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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낮아짐과 높아짐

빌립보서 정용섭 목사............... 조회 수 390 추천 수 0 2017.07.05 11: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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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2:5-11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928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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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낮아짐과 높아짐

빌 2:5-11, 사순절 여섯째 주일, 2017년 4월9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2)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3)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찬송 부르기는 기독교 예배의 오랜 전통입니다. 찬송가는 가사와 멜로디로 되어 있는데, 가사가 먼저입니다. 그 가사에 어울리는 곡조를 붙이면 찬송가가 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부르던 찬송의 일부가 신약성경에 나옵니다. 그중의 하나가 오늘 제2 독서인 빌립보서 2:6-11절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그리스도 찬송’이라 불리는 내용을 인용한 겁니다. 이것은 찬송가 가사이기도 하고, 기도문이기도 하고,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바울 덕분으로 초기 기독교인들이 어떤 찬송을 불렀고,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봅시다.


크게 보면 본문은 두 단락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6-8절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나님에게 순종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9-11절로서 하나님이 예수를 지극히 높은 자리로 올려서 모든 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락부터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첫 단락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두 번째 단락이 첫 단락의 신학적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높아지심


9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셨다는 것이 하나이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이름보다 더 탁월한 이름을 주셨다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게 아니라 똑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뛰어난 이름’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고대 시대에 이름은 그의 정체성을 가리킵니다. 로마 황제에게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호민관, 제일인자(프린켑스), 국가의 아버지 등등의 이름이 주어집니다. 각각의 이름에는 특별한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다른 그 어떤 이름보다 더 뛰어나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높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10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고대인들은 세계가 세 층으로 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늘과 땅과 지하입니다. 하늘은 땅을 초월해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하늘의 속성을 지닌 자들이 머문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땅에는 왕을 비롯해서 온갖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땅 아래’는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서 현재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나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자들이 모두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는다고 찬송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우주론적으로 가장 높다는 뜻입니다.


1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 구절이 찬송의 결론에 해당됩니다. ‘모든 입’은 하늘에 있는 자와 땅에 있는 자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자들의 입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이들에게 구원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세 구절이 가리키고 있는 그런 존재를 당시 사람들은 누구라고 생각했을까요? 당연히 로마 황제입니다. 로마 황제는 로마 제국을 대표합니다. 로마 제국은 실제로 그럴만한 힘이 있었습니다. 주변의 작은 나라는 로마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 최소한 평화는 보장받았습니다. 최소한의 평화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능력만 있으면 로마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출세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는 고대 국가인데도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법치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로마 황제로 바꾸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황제는 모든 이름 위에서 뛰어난 이름을 갖고 있으며,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모든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까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우리 황제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로마의 영광을 가리키는 ‘팍스 로마나’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이런 노래를 즐겨 불렀을 법합니다.


오늘은 누가, 또는 무엇이 이런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을까요? 여러분도 아는 대답입니다. 돈입니다. 저의 설교에 돈 이야기가 비교적 자주 나오고 있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교회 밖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 돈을 하나님처럼 숭배하고 있는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돈으로 바꿔서 읽어보십시오.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의 찬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초기 기독교 당시에 로마 황제를 찬송하던 사람들과 오늘 우리들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로마 사람들에게 황제의 힘은 두렵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돈은 두렵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합니다. 돈이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근거로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무릎을 꿇는다고 찬송한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당연히 세상 사람들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설명하면 너무 상투적인 겁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간혹 예수 믿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잘 하면 직장에서도 성공하고, 사업도 잘 되고, 세상에서 높임을 받는다고 말입니다. 열광적인 사이비 이단에 속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정통 교회에 속하면서 최소한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올라서는 것을 가리킬까요? 그래서 로마 황제가 교황이나 주교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사태 말입니다. 빌립보서에 나오는 이 그리스도 찬송은 기원후 50년 언저리에 불리던 것이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것은 4세기 후반입니다. 이 찬송을 부르던 사람들이 살던 시대는 기독교가 신흥종교로 막 시작할 때입니다.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독립하지도 못한 때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로마 황제들이 들으면 몹시 기분 나빠했을 만한 찬송을 그리스도에게 바친 것일까요? 근거가 없이 주장만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이 찬송을 불렀던 사람들은 로마 황제가 생명을 주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황제가 주는 것은 적들의 공격을 막아주거나 경제를 발전시켜서 먹고 살기 좋게 해주는 것들입니다. 팍스 로마나 시절의 로마는 강력한 제국이라서 거기에 속한 주민들에게 상대적으로 괜찮은 복지를 제공했습니다. 이런 것들도 계속해서 흔들림 없이 보장되는 게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런 것들이 충분히 제공된다고 해서 사람이 궁극적으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황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얻는 경험입니다. 여기서 죄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실현하려는 욕망이자 유혹이며, 죽음은 소멸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대목에서 몇 가지 질문이 가능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여전히 죄와 죽음에서 해방된 게 확실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를 아무리 깊이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것은 더 명확한 사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 아래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 도저히 실감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은 세속적인 권력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거나 모를 정도로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 인식능력이 있으면 다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다고 찬송을 부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 경험이 그들에게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세상이 전혀 새롭게 경험되는 거와 비슷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통한 생명 경험이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기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라고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유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척박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 경험이 우리에게 얼마나 분명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게 없는 사람에게 그리스도 찬송은 헛소리로 들립니다.

 

낮아지심


이제 우리는 본문의 첫 단락인 6-8절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이 찬송을 불렀던 사람들이 무엇을 근거로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말하는지를, 즉 생명을 얻었다고 노래하는지를 거기서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이지만 자신을 비워서 사람이 되셨고, 더구나 더 자기를 낮춰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이 구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서 인류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 받는 근거가 됩니다. 신약성경은 이 사실을 곳곳에서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좀더 본질적인 두 가지 질문이 가능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지금 나의 죄 용서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2) 예수 이외에도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람이 많은데, 왜 예수의 십자가만이 죄 용서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걸까요? 이 두 가지 질문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30대 초반인 한 유대인 남자가 당한 십자가 죽음이 인류 구원의 토대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믿기만 한다면 간단하지만 다른 사람까지 설득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금 교회에 다니는 여러분 스스로를 설득시키기도 간단하지 않을 겁니다. 설득이 잘 안 되니까 이런 문제에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대개는 기독교인이라는 이름만 걸어두고 그 내용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입니다. 사실 이걸 잘 몰라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로 지장이 없습니다.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그건 불행한 일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걸만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교회 생활에 삶을 투자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근본 토대라는 말이 실제로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옳은가요? 저는 오늘 거칠게,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겠습니다. 죽음이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비유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직접적인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죽음이 구원입니다. 죽지 않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구원이 없다는 건 생명이 없다는 뜻입니다. 생명을 얻는다거나 구원을 받는다는 건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저는 반복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살아있는 한 아무도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합니다. 바울 역시 죽어야만 율법에서 자유를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일상적인 예를 들어야겠습니다. 제가 평생 지켜온 취미생활 한 가지는 테니스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계속 실력이 느는 운동이라서 재미가 쏠쏠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테니스장에 나갑니다. 거기서 동호회원들과 시합을 합니다. 아무리 친선이고 마음을 비운다고 하더라도 게임을 할 때 이기려고 신경을 많이 씁니다. 어떻게 공을 보내야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지를 매 순간 생각합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면 기분이 좋고, 제압당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매너가 나쁜 회원들과의 게임은 오히려 불편합니다. 게임을 즐길 때만이 아니라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납니다. 어떤 순간에 좀더 강하게 칠 걸, 또는 로브를 올릴 걸 하면서 머리를 굴립니다. 이게 다 피곤한 일입니다. 단순한 취미생활도 이런데 다른 문제는 오죽하겠습니까.


인간은 무슨 일을 하든지, 또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한 참된 자유와 해방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직도 역시 우리를 자유하게 하지 못합니다. 국민들이 제발 대통령 직을 맡아달라고 해도 가능하면 피하는 게 지혜로운 겁니다. 저에게 어떤 이가 이제라도 대형 교회 담임 목사를 하겠냐, 하면 정중하게 거절하겠습니다. 나쁜 일이나 좋은 일이냐를 불문하고 일이 많을수록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죽어야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런 점에서 죽음이야말로 구원입니다. 아무리 처참한 죽음이라도 일단 죽음은 해방입니다. 그제야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 죽음을 예찬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비관주의자도 아닙니다. 심리적으로 죽음에의 충동에 종종 사로잡히는 사람도 아닙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존재의 기쁨을 누리면서 그걸 다른 분들에게 전파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여기서의 삶이 기쁨 충만하게 되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실존을 일단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죽기 전에는 죄와 죽음이 극복되지 않는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가르침과 일상에서 누리는 존재의 기쁨이 우리의 삶에서 하나를 이루는 게 중요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기독교인이 되는 거룩한 세리모니는 세례입니다. 세례의식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세례를 건성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미 자신을 죽은 것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은 돈벌이를 하지 않고, 사람 눈치 안 보고, 먹지도 않고 숨 쉬지도 않습니다. 모든 수고와 염려로부터 벗어납니다. 무슨 말인가요? 세례를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자기를 완성하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삶을 살아갑니다.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으니 그는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오늘 설교를 듣는 분들 중에 어느 분은 이전투구로 점철되는 세상살이에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설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처절한 세상살이를 살아가기에는 설교가 비현실적이라거나 너무 나이브하다고 말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바울의 말을 전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찬송을 말하기 전에 빌 2: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여러분이 실존적으로 하나가 된다면 여러분에게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 놀라운 일이 무엇인지 다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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