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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사랑요절 예수

2016년 하나님의 최용우............... 조회 수 470 추천 수 0 2016.05.07 09: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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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5497번째 쪽지!


□사랑요절 예수


문제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된 이유 중에 예수님은 단 1%의 책임도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핍박을 받아야 되는데, 거꾸로 우리 때문에 예수님이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십자가를 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각자 자기 십자가 자기가 지고 나를 따르라 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똑같이 각자 십자가를 각자 지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떻습니까? 내 삶에 치고 들어오는 십자가가 부담스럽지요? 그래서 교회들도 “이 힘들고 고단한 시대에 교회에까지 와서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스트레스로 죽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위로와 쉼과 평안을 얻어야지요.” 하면서 축복이야기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진수(眞髓)’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냥 죽어버리신 것입니다. 서른 세 살 꽃 다운 나이에 요절(夭折)하신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바보처럼 그냥 죽어비리셨으니 ‘사랑요절’입니다.
그 사랑의 십자가를 우리도 져야 합니다. 그렇게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라고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보다도 더 십자가를 귀찮고 하찮게 생각합니다. 주말에 텔레비전에서 프로 야구 중계보는 것 보다도 더 가치 없게 십자가를 대합니다.
사랑하면 보이나니 - 사랑하면 보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왜 예수님이 사랑요절을 하실 수밖에 없으셨는지. ⓒ최용우


♥2016.5.7. 흙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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