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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삶을 사는 길

히브리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314 추천 수 0 2018.08.03 22: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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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히8:10-13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2349) 

성공적인 삶을 사는 길 (히브리서 8장 10-13절)


< 성공적인 삶을 사는 길 >

 히브리서 8장은 율법의 옛 언약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언약을 비교하고 새 언약이 얼마나 소중한 언약인지를 논증한 장이다. 그 중에서 본문은 새 언약을 받은 신약 성도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준다. 신약 성도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생각과 마음을 키우라

 하나님은 신약 성도의 생각과 마음에 하나님의 새로운 법을 기록했는데 그 법의 핵심 내용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다.”라는 것이다(10절). 성도는 생각과 마음에 “나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다.”라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과 마음을 키워야 성공과 행복 가능성도 커진다.

 ‘이해력’보다 ‘인정력’이 중요하다. 내 이해력을 너무 믿지 말라. 내 이해력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사람의 다름도 인정하라. 이해되지 않아도 인정할 것을 인정할 때 성공적인 삶의 가능성이 커진다. 다 이해해야 인정하겠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사람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차이가 크다. 미국은 한 나라지만 각 주마다 법이 다르다. 그 중에는 이해가 안 되는 법도 많다.

 알라스카 주에서는 곰을 총으로 쏴도 되지만 사진 찍으려고 잠자는 곰을 깨우면 불법이다. 애리조나 주에서는 선인장을 자르면 징역 25년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아칸소 주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한 달에 한번 이상 때리면 불법이다. 미시간 주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허락 없이 머리카락을 자르면 불법이다. 몬태나 주에서는 처녀가 혼자 낚시하면 불법이고 뉴저지 주에서는 경찰에게 인상을 쓰면 불법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틀린 음정으로 노래하면 불법이고 오하이오 주에서는 여자가 한집에 다섯 명 이상 살면 불법이다.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남의 햄버거를 베어 먹으면 불법이고 워싱턴 주에서는 부모가 부자인 것처럼 허풍을 떨면 불법이다.

 사람마다, 문화마다 차이가 많다. 그것을 가지고 “왜 그럴까?” 하고 다 이해하겠다고 하면 불신이 떠나지 않는다. 그냥 인정하라. 이해도 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정이다. 사람은 인정받을 때 행복을 느낀다. 딸이 “나는 커서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할래요.”라고 할 때 아빠는 행복을 느낀다. 자녀가 조금 공부를 못해도 “네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라고 인정할 때 자녀는 행복해진다. 그렇게 행복을 배운 자녀가 나중에 행복하게 잘 산다.

2. 약자를 무시하지 말라

 신약 성도는 주를 알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는데 각자의 생각과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을 따라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11절). 이 말씀은 전도가 필요 없다는 말씀은 아니라 피상적인 가르침만으로는 하나님을 알게 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성령님이 그 마음을 주장해야 온전히 알 수 있다.

 또한 작은 자와 큰 자의 구별이 없이 하나님을 다 안다는 말씀은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한다. 사람은 대개 높고 부유한 사람은 존중하고 낮고 비천한 사람은 무시하지만 신약 성도는 작은 자, 비천한 자,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존중해야 한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했다(막 9:42). 새겨들어야 할 엄중한 말씀이다.

 요즘 많은 것들이 대형화되면서 작은 것들은 점차 설자리를 잃고 있다. 그런 시류에 휩쓸리면 작은 자를 살피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는 목회자가 자기 양의 얼굴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런 흐름을 거슬러서 작은 자를 더 살피면 하나님이 그 모습을 기쁘게 보실 것이다. 외롭게 혼자 지내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가 교만하거나 불의하지 않고 성실한 사람이라면 그와 함께 있어주려고 하라. 그 마음은 성령님이 주신 마음이다.

 지금은 힘이 정의처럼 여겨지는 시대일수록 힘없고 소외된 사람을 더욱 품어주려고 하라. 힘없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주면 세상적인 보상은 없어도 하나님이 보상해주신다. 세상에서 크려면 큰 자에게 아부해야 하지만 영적으로 크려면 작은 자에게 친절해야 한다. 하나님은 작은 자를 향한 마음과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행한 대로 받고 심은 대로 거둔다. 작은 자를 향해 베푸는 친절과 사랑을 자신은 기억하거나 의식하지 못해도 어디선가 축복 나무가 되어 쑥쑥 자라고 있을 것이다.

3.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라

 구약 성도는 죄를 지으면 그 죄에 초점을 맞춰 제사장의 속죄 제사가 필요했지만 신약 성도는 예수님이 모든 죄를 단번에 속하셨기에 그 죄에 초점을 맞춰 속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12절). 그것은 마음껏 죄를 지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죄와 불의에 집착해 자기 존재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거나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말씀이다. 지나친 죄책감은 하나님의 은혜보다 죄를 크게 보는 것이다. 완벽하게 살려는 모습이 지나쳐 안달하면 하나님이 기쁘게 생각하실 것 같지만 사실상 그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오래 전에 교회 학생부 수련회에 가서 아이들에게 나눔을 도전하는 말씀을 전했었다. 그때 나의 두 딸도 수련회에 참석했는데 그 말씀을 듣고 그날 둘째 딸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전도사와 학생들이 저녁 식사 준비를 할 때 내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둘째 딸에게 아빠가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비친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내 품에 안기더니 여러 가지 사랑스러운 말을 했다. 손과 발도 주물러주었다. 말도 뚝 끊고 언니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고 진지하게 나를 섬겨주었다.

 그때 둘째 딸이 갑자기 옆에 있던 아내에게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제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자신이 아빠를 너무 생각하지 않고 까불며 지낸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지나쳐서 그런 말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그렇게 센티멘털하게 되고 까부는 행동이 없어지고 너무 진지하게 나오니까 “이제야 얘가 철이 들었구나.”라고 하면서 대견한 생각이 들기보다 오히려 염려가 되었다. 차라리 평소처럼 밝은 표정으로 까불면서 지내는 것이 훨씬 좋았다.

 그때 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성도로부터 무엇을 원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제까지 하나님을 위해 살지 못했구나.”라고 자책하며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살자.”고 다짐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자책이 지나쳐서 “내가 이렇게 엉터리로 살았다니. 나는 벌레보다 못해.”라고 하면서 웃음도 잃고 완벽하게 살지 못한 자신을 자학하며 살면 하나님은 결코 그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밝은 웃음을 잃을 정도로 너무 진지해지지 말라. 지금 형편과 믿음으로 제대로 헌신하지 못하는 자기를 너무 무가치하게 보지 말라. 헌신에도 때가 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도 매번 옥합을 깨뜨린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헌신하라고 했지 헐벗게 살라고 하시지 않았다. 말씀대로 살려는 모습은 좋지만 말씀대로 완벽하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너무 들볶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밝게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4. 과거에 매이지 말라

 본문 13절 말씀은 불완전한 구약 율법에 너무 매이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과거의 것에 너무 매여 살지 말라는 말씀으로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과거에 집착하는 종교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는 종교다. 과거의 좋은 전통은 살리고 계승하되 과거의 좋지 못한 것이나 기억들은 과감히 버리라.

 교회 열심히 나갔다가 안 나가는 사람 중에는 과거에 교회생활을 할 때 큰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 사연을 들어보면 대개 누군가가 자기를 실족시켰다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는 하루 빨리 잊는 것이 좋다. 누가 실족시켜도 내가 실족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라. 실족을 너무 잘하는 것도 문제다.

 어느 날 한 교인이 목사에게 와서 따졌다. “왜 사모님이 새벽에 기도할 때 나보고 교회를 나가라고 기도합니까?” 그 말을 듣고 목사가 사모에게 “정말 그렇게 기도했느냐?”고 묻자 사모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목사가 “그래도 새벽에 어떻게 기도했는지 자세히 생각해 보라.”고 했다. 자세히 생각해보자 그 교회에 해외 취업을 간절히 원하는 성도가 있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그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그가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 기도를 듣고 자기를 나가라고 기도했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가끔 보면 실족하려고 5분 대기조처럼 대기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때는 설교를 듣고 실족한다. 때로는 말씀이 내 기분을 잡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말씀을 들을 때는 기분 좋게 되지 않아도 좋다고 마음의 대비를 하라. 그러면 실족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 왜 어떤 말씀이 남에게는 은혜롭게 들리는데 내게는 민감하게 들리는가? 그 말씀과 관련된 과거의 내 상처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 상처를 잘 승화시켜야 한다. 과거에 아무리 힘든 상처를 겪었어도 여전히 나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자녀임을 잊지 말라.

< 마음 관리가 중요하다 >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결국 마음 관리가 중요하다. 자기중심적인 마음은 확실한 실패 요소다. 반면에 말씀중심적인 마음은 확실한 성공 요소다. 말씀은 죄를 책망하고 내 변화를 도전하지만 세상은 죄를 지어도 “오냐? 오냐?”하고 그 죄를 합리화시키려고 한다. 많은 현대 철학, 교육학, 상담학, 심리학 등이 죄를 합리화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그런 풍조 때문에 다 남 탓만 하고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예전에 신용 불량자가 많아지니까 세상 여론은 “왜 정부에서 돈을 막 빌려주는 카드정책을 썼느냐?”고 질타했다. 안 갚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빌려준 것이 나쁜 것처럼 된 것이다. 예전에 세상을 비관한 장애인이 지하철에 불을 질러 큰 인명피해를 내자 어떤 신문은 “왜 장애인을 푸대접해서 그런 일을 초래했느냐?”고 했다. 장애인을 생각해주는 말 같지만 오히려 모욕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장애인은 장애가 있어도 책임적으로 열심히 잘 살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조적인 악을 내세워 개인의 죄를 합리화하면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 죄를 지었으면 야단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때 야단맞았다고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하게 여기면 영혼까지 망한다. 말씀을 통해 “내가 이런 죄인이었구나. 내게 이런 이기심이 있었구나.”라고 하는 애통한 심령을 가져야 참된 속죄와 치유가 나타난다. 불행이란 고통을 실족과 상처의 기회로 삼는 것이고 행복이란 고통을 회개와 변화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실족하게 하는 것도 죄지만 잘 실족하는 것도 죄다. 실족하게 하는 것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죄’이고 잘 실족하는 것은 ‘남 탓에 기반을 둔 부정적인 죄’다. 가끔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 환경 탓이나 사회 탓을 하는 사람이 있다. 무책임한 모습이다. 배고픈 환경은 도둑도 만들지만 성인도 만든다. 환경 탓과 사회 탓과 남 탓을 최대한 삼가라.

 어떤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갔는데 거기서도 탓했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실족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불행한 변명이다. 내 영혼을 사탄에게 판 것은 내 탓이지 남 탓이 아니다. 내 불행을 가족 탓으로도 돌리지 말라. 가족은 사랑과 격려의 대상이지 탓할 대상이 아니다. 힘든 환경에서도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의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마음과 생각을 건강하게 만들고, 힘없는 약자를 존중해주고,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과거의 상처를 잘 잊고 내일을 향해 열심히 뛰어 달림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복된 심령들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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