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뽀뽀뽀

2016년 하나님의 최용우............... 조회 수 313 추천 수 0 2016.07.04 07:08:37
.........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5542번째 쪽지


□뽀뽀뽀


왜 사랑하는 이성과는 뽀뽀를 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를까요? 뽀뽀가 아니라 키스(kiss)겠죠? 인간이 키스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혀 놓은 글들도 참 많습니다. 원시시대에 부족한 염분을 섭취하기 위해 입가를 핥기 시작 한 것이 기원이라는 둥, 말 많은 여자 입을 막기 위해 키스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둥, 이가 없는 아기에게 엄마가 밥을 대신 씹어 입으로 넣어주던 것이 기원이라는 둥....
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그것은 ‘혀의 부드러움’을 서로 공유하면 이성호르몬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그래도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드러운 말은 마치 키스처럼 달콤합니다. ‘부드러운 혀는 뼈도 녹일 수 있다’(잠25:15)고 했습니다. 부드러움이란 연약함이나 힘이 없음이나 줏대 없음이 아닙니다. 강한 말보다 부드러운 말이 더 설득력 있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입을 맞춘다’고 하면 그것은 ‘두 사람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똑같은 말을 하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키스는 부드러움입니다. 그것은 서로 이심전심(以心傳心) 서로 한 마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부드러운 말은 상대방을 무장해체시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15:1)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강한 말보다는 부드러운 말입니다. 부드러움만이 강함을 포용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뽀뽀는 그런 부드러움에 대한 갈망 아닐까요?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벧전5:14) ⓒ최용우


♥2016.7.4. 달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73 2020년 예동 새로운 삶 [1] 최용우 2020-10-16 174
6772 2020년 예동 하나님 사랑이 내 안에 [3] 최용우 2020-10-15 206
6771 2020년 예동 하나님 안에서 사랑 [2] 최용우 2020-10-14 177
6770 2020년 예동 좋은소식과 나쁜소식 [1] 최용우 2020-10-13 229
6769 2020년 예동 충분한 기도시간 [1] 최용우 2020-10-12 179
6768 2020년 예동 유교와 기독교 [1] 최용우 2020-10-10 202
6767 2020년 예동 똥방구 최용우 2020-10-08 124
6766 2020년 예동 문명전환과 기독교 file 최용우 2020-10-07 904
6765 2020년 예동 새로운 예배 [3] 최용우 2020-10-06 350
6764 2020년 예동 그때 하나님과 지금 하나님 [1] 최용우 2020-10-05 216
6763 2020년 예동 웃음천국 울음지옥 [1] 최용우 2020-09-30 266
6762 2020년 예동 공회 공교회 공동교회 [3] 최용우 2020-09-28 214
6761 2020년 예동 세계정복의 역사 [1] 최용우 2020-09-26 182
6760 2020년 예동 신자유주의와 민주공화국 [2] 최용우 2020-09-25 178
6759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일곱 번째 말 최용우 2020-09-24 110
6758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여섯 번째 말 최용우 2020-09-23 102
6757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다섯 번째 말 [1] 최용우 2020-09-22 112
6756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네 번째 말 [2] 최용우 2020-09-21 152
6755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세 번째 말 [1] 최용우 2020-09-19 166
6754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두 번째 말 [1] 최용우 2020-09-18 156
6753 2020년 예동 십자가 아래 첫 번째 말 [2] 최용우 2020-09-17 169
6752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일곱 번째 말씀 [2] 최용우 2020-09-16 145
6751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여섯 번째 말씀 [2] 최용우 2020-09-15 124
6750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다섯 번째 말씀 [1] 최용우 2020-09-14 127
6749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의 네 번째 말씀 [3] 최용우 2020-09-12 235
6748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세 번째 말씀 [3] 최용우 2020-09-11 251
6747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두 번째 말씀 [1] 최용우 2020-09-10 209
6746 2020년 예동 십자가 위에 첫 번째 말씀 [1] 최용우 2020-09-09 240
6745 2020년 예동 예수와 클라우디아 [2] 최용우 2020-09-07 284
6744 2020년 예동 예수와 채찍질 [1] 최용우 2020-09-05 224
6743 2020년 예동 예수냐 바라바냐 [1] 최용우 2020-09-04 221
6742 2020년 예동 예수와 안티파스(안디바) [1] 최용우 2020-09-03 180
6741 2020년 예동 예수의 왕권 [3] 최용우 2020-09-02 175
6740 2020년 예동 예수와 빌라도 최용우 2020-09-01 149
6739 2020년 예동 강요 최용우 2020-08-31 150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