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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김근철 외4............... 조회 수 398 추천 수 0 2015.10.16 12:10:03
.........
성경본문 : 요9:32-41 
설교자 : 김근철 외4 
참고 : http://www.saegilchurch.or.kr/349769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9:32-41)

 

2014년 2월 23일 공동체 렉시오 디비나 예배

김근철, 김영희, 박현진, 정선자, 이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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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오디비나 예배풍경.jpg  


요한복음 9:32-41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준 이가 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이 말을 듣고 “너는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예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 하고 대들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김근철 형제,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저는 “눈을 뜨게 하여준 이”라는 구절에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알고 있는 한 시각장애 소녀가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 소녀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본 구절을 가장 좋아합니다. 소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더 기도를 하며 예수님 만나기를 간구 합니다. 과연 이 소녀는 눈을 뜨게 해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안구가 없이 태어나서 어떠한 현대의학으로도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이 소녀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진정 필요한 눈은 어떤 눈일까요?

묵상이 거듭되면서 저는 1년 전의 저를 돌아봅니다. 저는 저와 정치적 색깔이 조금 다르거나, 종교적 신념이 다른 사람과는 선을 긋고 살아왔습니다. 심지어 그런 사람은 제가 만드는 영화에서 채용이나 캐스팅에서 불이익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기독교의 열렬한 선전가로 살았던 것도 아닙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님과 말씀을 듣는 저는 다른 나라의 사람처럼 여겨졌고, 어느 날엔 성경책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책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편견이 줄었고, 하나님을 만나는 눈은 비교적 넓고 다양해졌습니다. 렉시오 디비나에 참여 하면서부터는 한낱 이스라엘의 역사책 같던 성경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변화하게 해준 사람들!


희미하게나마 제 영혼의 눈을 뜨게 해주신 새길 교회 여러분에게 오늘의 말씀에 있는 그대로 여쭙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보낸 사람입니까? 사람의 아들입니까? 여러분은 알고 계셨습니까? 새길 교회 여러분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은 꼭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이 약간 다르지만,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공동체의 자매 형제가, 바로 서로가 서로의 눈을 뜨게 해주는 기적의 주체라고, 오늘 바로 이 말씀을 통해 들었고, 배웠습니다.

  

김영희 자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오늘 주신 말씀은 너무 어렵습니다. 말씀이 잘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적어도 제가 바리새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두려워집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보다, 저를 구원해주실 하느님 만나는 관념에만 충실해왔습니다. 저의 의식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만 머물러 왔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낮은 자들과 함께 하시고 고통 속에서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가운데,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셨던 예수님의 사랑은 제 삶속에서는 관념일 뿐 2천년 전 쓰여진 성경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기도하니 하느님의 뜻을 잘 안다고 생각해 왔던 바리새인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음을, 아니 더 못한 삶을 살아왔음을 봅니다.

  

오늘 이 곳에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은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십니까?

저의 눈이 맑아져서 그 분을 볼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박현진 형제,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저의 가슴을 노크했던 말씀은, ‘유다인들은 이 말을 듣고 “너는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그리고 그 소경은 회당 밖에서 예수를 만났다’ 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그냥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유다인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제가 힘들어하는 기도의 말 중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마무리 기도 때 쓰는 기도인데, “저희가 교회를 떠나 세상에 나갈 때 우리를 도우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세상과 교회와의 ‘경계’가 이렇게 명확해야 할까? 하는 의문입니다. 그 경계가 명확해질수록 우리는 누군가를 정죄하고 당신들의 생각은 틀렸다고 마치 소경을 쫒아 낸 유다인들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길 공동체와 함께한 14년 동안 많은 청년들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청년들과 교류가 많았던 저는 그 친구들과 신앙을 이뤄가는 서로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또, 몇몇 어르신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대화를 하면서 그 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일들이 기억에 납니다.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많은 사람들을 단죄하였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사이에, 교회와 세상을 구분하는 그 경계를 나 자신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가며 내 이야기를 주장했던 모습이 생각나 부끄럽습니다. 난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선자 자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너는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 불구자, 정신병자, 알콜 중독, 왕따, 고아, 이혼녀, 전라도, 전과자, 빨갱이, 의 가족, 동성애자, 미혼모, 주홍 글씨, 바보, 듣보잡들, 죽을병에 걸린 사람, 몹쓸 병에 걸린 사람, 실업자, 비정규직, 시험에 떨어지는 사람, 가방끈 짧은 사람, 부상으로 다시는 재기 할 수 없는 선수, 자식에게 외면당하는 노인, 부모에게 절연당한 사고뭉치, 노숙자, 누구도 진지하게 대해주지 않는 외톨이…

그리고 뱀, 쥐새끼, 거머리, 바퀴벌레, …

  

소경처럼 저희도 회당에서 내쫓겨졌습니다. 당연한듯, 존재하는 차별과 냉대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을 때, 예수, 당신은 오셔서 저희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초심이 사라질 때 저희는 그 뜬 눈으로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바로 보고 바로 믿고 싶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완고한 ‘편견’과 ‘차별’의 질곡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요.

새 길, 예수님의 새 길을 묵상합니다.

  

이선근 형제,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쫓겨나...”, “만나...”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던 본문의 주인공은 한 번도 세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건강한 4 가지의 감각ㅡ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보는 것ㅡ에 의해서 세상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완전한 세상을 느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평생을 실로암 앞에서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며 그는 반복적으로 실패했고, 점점 더 그의 희망은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이 멀어져갔습니다. 그의 희망이 사라져 갈 때 즈음 그는 누군지 모르는 어떤 선한 사람으로부터 볼 수 있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날 때부터 세상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본다고 하는 것은 신비로운 체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온전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회당의 사람들은 그가 보는 것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를 회당에서 쫓아냅니다.

  

제가 들은 부분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쫓겨난 그가 황량한 세상으로 나와 처음 만난 이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보고 있다는 것과 보고 있는 것들을 비로소 믿게 됩니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만났고, 결국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느님의 나라를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느낄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히 보지 못했고 만나지도 못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회당에서 쫓겨나야만 하고 세상으로 떠나야만 합니다. 그곳엔 고통 받는 우리 이웃들의 황량한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세상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야하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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