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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약육강식, 적자 생존의 허구
약한 것이 강한 것에 먹히는 약육강식(弱肉强食)과 환경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리는 동물 세계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생물 세계의 원리로 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리가 동물 세계에서 항상 통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200여 종의 다양한 동물들을 대상으로 연구하여 동물행동학 관련 연구에 업적을 남긴 150여 명의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소개된 [휴머니즘의 동물학]에서는 동물 제국의 생존전략은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약자에 대한 강자의 승리가 아니라 암컷과 수컷, 어미와 새끼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발견되는 사회적 연대와 협력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비투스 B. 드뢰셔는 15년간 사바나 개코 원숭이를 연구한 셜리 C. 스크럼의 연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관찰에 의하면 케냐 서부지역에서 야생생활을 하는 120마리의 사바나 개코 원숭이 무리 중 가장 서열이 높고 잘 무는 수컷이 있는데 이 원숭이는 인기도 없고 먹이도 다른 원숭이들이 먹고 남긴 것에 만족해하더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린 새끼를 물려고 하자 암컷들이 힘센 원숭이를 무리에서 쫓아냈답니다. 젊은 수컷은 육체적인 힘과 강한 공격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직접 대결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곧 다른 동물들의 행동에 대한 영향력을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합니다. 폭력의 서열질서와 사회적 영향력의 서열질서가 뚜렷이 구분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성실한 봉사를 통해 여러 암컷의 우정을 얻지 못한 늙은 수컷은 젊은 수컷의 공격을 받으면 대처할 길이 없이 무리를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힘에 의한 지배만이 전부가 아니고 본성적으로 협동함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존속시킨다는 것입니다. 힘에 의해 지배한다고 알려진 사나운 늑대 역시 힘으로만 지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캐나다 북부의 툰드라 지방에서 서식하는 늑대를 관찰한 결과 우두머리 늑대는 폭력과 억압으로 무리를 지배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우두머리 늑대는 배가 고픈 겨울에 무리 전체가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에너지 낭비를 피하기 위해 2∼3일간 혼자 여행을 떠나 그럴듯한 사냥감이 남긴 신선한 흔적을 발견하면 울부짖는 소리로 동굴에 있는 무리에게 신호를 보내 그들을 부른다고 합니다. 만약 실패하여 3∼4일 정도 굶주리면 후각이 10분의 1정도 더 예민해져 전에는 맡을 수 없었던 사냥감의 흔적을 포착하여
굶주림을 해결한다고 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자신들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사유할 수 있는 능력, 언어의 사용, 불과 도구의 사용, 직립보행 등을 말합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인간은 사회성이 동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약육강식, 적자 생존의 원리만이 통하는 사회라면 그것은 동물보다 더 못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강자가 되고 모두가 적자가 되어 끝없이 힘을 쥐려고 덤벼드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열 가옥이 살고 있는 한 마을에서 힘이 있는 한 가정이 농토의 90%와 집 아홉 채를 차지하고 남아 있는 아홉 가옥이 10%의 농토와 한 채의 집을 가지기 위해 투쟁한다면 이 인간 사회의 질은 동물보다 못할 것입니다. 열 사람이 열 개의 빵을 놓고 한 개씩 먹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 사람이 9개를 먹고 한 개를 가지고 열 명이 투쟁하는 사회는 저주받은 사회입니다.
자본주의와 자유,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힘있는 자의 탐욕이 정당화되고 부당한 분배가 힘의 논리에 의해 합법화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이 사회를 보면 힘있는 자들이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해 끝없는 투쟁을 하는 것을 매일 언론을 통해 보도 듣고 있습니다. 힘있는 자들끼리 상대의 세력을 무력화시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정치, 언론, 경제, 문화 권력들의 눈물겨운 싸움을 봅니다. 약자의 삶의 보장되고 적자가 아닌 자도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분배 정의나 평등 사회에 대한 법질서 확립은 단지 액세서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이 땅에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18-19)"라고 말씀합니다. 인간 사회에서 완전한 힘의 평등은 이루어 질 수 없다하지만 법으로 보호되는 인권의 평등은 이룰 수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산술적 분배의 평등을 이루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복지적 평등을 이루는 것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신앙인은 세상 풍조와 탐욕의 노예가 되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라는 말씀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하는 신앙인 마저 동물도 실천하는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외면하고 약육강식, 적자 생존의 포로가 된다면 이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약육강식, 적자 생존의 허구/ 김필곤 목사/200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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