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소원

2016년 최용우............... 조회 수 134 추천 수 0 2020.08.06 09: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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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719번째 쪽지!


□ 성령의 소원


왜 예수를 믿는데도 환란과 고통을 당할까요? 성령님이 내 안에서 소원을 주시는데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안 당해도 되는 애매한 환란과 고통을 오랫동안 당할 수 있습니다. 친척 중에 백내장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셨던 분이 계셨었습니다. “백내장 수술 그거 30분이면 끝나요.”라고 계속 병원에 가시라고 권했지만 수술이이라는 말에 겁을 먹고 오랫동안 방치하다가 거의 실명 위기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진짜로 간단하게 치료가 끝났습니다. “내가 네 말을 들을 걸 너무 오래 고집을 피우며 불편하게 살았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자아가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면 성령은 내 안에서 마치 “백내장 수술 그거 30분이면 끝나. 빨리 병원에 달려가.”하고 말하는 것처럼 나에게 소원을 일으키십니다. 하지만 육적 자아가 깨지지 않은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혈기를 부리고 자신과 타인을 힘들게 하며 살아갑니다.
치유사역을 하시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길 “교회 안에 악한 영의 공격과 쓴 뿌리로 인해 고생을 하는 교인들이 많은데, 목회자가 영적으로 무지하여 그런 것을 모르니 교인들이 안 당해도 될 고통을 애매하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만나보면 내가 목사인데, 내가 장로인데, 내가 권사인데 어떻게 마귀가 나를 해할 수 있느냐는 이상한 믿음(?)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영혼이 깨어난 만큼 성령의 소원에 순종할 수 있고, 악한 영을 분별하여 애매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지, 영적인 문제 앞에서는 직분은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역사로 자아가 성령께 순종되어진 사람만이 진짜 성령의 사람입니다. ⓒ최용우


♥2020.8.6. 나무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댓글 '2'

최용우

2020.08.06 10:09:41

동양은 ‘유교문화권’이라고 합니다. 원래 유교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상(思想)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공자를 기리는 사당을 지어서 종교화가 되었습니다. 반면 기독교는 예수님(성령님)을 체험하는 종교입니다. 체험종교가 유교문화를 만나면서 사상종교로 변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성령’을 체험하기보다 자꾸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김교자

2020.08.07 07:06:06

맞아요.
그냥 믿으라고 하는데 아는 만큼만~
이해되는 만큼만 믿고 있지 않나 싶네요.
성령님의 임재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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