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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구원은 ‘존재’이다

2015년 나도할말 최용우............... 조회 수 395 추천 수 0 2015.06.24 1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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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5250번째 쪽지!


□구원은 ‘존재’이다


구원이 소유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구원은 ‘존재’입니다. ‘존재(存在)’란 ‘실제로 현실에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는 순간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호적에 기록이 된 존재가 됩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갈 자격과 의무가 생긴 것입니다.
구원을 ‘이 다음에 죽으면 천국에 간다’라고 미래만 생각하면 그것은 구원은 천국입장 티켓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현재, 지금 내 삶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구원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지 맘 꼴리는 대로 사는 사람은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초월적인 사건임과 동시에 철저하게 내재적인 사건입니다. 만약 구원이 미래에 천국에 입장하기 위한 초월적인 의미뿐이라면 이 땅에서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구원은 철저하게 ‘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내재적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교회 안과 교회 밖을 구분하는 이분법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0세기에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말하기 전 까지만 해도 교회 안과 교회 밖을 딱 가르는 그런 구분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일반 성도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세상 일이다’ 이런 구분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 지금 나와 함께 있다는 ‘존재론’입니다.
예수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구원이 되시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원이란 ‘존재’라고 했으니 그럼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예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최용우


♥2015.6.6.24 물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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