함께 이방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낯선 곳으로 이주할 때마다,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자기 아내 사라를 빼앗아가기 위해서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늘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두 번이나 아내를 빼앗겨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아내를 빼앗겨버린 아브라함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지만,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사라는 더욱 힘들고 난감했을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못난 남편이 있을까요? 만일 그런 남편이 있다면 많은 아내들이 그런 남편과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하면서 헤어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그러한 남편 아브라함을 한 번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아브라함을 주라고 부르며 복종하고 섬겼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될 것이니라”(벧전3:6)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사라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이보다 더 수치스럽고 불행한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낳지 못하던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은 영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라에게 큰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기다리다 조바심이 난 사라는 끝까지 참지 못하고, 자기의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어 이스마엘을 낳게 했습니다. 그것은 사라의 실패였으며, 그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과 사라는 큰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결국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신 지 25년 만이었고, 그 때 사라의 나이는 90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사라를 붙드셔서 결국 승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라가 죽었다는 것은 이 모든 싸움을 마치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사라는 험한 나그네 인생길을 다 마치고, 그에게 주어진 싸움을 다 싸우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라의 죽음은 참으로 복된 죽음이며, 승리한 죽음이었습니다.


    슬퍼하는 아브라함


  그러나 사라의 죽음은 아브라함에게 큰 슬픔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사랑하는 배우자와 사별하는 일보다 더 슬프고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일생의 고락을 함께 나누며 서로 의지하고 살아온 배우자가 죽을 때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습니다. 저는 홀로 되신 어른들을 뵐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런 일을 당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해했습니다(2절).


  성도가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해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요? 우리가 가까운 친척과 형제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은 고인에 대한 사랑과 예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이러한 슬픔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순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죽은 친족 때문에 지나친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마치 모든 소망이 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절망적이고 원통한 마음으로 슬픔을 이기지 못하며 통곡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우리의 영원한 본향과 안식처는 이 세상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우리도 이제 곧 하나님께로 갈 것임을 기억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부활을 믿지 못했다면, 어떻게 외로운 나그네 길에서 그 슬픔을 감당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하여 불신자들처럼 결코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죽음에 대한 태도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을 매우 애통해했으며, 죽은 아내를 장사하기 위해서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지낼 매장지를 구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헷(히타이트) 족속의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에게 사라를 장사지낼 매장지를 제공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3-4절). 그러자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기꺼이 자기들의 땅 어디에든지 죽은 사라를 장사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5-6절).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가 원하는 땅을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사기를 원했습니다(7-9절). 아브라함이 왜 굳이 헷 사람들의 호의를 사양하고 매장지를 사려고 했을까요? 아브라함이 땅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아브라함은 그 동안에 얼마든지 많은 땅을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사지낼 매장지를 사고자 했던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을 매우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라를 위해 특별한 무덤을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사람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그래서 장례절차가 상당히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어갑니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복잡하고 사치스러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은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시체를 너무 함부로 방치하여 문제가 될 지경이었습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풍수지리설을 도입하고 장려하여 장례를 중요시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조상을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을 귀하게 여긴 것은 그녀가 믿음으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그냥 무료로 자기들의 매장지를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의 시체를 이방인들의 시체와 함께 묻을 수 없었습니다. 사라는 세상과 죄로부터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철저한 신앙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를 위해 구별되고 순수한 무덤을 준비하기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아브라함도 사라의 죽음을 귀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을 중요하게 여긴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땅을 한 평도 소유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사라를 장사지낼 매장지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자기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매장지를 구입하여 사라를 장사지내고, 그곳을 장차 집안의 매장지로 삼을 작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나중에 아브라함도 그곳에 묻혔으며, 이삭과 리브가도 그곳에 묻히게 됩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죽을 때 자기를 아브라함이 준비했던 바로 이곳에 묻어주도록 유언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영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당을 찾아서 묘를 써야 복을 받는다는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그곳에 묻히고자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이곳에 가족 묘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자기와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음의 표시로 가나안 땅에 매장지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후손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사라의 무덤을 마련하기 위해 땅을 산 것은 자신의 믿음을 나타낸 것이었으며, 또 후손의 믿음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어야만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을 물려주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자녀들에게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할 수만 있다면 좋은 예배당과 환경을 물려주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좋은 믿음을 가지고, 우리보다 훨씬 더 풍성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 때문에 하나님을 더 잘 믿고 섬길 수 있게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다음 세대는 우리가 다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최대한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지도자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불렀습니다(6절).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이름입니까? 아브라함은 비록 이방 땅에 유리하는 나그네였으나,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분명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았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성의껏 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일마다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고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으며,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당신도 이러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반드시 거룩하고 구별된 성도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야 하며, 누가 봐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 희생하며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사람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우리 희망의교회 성도들은 어디서나 이렇게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뛰어난 신앙인격을 가지고 사람들을 감화시켜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까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고향인 밧단 아람을 떠나 가나안으로 온 이후, 사라가 죽을 때까지 60여 년 동안을 이방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죽었을 때, 그에게는 죽은 아내를 장사지낼 땅 한 평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어려운 시험도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사라는 믿음의 싸움을 다 마치고 마침내 영광스럽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사라의 생애는 믿음으로 승리한 생애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복을 받았지만, 가나안 땅에서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믿음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너무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에서 출세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 마지막에 탈선하거나 실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그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충성한 것은 모두 헛것이 되고 맙니다. 이제 중년을 넘긴 성도들은 잘 죽을 준비를 미리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인생을 잘 정리해야 합니다. 더욱 하나님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승리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후회 없이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잘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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