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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만 하라

누가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415 추천 수 0 2018.11.18 08: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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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40-56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7.12.31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믿기만 하라(1)                           

눅8:40-56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고, 그 독생자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사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돌보십니다.  당신은 이것을 믿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현실적으로 여전히 어려움과 문제를 겪는 것일까요? 이상과 현실의 이 간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간격을 믿음으로 메우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본문에서 우리는 이 믿음을 보게 됩니다. 현실의 문제와 절망을 이기는 길은 오직 믿음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암울해도, 현실에서 아무리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해도, 우리는 믿음으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답이 보이고 결론이 분명해집니다. 믿음으로 견디며 기다리는 가운데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돌보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거라사 지방으로 가셔서 군대 귀신이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시고 갈릴리 지방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누가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라”(40절)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의 기적을 보기 위해,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 모두들 이렇게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간절히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열두 살 된 딸이 죽어가고 있었던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기 집에 가셔서 죽어가고 있는 딸을 살려주시라고 간구했습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41-42절)


  회당은 유대인들의 공공 집회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종교적, 사회적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회당은 예배와 종교적인 모임을 위한 장소였고 학교였으며, 사법적인 절차를 집행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기관이었습니다.


  회당장 역시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습니다. 회당장은 회당 건물의 유지, 보수, 운용을 책임졌으며, 예배와 질서 및 신성함을 유지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특히 예배의 기도자와 토라 낭독자, 그리고 설교자를 선정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회당장은 그 지방의 최고 상류 계층으로서 존경을 받는 직책이었습니다.


  이러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와서 엎드려 간구했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은 갈수록 예수님께 대하여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4장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회당에서 쫓아낸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눅4:28-30)


  이런 상황에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기 딸을 살려주시라고 간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누려온 특권과 신분과 재산까지도 빼앗길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자기 딸을 살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죽어가는 자기 딸을 살려주실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예수님께 엎드려 간절히 구했습니다.


    가는 길에 일어난 사건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의 집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급히 그의 집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의 걸음을 중단시킨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해온 한 여자가 가만히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자기의 병이 나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순간 놀랍게도 그 병이 완전히 나았습니다. 여자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몸에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여자는 두려워 떨며 앞으로 나와 자기의 모든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년 간 혈루증을 앓아온 여자


  이 여자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왔습니다. 이처럼 심한 혈루증을 앓는 여자는 악성 빈혈에 시달리게 되고, 급속한 노쇠현상이 나타나며, 머리카락과 손톱이 빠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이 여자가 겪고 있던 고통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렇게 유출하는 여자는 부정하게 여겨졌으며, 그런 여자와 접촉하는 사람은 물론 물건들까지도 부정해졌습니다. 이런 여자가 누운 침상도 부정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라 그의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함이 이러하니 곧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든지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막혔든지 부정한즉 유출병 있는 자가 눕는 침상은 다 부정하고 그가 앉았던 자리도 다 부정하니 그의 침상에 접촉하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이 있는 자가 앉았던 자리에 앉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씻을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 있는 자의 몸에 접촉하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레15:2-8) 따라서 이 여자는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며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성전과 회당 예배에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이 여자는 병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왔습니다. 마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막5:25-26)


  아마도 이 여자는 상당한 재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병을 고치기 위해 용하다는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느라고 모든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의사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치료법으로 이 여자를 고쳐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느라고 자기 몸을 보여야 했고, 많은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 이제 이 여자는 재산도 다 없어졌고, 병은 더욱 심해졌으며, 더 이상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그러던 중 이 여자는 예수님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나병도 고쳐주셨고, 죽은 자도 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께로 갔던 사람들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께로 가면 자기 병을 고침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찾아가 자신의 병을 고침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병을 앓고 있는 여자는 부정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와 접촉하는 사람은 누구나 부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어떻게 거룩하신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만일 혈루증을 앓고 있는 이 여자가 군중들 속으로 헤집고 들어갔다가 발각된다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몰래 가만히 예수님께 접근하여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만 해도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에서 돌아오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회당장 야이로의 죽어가는 딸을 살리시기 위해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길을 가고 있을 때, 이 여자는 사람들을 비집고 예수님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여자는 자신의 병이 완전히 나은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44절) 이제 가만히 그 자리를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45상) 순식간에 여자의 기쁨은 두려움과 근심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한 일은 율법을 어긴 일이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은밀하게 한 행동이 발각된 것과 그러한 행동이 군중 앞에 공개되는 것에 매우 당황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45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부대꼈습니다. 예수님께 손을 댄 자가 한두 사람이었겠습니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여자는 안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46절)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누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셔서 하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이 여자를 당혹스럽게 하시거나 꾸짖으시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그냥 보내주시지 않고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의 믿음과 그녀가 온전히 치유된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에게 구원의 확신과 위로와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 여자는 부정하게 만드는 병에서 완전히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거리낌 없이 가정과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자, 이 여자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주님 앞에 나와 엎드려서 모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려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47절) 여자의 병이 나은 것과 예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 모든 사람들 앞에 증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녀를 위로하시고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48절) 예수님께서는 ‘딸아!’라고 부르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불러주신 것은 이 여자의 경우가 유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귀하게 여기셨고,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은 그녀가 믿음으로 주님의 치유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었다는 뜻입니다.


  열두 해를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불치병으로 고생해온 이 여자는 예수님께 가면 그 병을 고침 받을 수 있을 줄 믿었습니다. 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여자는 이 모든 장애물을 무릅쓰고 주님께 가서 그분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즉시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믿음과 그녀가 병에서 회복된 것을 모든 사람들 앞에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이 여자는 고통과 수치와 불행과 절망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귀합니까? 주님께서는 이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 믿음대로 허락해주셨습니다.


    결사적으로 주님께 매달리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던 이 여자는 정상적으로는 예수님께 와서 고침 받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녀는 이 병 때문에 부정했고, 그녀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더더욱 갈 수 없었습니다. 이 부정한 여자가 거룩하신 예수님께 나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반드시 병 고침을 받고야 말리라는 결사적인 각오를 가졌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 여자는 모든 규제와 주저함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율법대로 한다면 그 행위는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들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자신의 병이 낫게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적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아시고 그녀의 소원을 허락해주셨던 것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었던 사람들 중에는 결사적으로 주님께 매달렸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 한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귀신들린 딸을 고쳐주시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외치는 여자의 간구를 외면하셨으며, 심지어는 매우 모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15:26) 그러나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15:27) 예수님께서는 결사적으로 매달리는 이 여자의 소원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15:28)


  맹인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질러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바디매오를 꾸짖으며 욕하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더 결사적으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막10:48)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막10:49-50)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막10:51-52)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시23:1).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어려움도 당하지 않게 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믿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떤 기가 막히는 상황에서도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로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십시오, 전능하시고 신실하시며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든지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믿기만 하라(2)                           

 눅8:40-56


  우리는 문제 많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 모든 문제를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전능하셔서 능치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나는 우리가 자주 부르는 이 찬양의 가사를 너무 좋아합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괴로움 바꿀 수 있네 불가능한 일 행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그를 이길 자 아무도 없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께서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당하던 여자에게 완전한 회복과 평안을 선포하신 바로 그 때,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그의 딸이 죽었다는 기별이 도착했습니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49절)


  아무리 병세가 위중하다 해도 살았을 때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죽고 나면 아무리 훌륭한 의사나 좋은 약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슬픔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빨리 가셨더라면, 중간에 혈루증 앓는 여자가 끼어들지만 않았더라면, 딸이 죽기 전에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도착하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원망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집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아이가 죽었으니 모든 것을 단념하고 돌아오라는 기별을 보냈습니다. 야이로는 슬픔과 절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50절) 이미 그의 어린 딸은 죽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버렸습니다. 더 이상 어떤 소망도 기대도 가질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는 자들을 물리치시고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 야이로의 집안사람들은 슬퍼하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이미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 없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시고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세 제자만 데리고 야이로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51절)


  왜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와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들어가셨을까요? 믿지 않는 자들은 방해만 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며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혼자 예배를 드린다든지, 아니면 불신자들이 지켜보며 비웃는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함께 모인다는 것은 너무나도 복되고 귀한 일입니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일 때마다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은혜 내려주시는 것을 늘 실감합니다.


  친구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귀신에 사로잡힌 분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가서 보니 그 사람에게서 귀신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그분의 자녀들이 있었는데, 모두 안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 예배를 드렸습니다. 믿음 없는 그들이 옆에서 구경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귀신들린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데 어찌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초저녁에 가서 자정이 되도록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귀신이 다 나간 줄 알았는데, 잠시 후에 다시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그분을 교회로 데리고 와서 새벽예배에 나갔습니다. 그날 새벽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로 작정하신 것 같았습니다.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되는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사정을 설명한 후 합심해서 기도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저는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열심을 다해 새벽 기도회에 참석한 기도의 용사들과 합심해서 기도하던 그날 새벽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합심기도가 얼마나 힘차고 능력이 있었던지 즉시 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죽은 아이를 살려 일으키시는 일을 그 누구도 방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하며 비웃는 사람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죽은 아이를 살리시는 일에 입회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특별히 훈련하셨던 세 제자만 이 일에 입회시키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일에 쓰임 받는 동역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믿음이 있어야 하며 훈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 그 집은 죽은 아이로 인하여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울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52절)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아이가 죽은 것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비웃었습니다.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53절)


  왜 예수님께서는 아이가 죽었는데 잔다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아이를 다시 살리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는 자는 자나 죽은 자가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죽음을 자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을 잘 때는 마치 죽은 것처럼 의식도 없고 활동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깨어납니다. 이런 점에서 죽는 것은 자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죽으면 다시는 그 모습 그대로 깨어나지는 못합니다. 성경이 죽는 것을 자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부활을 전제하며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지만, 반드시 다시 살아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죽은 후 그 영혼이 하나님 품에 안깁니다. 육신만 죽어서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죽었던 성도는 부활하여 주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됩니다. 이렇게 성도는 죽어도 부활하기 때문에 죽는 것을 자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부활합니다. 그것은 마치 잠에서 다시 깨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예외 없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이 사실은 얼마나 감사하고 안심되는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잠자리에 들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듭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개운하게 회복된 몸으로 일어납니다. 우리의 죽음이 이와 같습니다. 나는 잠들 때마다 이 사실을 생각합니다. 죽을 때도 이렇게 잠자는 것처럼 의식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 즉시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서 깨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 순간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과 기쁨의 나라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단지 늘 살아오던 세상에서 다시 깨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한 영광의 나라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맞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썩어졌던 우리 몸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얼마나 복됩니까?


  우리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이가 죽어 통곡하는 집으로 가셔서 마치 잠자는 아이를 깨우시듯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54-55절) 마가는 예수님께서 아람어로 말씀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5:41) ‘달리다굼’은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마가는 계속해서 아이가 일어나 걸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막5:42) 이것은 죽었던 아이가 완전히 회복된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환난


  누가는 8장에서 예수님께서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심한 광풍을 잔잔하게 하신 것과,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것, 혈루증 앓는 여자를 고쳐주신 것, 그리고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주신 것 등 네 가지 사건을 을 기록했습니다. 이 네 가지 사건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만나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위험하고 힘든 일들, 영적 정신적 고통, 그리고 육신의 질병,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별을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를 죄와 영원한 멸망에서 건져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문제들을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기만 한다면 어떤 환난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22)


  예수님을 따르며 이 모든 일들을 다 지켜보았던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이처럼 환난은 성도에게도 필수적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이길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환난을 이기는 법


  성도가 믿음으로 살아간다 해도 환난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성도는 이 모든 환난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모든 환난을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바다를 명하여 잔잔하게 하셨으며, 군대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졌는데 고칠 수 없었던 병을 고쳐주셨으며,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환난을 정복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성도는 이 모든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자들처럼 이 모든 것을 능히 정복하시는 주님과 함께 있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모든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3:17상) 우리는 이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모든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성도가 서로 교제하며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앞에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성도들과 합심하여 기도할 때 귀신이 즉시 쫓겨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가 함께 모여 예배하며 기도할 때, 함께 교제하며 위로하고 격려할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어떤 환난을 당한다 해도 이 모든 것을 능히 정복하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성도들과 기도제목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십시오. 함께 모여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십시오. 그 자리에 주님께서 오셔서 함께 하시며 이기게 해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환난을 주시는 선하신 뜻


  이처럼 환난은 성도에게 필수적으로 찾아옵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때로는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대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선하고 아름답게 해결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응답을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거나, 환난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주지 않으시고 사별하게 하실 때도 있지만, 하늘의 소망을 더욱 넘치게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성도에게 다가오는 환난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어떤 환난도 성도에게 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환난을 당할 때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며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환난을 통해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 때 우리는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승리를 주시는 주님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떤 환난이나 어려움도 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환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환난에 대하여 대책이 없거나 무력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환난 당할 때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환난을 이긴 후 환난 당하는 다른 성도를 위로하게 하십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3-4)
 
  우리 주님은 전능하십니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자는 누구나 풍성한 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어가는 딸을 고쳐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의 집에 가시기도 전에 그 딸은 죽고 말았습니다. 슬퍼하며 낙심하는 야이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습니다. 야이로는 딸의 병을 고쳐주시기 원했지만, 주님께서는 죽은 그의 딸을 살려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우리의 병을 고치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만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성도는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오직 충성을 다해 주님 섬기는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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