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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태복음 궁극이............... 조회 수 2174 추천 수 0 2017.01.29 15: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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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20-34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아브라함은 신령한 천국에다 마음을 두고 있으니 아브라함의 보물도 역시 신령천국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천국저축 소유주의로 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날부터 바로 가다가 잠깐 애굽으로 내려간 실수도 있었으나 그 이후 자기의 일생의 삶과 소유의 재산, 심지어 독자 아들 이삭까지 모리아 산상에서 천국에다 호적 입양등록을 하고 이 땅의 것을 모두 다 하늘로 이전등록을 해 놓고 삽니다. ‘나에게 맡기신 대로 나는 관리만 할 것이오니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필요하신 대로 쓰십시오입니다. 누가 아브라함 당신은 부자시네요하면 아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나는 관리만 할뿐이다합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이 필요하실 때마다 쓰시는 것입니다. ‘건들지 말라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처럼 소돔 고모라 성을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넘보지도 않았습니다. 장롱 속에 보화를 묻어 두었거나 노후대책을 세우느라고 무슨 보험에 든 것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내는 귀고리 진주목걸이 금팔찌 발고리 코고리 주렁주렁 매달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양떼를 이끌고 천막 하나 가지고(말씀순종을 빨리 하려고) 산골짝으로 돌짝밭으로 말씀 따라 삽니다. 동족이 죄에 끌려갈 때 구원운동을 위해 전사들을 318명을 키워 나갑니다. 롯의 사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오늘날 속화된 목사님들과도 아브라함은 그 정신이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아무리 타락된 세상이지만 이방 세상 사람들 중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의 재산과 자기의 일생을 다 바치는 그런 애국투사도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을 깨우치는 일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물질세상을 만들어 놓으시고 왜 보시기에 좋았더라하셨느냐? 이방 불신 세상 사람들은 물질성적인 것을 보물로 여기고 땅에다가 저장을 하지만 우리는 천국복음을 위해서,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몸으로 투자하든지, 시간을 투자하든지, 물질을 투자하든지 아무튼 성도는 지체이니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해야 합니다. 자기 일생을 공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육을 위해서 다 쓰고 난 뒤 남는 것을 복음에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자기의 소유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살으셨고, 선지사도들이 그렇게 살으셨고, 천지창조의 원리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믿어지지 않아서, 또는 몰라서 자기 주관성대로 비 구원적인 면에다 다 낭비를 하면서도 오직 진리로만 되는 자타가 깨닫는 구원을 위한 복음운동에 투자하는 것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부자청년이 그랬었고, 롯의 생각이 그랬었고. 그렇게 살더니 롯의 아내도 소돔 고모라성으로 감염되어 버렸고, 종들마저 다 감염되어 결과가 그 짝이 난 것입니다. 인격적 인인관계적인 면에서도 가정식구들끼리도 완전히 다 파멸이 된 것입니다.

 

일반 사회적인 측면으로 볼 때도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축적하고 인간을 위해서 쓸 줄 모르면 그 결과는 결국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에게 고통과 파멸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자기의 가치관을 어느 쪽에다가 두고 살았느냐에 따라 궁극적인 그 세계에서 자기의 부요성과 존영성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제 천국저축주의로 산 자와, 지상저축주의로 산 자와 그 결과성이 훤히 보이느냐?

 

622, 23: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눈은 몸의 등불이니

 

우리의 몸은 물질에 속하는 육체가 있고, 신령계에 속하는 영, 혹은 영혼이 있고, 또한 영은 아니지만 비 물질성인 이성이 있습니다. 육체의 눈이 밝으면 그 사람 자신이 밝습니다. 자유롭고 즐겁습니다. 눈이 어두우면 어둡고 고통스럽고 답답합니다.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무엇이 묻어도 알지 못합니다. 자기의 옷 색깔을 모릅니다. 무슨 색깔로 입혀졌는지! 자기가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사방에 부딪치고 웅덩이에 빠지고, 높이 오를 수도 없고 밑으로 내려갈 수도 없습니다. 올려 볼 수도 없고 내려 볼 수도 없습니다. 자기의 머리 위에 무엇이 떨어져도 알지 못합니다. 사물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자연물도 볼 수가 없고 자기가 어느 환경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의 주위로 무엇이 지나가는지도 모릅니다. 밤과 낮을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일을 할 시간인지 잠을 잘 시간인지 그저 자기 짐작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그 누군가가 끌면 끌려가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수밖에 없습니다.

 

임시적 물질적인 육체의 눈도 어두우면 그런데 영의 눈이 어두우면 오죽하겠느냐? 그 자기의 손해는 영원히 막급합니다.

 

영의 눈은 신령한 하나님의 본질의 것을 기준하여 사람의 인격성의 질을 보는 눈이요, 사람의 인격의 출처를 아는 눈이요, 무엇을 따먹고 나온 인격성이냐? ‘선악과를 따먹고 나온 인격성이냐, 생명과를 따먹고 나온 인격성이냐?’ 하는 정신의 방향과 목적을 보는 눈이요, 그 배후의 영들의 활동을 보는 눈이요, 궁극적 실상을 보는 눈입니다.

 

영의 눈이 어두우면 여태까지 말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간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의 이해타산 가치 평가성은 완전히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세계에서 먹고 마시고 자식 낳고, 물질 있으면 누리다가 본능성으로 죽고 물질 없으면 없는 대로 고생 고생 하다가 본능성으로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앞 절의 내용과 결부시켜 보면 궁극적 결과는 빤한 것인데 영의 눈이 밝은 사람은 천국 저축주의로 사는 사람이고, 영의 눈이 어두운 사람은 지상천국 저축주의로 사는 사람이라고 단정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보배처럼 보이느냐에 따라 영원히 자기의 존영의 길림길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자기의 존영이 망하기를 바랄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주인은 주권을 가지고 있고, 주장이 있고, 소원 목적이 있고, 그 결과성이 있습니다. 두 주인이니 서로가 같을 수가 없고 서로가 정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있느냐? 어떻게 양쪽을 다 만족을 줄 수가 있겠느냐? 하나만 선택을 해야지!

 

하나님과 겸하여 재물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재물을 섬길 것이냐?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세상을, 돈을 섬길 것이냐?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인격적으로 닮을 것이냐, 먹고 마시고 자연 본능성적으로만 살 것이냐?’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이 출생하는 그 때서부터 반드시 의식적으로 가치 평가적으로 결정을 해 놓고 살아야 할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인간에게 있어서 얼마나 어렵기에 마태복음 4장에 마귀가 예수님에게 이 시험을 걸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기시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전적으로 재물을 선택하여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냐? 그 이유는 첫째는 하나님둘째는 인간셋째는 물질. 이 순서는 성경의 축소요, 십계명의 축소된 순서입니다. 이 물질계에서도 쓰이는 순서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인격자시요, 영원 자존 생존자이시요, 천지와 우주만물을 만드신 분이시요, 주권으로 통치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영원 궁극적 구원을 위하여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과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성이 있는 존재요, 이 물질계를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 지배할 수 있는 인간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원 궁극적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한 것입니다.

 

물질에는 인격이 없으며, 사랑의 수수관계성이 아니라 우리의 성화구원에 방편적 이용물입니다. 성화구원의 일이 마치는 날 이 물질세상은 전부는 불 속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을 때부터 이 물질세상을 하나님처럼 떠받들고 인간 자기의 존귀와 영광성을, 인간 행복의 기준을 물질에다 두게 된 것입니다. 없으면 불행해지고, 없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물질을 자기의 주인 섬기듯이 코가 꿰여 가지고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인간 자기가 물질을 자기 머리 위로 순서적으로 존귀적으로 가치적으로 떠받들고 사니까 얼마나 고통이겠느냐? 물질세상을 하나님 자리에 앉혀 놓았으니 이것은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1차적 종말인 노아 홍수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렇게 사니까 물로 쓸어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마지막 종말 때에는 교회들이 물질성 위주로 빠져버릴 터인데 이제는 불로써 쓸어버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이방 불신 세상은 의례히 재물선택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물론 말은 그러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파렴치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명령에 의해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니 그물 속에 큰 고기 떼들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을 보니까 주님은 안 보이고 큰 고기만 보입니다.

 

무엇을 자기 주인으로 모시느냐?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선택하여 섬겼고, 롯은 재물을 선택하여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우리는 이 두 결과를 압니다. 영원한 궁극적 결과까지 압니다.

 

사람이 귀하냐, 돈이 귀하냐? 물으나 마나지! 묻는 사람이 미쳤지! 그런데 이 놈의 돈 때문에 처와 자식 남편 부모 형제도, 사람을 몰라보고 죽이고 도망가고 버리고 재판을 하는 미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이냐. 재물(, 세상)이냐?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묻는다면 역시 묻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 됩니다. 말이 되는 말을 물어야지!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하는 말이냐?

 

그런데 사는 것을 가만히 보면 선택을 한 것이 나타납니다.

돈이냐,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하나님이냐, 물질이냐?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진리냐, 세상이냐?

나의 성화구원이냐, 세상이냐?

 

질과 근원은 다 같은 말인데 방편만 살짝 바꾸어 놓으면 그만 모릅니다. 이리가 양의 껍데기를 둘러쓰면 그만 모릅니다.

 

하나님→ ② 인간→ ③ 물질의 순서를 물질→ ② 인간으로 바꾸어 놓으면 순서 위치가 신앙사상 면에서 바꾸어진 것은 잘 안 보이고 오히려 더 신앙으로 보이니 보는 눈이 비뚤어져도 보통 비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게 바로 타락적 사상입니다. 이 순서로 된 사상에서 모든 거짓, 모든 이단, 모든 범죄가 다 나옵니다.

 

사람 다니는 길로 다니는 개에게 사람이 절을 하면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나 돌에게, 죽은 돼지대가리 앞에서 절을 하면 저 놈 미쳤다고 하느냐, 정성을 드리는 신앙인이라고 하느냐?

 

나무나 돌은 생명 있는 개보다 못한데도 말입니다. 공을 잘 드리고 소원 성취 이루라고 합니다. 참말로 자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기독교인이 세상을 보고 절을 하는 거나 똑 같은 이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온전으로 최고의 고상한 인격성장을 해야 할 기독교인이 개가 웃을 짓을 하고 있으니 어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이 말씀은 교회인 우리 성도들보고 하신 말씀인가,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이방인 불신자들보고 하신 말씀인가?

 

1. 목숨이 중하냐?

2. 몸이 중하냐?

목숨을 위해서 병균에 먹어 들어가는 몸의 일부분을 잘라버리기도 합니다.

 

1. 목숨이 중하냐, 음식이 중하냐? 목숨을 위해서 음식을 굶기도 합니다. 음식을 위해서 목숨이 사느냐?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

예수 잘 믿기 위해서 사느냐?

 

2. 몸이 중하냐, 의복이 중하냐?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옷을 입고, 활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옷을 입지 의복을 위해서 몸이 있는 것이냐? 요즘은 의복에다 몸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옷이 미어터지려고 그러지!

 

일반적인 상식을 모르면 사람이 미련하다고 취급을 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디다가 신경을 쓰고 있기에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신앙을 의식주 문제에다 목적을 둔 것이 아닌가?

 

하나님 아버지가 세상을 만드실 때에 제일 처음에 사람부터 만든 것이 아니고 처음에 빛, 그 다음에 하늘 물, 그 다음 나무 채소, 그 다음 천체, 그 다음 조류 어류 동물류, 맨 나중에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순서적으로 그렇게 만드신 이유는 식물은 물을 이용하고, 동물을 식물을 이용하고, 조류는 나무를 이용하고, 어류는 물을 이용하고, 우리 인간은 그 모든 것을 이용하고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만일에 땅도 없는데 사람을 먼저 지었다거나, 물이 없는데 고기를 먼저 지었다거나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하나님 아버지는 이치에도 안 맞는 그런 일을 아무 계획도 없이 무조건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산 인간과 산 생물들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풍부하게 만들어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땅은 인간 때문에 저주를 받았고, 인간의 머릿속에는 하나님보다 자기의 주장과 계산대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근심 걱정이 오는 것이 의식주 문제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쫓겨나면 의식주 문제가 제일 급합니다. 부모 없는 고아가 의식주 문제가 급합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마귀가 첫 시험을 걸고 들어온 것입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먹기 위해서 사느냐? - 짐승.

살기 위해서 먹느냐? - 이방인.

온전자가 되기 위해서 사느냐? - 인간 성도.

 

25절의 말씀은 입지 말라, 먹지 말라 그 말씀인가,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 말씀인가, 사람 사는 목적이 먹고 마시는 일에 있지 않다 그 말인가?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공중에 날고 있는 새, 바람을 타고 높이 높이 솟구치고 있는 새, 새파란 하늘을 훨훨 날고 있는 새는 아래에 무엇이 기어 다니고 있는지 다 보입니다.

 

추운데 사는 새나, 더운데 사는 새나, 산 속에 사는 새나, 마을에 사는 새나 하나님께서 기르십니다. 씨 뿌려 농사짓는 것 없고, 가을에 거두어들이는 것 없고, 아무 농사를 짓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과는 어떤 관계냐? 새보다 못하냐? 새에게 신경을 더 쓰시겠느냐, 자식에게 신경을 더 쓰시겠느냐? 자식이 부모의 심정을 알면 효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인격적 애정적으로 밀착을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62734: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염려하므로 키가 한 자나 커지느냐? 인간 창조의 목적이 무엇이냐? 인간이 살면서 무슨 목적으로 살 것이냐?

 

네가 할 수 없는 것,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에다가 신경을 쓰지 말아야 되겠고.

인간 일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네가 알고나 살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왜 사느냐? 먹는 것 때문에 사느냐, 입는 것 때문에 사느냐, 고깃덩어리 때문에 사느냐? 왜 사느냐? 무엇을 위해서 먹고 마시느냐?

 

우리 인간은 화살과 같이 날아가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해 뜰 때 해를 마주보고 서면 그림자가 내 뒤에 있더니 저녁때는 어느 새 그림자가 내 앞에서 늘어집니다. 지난 밤 꿈꾼 것은 10년이 지나간 것처럼 기억 속에서 아물거리고, 어제 보던 사람은 오늘은 안 보이고, 한 시간 두 시간 흘러간 것은 되돌아 올 수 없는 영원으로 사라집니다.

 

순간에서 존재하는 네가 할 일이 무엇이냐? 너희 중에 염려한다고 키가 한 자나 더해지느냐? 왜 엄한데다 신경을 쓰느냐? 네 일생의 시간이 남아돌아가느냐?

 

62830: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들이 의복 때문에 사느냐? 저 광야나 저 시골 산골짝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아라! 백합화의 그 그윽한 향기, 그 아름다운 모양을 어떤 인간이 실을 내어 가지고 그 수를 놓은 것인가? 백합화가 밤새도록 수고하고 애쓰고 지친 것을 보았느냐?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물주니 물먹고, 햇빛 주니 햇빛 먹고 하니까 저렇게 아름답다. 솔로몬이 입은 영광이 아무리 아름답게 보여도 왕궁이 없어지면 그 영광은 없어지고, 몸에 병이 들면 그 영광이 없어지고, 그 붉은 자색 옷, 그 면류관 벗으면 그 영광 없어지고, 심판을 받으면 그 영광 없어진다. 모두 임시적 영광이고 물질의 영광이다.

 

백합화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솜씨다.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는 들풀들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그리고 심판으로 사라질 일반적인 영광도 그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누가 너희들보고 그런 목적으로 살라더냐? 너희들은 무엇을 할 자들이냐?

 

631, 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가 우주 삼라만상을 보면 자연적으로 되어지는 일이 있고, 인간이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하늘 천체의 자연법칙 사시사철 밤과 낮이 바뀌는 것은 인간의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저 순응입니다. 거스르면 자멸입니다. 자연 생태계는 그 법칙에 잘 순응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할 일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우리 인간에게 사용토록 했으니까 모든 자연 생태계들을 즉, 동물 식물 곤충 조류 어류 등을 인간이 조화가 되도록 잘 다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서 지어 놓으신 것을 없애버린다면 생태계의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에게는 재앙이 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잡초를 없이 하니 벌레들이 죽고, 곡물을 먹는 벌레를 죽이려고 약을 치니 친 약을 먹은 벌레를 먹고 새들이 죽고, 그 풀을 짐승이 먹으니 짐승이 죽고, 물이 약품으로 오염되고, 사람이 그 물을 먹으니 오만 잡병이 다 생기고. 유흥으로 살자니 정신병이 생기고, 몸의 병, 정신의 병. 이래 저래 인간이 죽고 맙니다. 결국 인간들이 악하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하여 남의 먹이까지 빼앗으니 점점 세상이 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진리의 지혜 지식이 자랄 수 있는 인간입니다. 인간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간 동안에 진리 자체화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 자기를 지으신 목적입니다. 우리 인간 자기는 영원 궁극적인 신령세계에 들어갈 자기인 줄 알아야 합니다.

 

31, 32절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목적으로 사는 인간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 타락 이후

 

1. 무엇을 먹고 마시고 살까 하는 인간.

 

무엇을 먹고 마시고 살까?

부귀영광을 누리고 살까?

 

이방인들은 이 삶의 목적을 빼놓으면 없습니다. 그 재미를 쳐다보다가, 그 재미를 부러워하다가 그 재미로 죽습니다. 이방인은 각자마다 자기의 가치 평가 이해타산이 늘 임시적인 세상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며 사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로 사죄 칭의 새 생명을 얻어 이 땅에서 영적인 실력을 닦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다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영광과 행복 중에 영원히 신령천국에서 누릴 자들입니다.

 

이방인들은 의식주 해결문제를 놓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계획을 짜고 찾고 묻고 요구합니다. 믿음이 적은 자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사는 목적이 분명히 다릅니다. 일상적인 일은 부업이고 본업은 그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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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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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sort 조회 수
15072 에배소서 잘 분별해서 들으라 엡1:15-17  이한규 목사  2018-06-20 266
15071 마태복음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마26:39-46  김경형 목사  2018-06-17 498
15070 요한복음 38년 된 병자의 치유 요5:1-15  강종수 목사  2018-06-17 375
15069 사도행전 복음의 보편적 능력 행8:26-40  정용섭 목사  2018-06-17 310
15068 요한일서 믿음과 사랑 요일3:16-24  정용섭 목사  2018-06-17 300
15067 누가복음 예수의 살과 뼈 눅24:36-48  정용섭 목사  2018-06-17 288
15066 사도행전 오래된 미래 행4:32-35  정용섭 목사  2018-06-17 226
15065 요한복음 예수의 빈 무덤과 막달라 마리아 요20:1-18  정용섭 목사  2018-06-17 370
15064 마가복음 예수의 죽음과 매장 막15:33-47  정용섭 목사  2018-06-17 246
15063 요한복음 예수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 요12:20-33  정용섭 목사  2018-06-17 262
15062 민수기 원망에서 생명으로! 민21:4-9  정용섭 목사  2018-06-17 425
15061 고린도후 똑 바로 보고 싶어요 고후5:6-17  강승호 목사  2018-06-16 327
15060 에배소서 예정론에 내포된 3대 메시지 엡1:11-12  이한규 목사  2018-06-14 239
15059 창세기 내 수고를 보시는 하나님 창31:42  이한규 목사  2018-06-14 575
15058 이사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사66:18-24  이한규 목사  2018-06-14 274
15057 이사야 서로 힘써 위로하라 사66:10-14  이한규 목사  2018-06-14 429
15056 이사야 한 사람의 힘이 크다 사66:7-9  이한규 목사  2018-06-14 402
15055 이사야 천국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사65:17-20  이한규 목사  2018-06-14 374
15054 이사야 하나님의 크신 사랑 사65:1-5  이한규 목사  2018-06-14 306
15053 이사야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 사64:1-7  이한규 목사  2018-06-14 368
15052 마가복음 복음에 미친 사람 막3:20-35  강승호 목사  2018-06-13 382
15051 요한복음 왕의 신하 아들 치유 요4:43-54  강종수 목사  2018-06-10 379
15050 마태복음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 마26:36-46  김경형 목사  2018-06-10 291
15049 요한계시 처음사랑 계2:1-7  김중곤 목사  2018-06-07 513
15048 에스라 하나님께 감동된 자 스1:1-4  강승호 목사  2018-06-07 538
15047 열왕기하 믿음의 증표 왕하20:8-11  강승호 목사  2018-06-06 361
15046 마태복음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26:26-35  김경형 목사  2018-06-03 210
15045 요한복음 예수님의 양식 요4:31-42  강종수 목사  2018-06-03 215
15044 마태복음 상을 받을 자 마10:40-42  강승호 목사  2018-06-01 478
15043 사사기 기드온의 300용사 삿7:1-8  강승호 목사  2018-05-29 426
15042 마태복음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으면 제게 좋을 뻔 마26:20-25  김경형 목사  2018-05-27 258
15041 요한복음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 요4:1-30  강종수 목사  2018-05-27 423
15040 신명기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7:9-11  김중곤 목사  2018-05-26 487
15039 사무엘상 기도 쉬는 죄 삼상12:23  강승호 목사  2018-05-25 537
15038 마태복음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함이라. 마26:6-19  김경형 목사  2018-05-20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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