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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를 걷는 믿음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769 추천 수 0 2016.10.18 18: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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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4:22-27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876) 

바다 위를 걷는 믿음 (마태복음 14장 22-27절)


< 능력 있는 믿음을 얻는 길 >

 왜 사람은 고향을 그리워할까요? 단순히 옛날의 추억을 그리워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향은 대개 인생 초기의 고생하던 장소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고생할 때를 그리워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어려웠던 시절이 없었다면 애틋한 고향의식도 없게 됩니다. 결국 잘 극복하면 고생했던 시절은 추억의 고향이 됩니다. 고향의식은 ‘고생하던 시절의 향수’로 생긴다는 점에서 고난과 고생은 인생길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고생했던 때의 추억은 미래의 고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을 주기에 삶의 귀한 지렛대가 됩니다. 또한 인성과 인품은 고난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될 때가 많기에 인생에서 고난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도 가장 소중한 사람은 같이 고생했던 기억을 공유한 사람입니다. 교회도 개척교회 시절을 겪어보지 않으면 신앙의 멋과 맛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족과 친구도 기쁨을 나눌 때보다 슬픔을 나눌 때 더 가까워집니다.

 흔히 치매로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은 고난의 기억을 잊으려는 심리로 생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고난의 기억이 사라지면 알츠하이머병은 심해집니다. 결국 고생했던 시절은 인생의 소중한 자산으로서 잘 극복하기만 하면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은 사람을 더 활력 있게 만들고 현재의 만족감도 더 크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바다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고난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일지라도 그 고난의 바다 위를 걷는 능력이 있으면 됩니다. 그처럼 고난의 바다 위를 걷는 능력 있는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무리를 보내십시오

 본문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본문 바로 앞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그 기적으로 엄청난 무리들이 몰려와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요 6:15). 그 무리를 모아 대형세력을 구축하기보다는 예수님은 오히려 흩어 보내셨습니다. 기적을 보고 몰려오는 무리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무리를 보내면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인 게네사렛으로 가게 하심으로 제자들과 무리를 격리시켰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제자들이 몰려오는 다수의 무리들을 보고 헛된 황홀감에 젖어 교만한 마음이나 정치적인 야심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기적주의와 대중주의와 기복주의와 외형주의를 멀리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기복주의와 외형주의에 빠지면 내적인 능력은 약해집니다.

 크게 성공해도 기복주의와 외형주의에 빠지지 말고 그때 더욱 겸손해지십시오. 닭이 알을 낳고 “꼬끼오!”라고 하면 곧 주인이 와서 달걀을 가져가듯이 자기 성취를 자랑하면 하늘의 상급을 잃고 내적인 기쁨과 보람도 잃습니다. 간증할 때도 자기를 너무 나타내지 마십시오. 간증에 ‘내가’란 말이 많이 들어가면 사탄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아무리 극적인 간증거리가 있어도 ‘주님’이 아닌 ‘자신’이 드러나는 간증은 피하십시오.

 겸손하게 살아도 삶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신실한 성도에게도 문제는 생깁니다. 자신은 안전운행을 해도 남이 들이받을 수 있듯이 자신은 진실하게 살려고 해도 남의 욕심에 말려들어 고난이 생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의인이 악인보다 더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 현실이 닥쳐서 기복주의와 외형주의가 미혹의 손짓을 할 때도 의로운 소수의 길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기복주의와 외형주의에 빠진 무리들을 잘 떠나보내고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부터 자신을 잘 지키는 성도가 고난의 바다 위를 걷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2. 산에 올라가십시오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예수님은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무리들의 환호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복음의 역사를 막는 마귀의 미혹이 될 수 있음을 아시고 제자들을 무리로부터 격리시킨 후 스스로도 격리되시려고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이 장면은 참된 목자와 거짓 목자의 차이를 잘 알려줍니다. 참된 목자는 기적 후에 백성들의 환호를 거부하고 산으로 기도하러 가지만 거짓 목자는 기적을 통해 백성들의 환호를 얻으려고 산으로 기도하러 갑니다. 기도하러 산에 갈 때는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낫고 성공하고 합격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만 가지 말고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낫고 성공하고 합격한 후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도 가십시오. 사실상 후자의 기도생활이 예수님의 삶과 뜻을 따르는 더욱 복된 기도생활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한다면서 마음이 높아지고 영성을 자랑합니다. 그는 ‘많은 기도’는 했을지라도 ‘바른 기도’를 한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 없이는 못산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기에 기도하고 교만해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이고 자랑하기 위한 기도보다 예수님처럼 한적한 곳에서의 은밀한 기도를 즐겨하십시오.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롭게 여기지 말고 그 시간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창조성과 지혜와 능력이 넘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함께 있는 것이 좋지만 너무 함께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은 잘 활용하면 ‘비참한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입니다. 사람들과 너무 어울려 다니지 마십시오. 부부나 가족도 너무 함께 붙어있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공동체든지 한정된 공간에 사람이 많으면 갈등 가능성도 커집니다. 그때는 자신이라도 인구밀도를 줄여주십시오.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가끔 짜증이 나는 이유는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가정 안에만 있지 마십시오. 휴일에 쉰다고 남편이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TV만 보면 아내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짜증날 수 있습니다. 아내 성격이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남편이 집에 있는 것이 집에 없는 것보다 더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의 쉼을 위해 나갈 일이 없어도 나가주십시오. 갈 데가 없으면 혼자 산이라도 가십시오. 산길을 혼자 걸으면서 묵상만 해도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더 생깁니다. 부부는 같이 있는 시간도 많아야 하지만 동시에 떨어져 있는 시간도 많아야 합니다.

 계속 같이 붙어 있어야만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잘 떨어져주어서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도 지혜로운 사랑입니다. 왜 잉꼬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합니까? 잉꼬부부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랑을 같이 붙어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 떨어져 있는 시간을 지혜롭게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연애할 때도 너무 자주 만나면 좋지 않습니다. 만남을 ‘갈등이 커지는 만남’이 아닌 ‘그리움이 해소하는 만남’으로 만들려면 너무 자주 만나는 것도 절제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배우자나 애인이나 친구나 교우가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배려해주고 스스로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때 외로우면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십시오. 가장 건강한 인간관계는 서로 적절하게 떨어져서 같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삼각형 관계입니다. 사랑은 ‘서로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라기보다는 ‘같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한 방향이 하나님 혹은 거룩한 비전이라면 그 관계는 더욱 견고해지고 그 관계 속에서 능력과 창조성과 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3. 산을 내려오십시오

 본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이 구절에서 ‘수 리’는 약 5킬로미터 정도로 추정됩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육지를 떠나 약 5킬로쯤 갔을 때 돌풍이 불고 물결이 크게 일어나면서 제자들이 극심한 고난 중에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산 위에서 그 장면을 다 보시고 제자들이 거의 절망적인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산 아래로 내려와 바다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성도는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님처럼 고난의 바다 위를 걷을 수 있습니다. 그런 능력을 받으려면 혼자 기도하려고 산 위로 올라가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기도한 후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높은 위’만 찾지 말고 ‘낮은 아래’도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높은 위를 찾는 것은 본능적인 모습에 가깝지만 낮은 아래를 찾는 것은 의지적인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전자의 길보다 후자의 길이 대개 더 복된 선택이 됩니다.

 죽을병에 걸리면 치유를 선전하면서 체육관 집회를 여는 자칭 능력자를 찾아 안수 받겠다고 허둥대지 마십시오. 차라리 낮은 골짜기에서 힘들게 사는 자기 담임목사나 어려운 이웃을 찾아 죽을 때까지 돕는 손길이 되겠다고 해보십시오. 전자의 삶보다 후자의 삶에 훨씬 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임합니다. 성도가 열심히 살아서 높은 위치에 서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닙니다. 높은 위치에 서서 아래를 살피지 않는 것이 잘못입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도 잘하는 만큼 산을 내려오는 것도 잘할 때 고난의 바다 위를 걷는 능력도 커지게 될 것입니다.

4.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밤새 고난으로 시달렸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놀라서 “유령이다!”라고 하며 무서워하면서 소리쳤습니다(26절). 왜 삶에 두려움이 생깁니까? 기적의 주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담대하게 나가면 기적적인 반전의 역사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단교주처럼 예수님의 이름만 대면 기적을 자기 맘대로 일으킬 수 있다고 하거나 기적을 의도적으로 연출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누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합리적인 의심도 해야 거짓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기적은 사람이 연출해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성경에 나온 기적은 합리적인 설명을 꾀하거나 요구하지 말고 순수하게 믿으십시오. 본문에 있는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걷는 기적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합리적인 설명들을 많이 하지만 그런 설명들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성경 기적은 그대로 믿으십시오. 그 기적들 중에 가장 큰 기적은 자신과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적입니다. 그 예수님을 꼭 붙잡으면 고난의 바다 위를 얼마든지 걸을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친근한 말씀으로 곧 제자들의 두려움을 없애주셨습니다(27절). 예수님을 믿고 두려움을 극복하면 고난의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 위를 걷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마십시오.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잠깐은 멋있어 보여도 그렇게 해야 얼마나 앞으로 가겠습니까? 반면에 거대한 배를 타면 대양을 항해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배에 온전히 올라타서 멋진 세상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철은 바다에 가라앉지만 나무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나무로 배를 만들면 더 가라앉지 않고 철로 배를 만들어도 부력 때문에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처럼 고난의 바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희망을 가지면 그 희망의 부력이 절망의 중력을 이겨내어 바다 위를 걷게 만들고 먼 대양까지 항해하게 만듭니다. 누구나 고난을 당하지만 중요한 것은 절망의 중력을 이겨낼 희망을 부력을 키워서 고난의 바다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인물이 되는 찬란한 비전을 가지십시오.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이라 내적인 능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중국영화를 보면 무림 최고수는 대개 우락부락하게 생기지 않고 겉으로는 서생처럼 연약하게 보입니다. 그처럼 겉으로는 연약해보이지만 속으로는 최고의 영력, 실력, 능력, 재력 등을 가진 존재로서 소리 없이 음지에서 하나님의 뜻을 멋지게 이뤄내는 인물이 된다면 얼마나 삶의 보람과 기쁨이 크겠습니까?

 찬란한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갈 때 반드시 힘든 상황을 만납니다. 그때 포기하지 마십시오. 철에 묶이면 바다에 더 빨리 빠져죽지만 철로 배를 만들어 타면 나무배보다 훨씬 더 위대한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중력보다 믿음의 부력이 크면 됩니다. 아무리 깊은 흑암의 바다에 있어도 예수님을 꼭 붙잡음으로 담대한 믿음의 부력이 생기면 바다 위를 걷을 수 있고 더 나아가 먼 대양까지 항해하는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의 파도 때문에 망하지만 어떤 사람은 문제의 파도를 타며 수상레저를 즐깁니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은 파도가 더 크기를 원합니다. 미국에서는 나이아가라의 험준한 계곡에서도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얼마든지 고난의 바다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문제 속에서 낙심하지 말고 굳건한 믿음으로 문제를 극복하면서 마침내 찬란한 꿈과 비전을 이뤄내는 복된 인물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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