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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221번째 쪽지!
□종교개혁은 저항이다.
1529년 독일의 제국 의회에서 마르틴 루터가 황제 카를 5세 등 가톨릭 권력자들 앞에서 굽히지 않고 용감하게 자신의 신앙을 항변한 이후 사람들은 루터와 같은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렀습니다.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저항’ 혹은 ‘저항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저항’을 싫어하는 기득권 세력들이 어느 틈엔가 ‘저항’이라는 단어를 ‘개혁’으로 바꾸어버렸고, 이제 사람들은 ‘종교 저항’을 ‘종교개혁’이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믿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종교개혁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중이 제 머리를 깎아요?
루터는 무엇을 저항했나요? 성경을 읽어보니 교회가(당시에는 카톨릭)너무 성경하고 동떨어졌다. 이래서는 안 된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한마디로 본질과 근원을 회복하기 위한 저항이었습니다. 자기가 믿는 종교 전통에 대한 저항, 불합리한 국가적 권위와 제도적 시스템에 대한 저항, 그리고 개인의 신앙 양식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로마는 기독교(카톨릭)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기독교을 품으면서 기독교을 노예로 삼아 이용해 먹은 것이죠. 루터는 그것을 ‘저항’한 것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기독교를 품는 척 합니다. 그러면서 기독교를 노예로 삼아 이용해 먹는 중이죠. 개에게 고기 덩어리를 적당히 던져주면서 길들이듯이 기독교가 자본주의 에게 고깃덩이를 받아 먹으면서 노예로 길들여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과 욕망(자본주의)는 반비례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OECD국가 중에 가장 욕망지수가 높은 나라입니다. 이는 한국 기독교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교회 세습’을 당연하게 여길 만큼 성경과 욕망은 비례한다고 뻔뻔하게 가르칠 정도입니다. 누가 감히 이런 무지막지한 한국 교회에 ‘저항’ 한단 말입니까? ⓒ최용우
♥2018.11.13. 불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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