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골리앗은 누가 죽였나?

2015년 나도할말 최용우............... 조회 수 904 추천 수 0 2015.09.26 08:11:27
.........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5321번째 쪽지!


□골리앗은 누가 죽였나?


아마 한국교회 거의 모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 목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가 ‘소년 다윗’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글’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골리앗에 대한 기록이 사무엘상, 하, 그리고 역대기상 세 군데 나오는데, 그 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역대기서가 훨씬 후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먼저 기록된 사무엘서의 기록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사무엘서의 “엘하난은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라는 표현은 한글 번역 성경에만 나와 있는 ‘첨구’입니다. 영어성경인 NIV와 NASB에는 (의 아우 라흐미)라는 부분이 없습니다. 대한성서공회는 개역성경에 이 구절을 넣은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새로 번역한 ‘표준새번역’성경에서는 뺐습니다.  공동번역성경이나 메시지성경에는 당연히 이 구절이 없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도 있을 리 없습니다. 골리앗을 죽인 사람은 ‘야일의 아들 엘하난’입니다. ‘엘하난이 갓 사람 골리앗을 죽였는데’(공동번역, 메시지성경 삼하21:19)
그런데 역대기서에는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할 때에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개역성경, 대상20:5)
역대기 저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한 후 수세기가 지나도록 이방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혹독한 고난의 삶을 살고 있는 당대 사람들에게 위대한 다윗왕조의 회복에 대한 꿈을 심어주기 위해 다윗의 영웅담을 강조할 필요성이 있어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성서공회는 왜 있는 그대로 성경을 번역하지 않고 없는 구절을 끼워 넣었을까요? 그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성경이 서로 다른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고민하다가 ‘친절하게’ 성경의 기록을 일치시키기 위해 오역(誤譯)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최용우


♥2015.9.26. 흙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댓글 '13'

늘행복

2015.09.26 17:32:34

골리앗을 다윗이 죽이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삼상 17장은 골리앗과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이건 삼하21장의 골리앗과 다른 골리앗입니다. 삼하21장의 골리앗과 삼상17장의 골리앗을 같은 골리앗으로 보는 것은 오류입니다. 시간적으로 다르고 또한 성경 말씀 한절이 중요하지만 성경을 볼때 좀더 명확한 구절로 해석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삼상17장은 전 장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입니다. 삼하 21장의 19절 한 절로 한 장 전체를 부인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상 17장의 골리앗과 삼하21장의 골리앗은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만약 같은 사람이라면 골리앗의 동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최용우

2015.09.26 21:30:44

샬롬! 축복합니다. 사무엘 상하의 저자가 다르지요. 글의 문체나 성향이 완전 서로 반대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상에서 다윗이 너무 영웅시되어 묘사된 것을 사무엘 하서 저자가 균형을 잡기 위해 상무엘상과는 다르게 기록했다고 봅니다...제 말이 아니고 '스터디성경' 각장 개요 설명에 그렇게 설명해 놓았더라구요.
두명의 골리앗이라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네요. 중요한 것은 '한글 성경 번역'만 오역(誤譯)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성경에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오니까 번역하시는 분이 당황스러웠겠지요. 그래서 서로 이야기를 맞추느라 원문에 없는 이야기를 첨가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번역한 '표준새번역'에서는 첨언한 부분이 빠졌습니다.

늘행복

2015.10.03 13:04:48

삼상의 골리앗과 삼하의 골리앗은 시간적으로 상당히 다른 시간대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하의 골리앗이 삼상의 골리앗의 동생인 골리앗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아니면 동명이인으로 보는 것이 성경을 볼 때 더 적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삼하에 첨언된 문구(~아우 라흐미)라는 문구가 원본에 기록되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아마 원본가까이 있는 성경에 기록한 해설이 나중의 사본에 본문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많죠.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을죽이지 않았다는 결론은 너무 무리며 삼상의 내용을 완전히 부인하게 됩니다. 다윗을 영웅으로 만든것도 사실이지만 골리앗을 죽이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글성경이 오역다라고 말하였는데 이 부분은 오역이라고도 할 수 있고 아닐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이 한글성경보다 더 잘번역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RSV나 킹 제임스도 함께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스터디 성경'은 더 맹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2015.09.26 19:49:24

무슨 말씀이신가요 성경의 역대기가 다윗의 영웅담을 위해 쓰여진 소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최용우

2015.09.26 21:22:39

샬롬! 축복합니다. 성경이 소설일리는 없지요.
요즘 나오는 성경들은 거의 대부분 '스터디 성경'입니다. 각 성경의 앞 부분에 그 성경이 쓰여진 배경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역대기서나 열왕기서 서문 정도는 읽어보시면 이해가 되실것 같아요. 저도 스터디성경 앞부분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제가 지어내서 쓴게 아닙니다.

sonkky

2015.09.27 07:34:35

서문을 꼭 읽어보고 싶군요
그럼 삼하 22장 22절 ' 이 네 사람 가드의 장대한 자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 신복의 손에 다 죽었더라' 라는
이 말씀에서 '다윗의 손' 이라는 부분도 첨가된 것인지 알고 싶군요.

검단연합

2015.09.27 14:53:49

다윗의 손은 첨가 되었다는 증거가 없습니만, 사실 다윗은 이미 나이가 들어서 네 거인들을 죽이는 일에 공을 세운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 의하여 네 거인들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네요. 아마도 그때까지 다윗의 지휘 아래 그 부하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sonkky

2015.09.27 07:35:18

삼하 21장 22절 이네요

검단연합

2015.09.27 14:43:45

저는 연대기성경을 만들면서 성경 자체에 서로 다른 차이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은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독자를 위하여 통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은 성경의 필사적 오류를 인정하고 통합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삼하 21장의 골리앗은 역대기 20장 5절의 의지하여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지 않았는데 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골리앗을 죽인 것으로 각색이 되었다면 성경은 진실을 위장한 책이 되니 누가 성경을 믿을만한 책으로 여기겠습니까?

pds6228

2015.09.30 11:36:15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장소는 엘라 꼴짜기이고 사무엘하의 사건은 곱입니다
그리고 역대상의 사건은 장소가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습니다
제가 볼때는 사무엘하에 오류는 역대상의 기록을 맞추기위함으로보입니다
결론은 사무엘상의 기록대로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고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는 엘하난이 죽인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같습니다

오호통제라

2015.10.02 11:34:56

여기서 가장 큰 논란은 과연 성경은 하나님의 작품이냐 인간의 작품이냐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야할 것 같아요
역대기서가 다윗을 미화하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면 이것은 인간의 작품입니다. 성경을 부인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이 그렇게 유명한 영웅도 아니었다면 다윗을 대망했을까요? 영웅으로 살지도 않은 인물을 미화까지 했을까요?
그러므로 성경이 오류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자들의 오류입니다. 해석자의 오류를 정당한 것으로 보면 안됩니다.
성경을 오류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의 모든 믿음은 물거품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서 공격을 당하는 것입니다.
불경을 꾸란을 누가 그렇게 폄훼하고, 오류가 있는 책으로 만들던 가요? 우리 가짜 크리스찬들이 교묘하게
성경을 해석해서 믿음을 무너뜨리게 하는 것이지요. 정신차리시고, 주님앞에 겸손히 바라보세요.

최용우

2015.10.02 12:23:11

성경은 처음부터 '성경'으로 쓰여진 글이 아니고 '기록 목적'이 있습니다. 아무 목적 없이 쓰여진 성경은 없습니다. 성경이 '성경'된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대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당연히 '역대기서'도 기록 목적이 있습니다. 역대기서를 누가 왜 기록했을까요? 누군가가 역대기서를 기록할 때 먼 훗날 인류의 후손들 믿으라고 미리 기록했을까요? 아닙니다. 역대기서는 구약성경중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것인데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돌아온 직후에 쓰여졌습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고 현재 실의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문자적으로 읽는 사람을 '성경주의자'라고 합니다. 성경은 그 배경을 충분히 알고 읽어야 엉뚱한 해석 오류에 빠지지 않지요. 정신 차리시고, 주님앞에 겸손히 바라보세요.

정의를 위하여

2015.10.08 23:32:40

성경을 해석하는 부분에서 여러가지 방법이 많이 있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유대인들의 글쓰는 방식입니다.
1) 성경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것인데 저자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 저자의 글쓰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서론 본론 결론으로 기록하지만 성경은 유대인들이 서론 본론 결론으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운데 기록합니다. ABCDC'B'A'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양파처럼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또 어떤 부분은 양쪽에 기록한 경우도 있고, 그 내용 전체에 흩어 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2) 그리고 우리나라 조선시대나 그 이전에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그 초상화가 사진찍듯이 똑같지 않습니다. 그 분의 인격이나 삶의 모든 부분들을 담아서 그리게 됩니다. 그러면 실물과는 다른 모습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 초상화를 가짜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을 미화했다고 해서 엉터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엉터리라고 볼 수 있지만 당시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결코 엉터리가 아닙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528 2019년 하동 심판과 승리 최용우 2019-12-06 132
6527 2019년 하동 심판과 사랑 최용우 2019-12-05 122
6526 2019년 하동 심판과 섭리 최용우 2019-12-04 162
6525 2019년 하동 심판을 부인함 최용우 2019-12-03 144
6524 2019년 하동 심판의 복 [2] 최용우 2019-12-02 148
6523 2019년 하동 상대성이론과 우주관 [2] 최용우 2019-11-30 165
6522 2019년 하동 우주만물(宇宙萬物) 최용우 2019-11-28 129
6521 2019년 하동 정년퇴직과 우주관 [7] 최용우 2019-11-26 260
6520 2019년 하동 거위의 날개 [3] 최용우 2019-11-25 274
6519 2019년 하동 사람 모양 [3] 최용우 2019-11-23 273
6518 2019년 하동 왜 기도해야 하는가? [1] 최용우 2019-11-22 443
6517 2019년 하동 영혼의 성장 최용우 2019-11-21 255
6516 2019년 하동 나도 디지게 힘들다 [1] 최용우 2019-11-20 247
6515 2019년 하동 임재와 천국 [1] 최용우 2019-11-19 147
6514 2019년 하동 겸손한 사람들 [2] 최용우 2019-11-18 210
6513 2019년 하동 가장 갈망하는 것 [1] 최용우 2019-11-16 257
6512 2019년 하동 마음의 평화 [1] 최용우 2019-11-15 236
6511 2019년 하동 참된 기쁨 [1] 최용우 2019-11-14 194
6510 2019년 하동 상처받지 않음 최용우 2019-11-13 142
6509 2019년 하동 편안함과 안식 [1] 최용우 2019-11-12 135
6508 2019년 하동 감사와 기쁨 최용우 2019-11-11 439
6507 2019년 하동 동역과 협력 최용우 2019-11-09 231
6506 2019년 하동 기도와 순종 최용우 2019-11-08 269
6505 2019년 하동 예민한 고통 [1] 최용우 2019-11-07 192
6504 2019년 하동 비판과 비난 [3] 최용우 2019-11-06 205
6503 2019년 하동 자유와 구속 최용우 2019-11-05 134
6502 2019년 하동 기도와 일 최용우 2019-11-04 202
6501 2019년 하동 길이 막힐 때 최용우 2019-11-03 253
6500 2019년 하동 인도와 신뢰 [1] 최용우 2019-11-01 200
6499 2019년 하동 사소한 일 [1] 최용우 2019-10-31 192
6498 2019년 하동 세상 평가와 비판 최용우 2019-10-30 146
6497 2019년 하동 자랑과 칭찬 [1] 최용우 2019-10-28 248
6496 2019년 하동 높임 받는 것 [1] 최용우 2019-10-27 198
6495 2019년 하동 시천주 인내천 [3] 최용우 2019-10-26 231
6494 2019년 하동 토지와 재봉틀 [2] 최용우 2019-10-25 160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