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간음하지 말라

2015년 나도할말 최용우............... 조회 수 743 추천 수 0 2015.09.04 10:06:49
.........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5303번째 쪽지!


□간음하지 말라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 성경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누구에게 해당되는 계명일까요? 정답은 ‘여자’입니다. 성경이 쓰여지던 그 시대는 아주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였습니다. 남자가 하면 로맨스(romance)요 여자가 하면 ‘불륜’이라는 공식이 확고하게 적용되는 시대였습니다. 남자에게는 ‘간음’이란 것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시기를 남자 혼자 할 수 있나요. 분명 여자랑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죄가 아닌데 여자는 죄라니... 솔직히 말하면 유교적 전통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우리나라도 똑같습니다. 우리나라도 혼외 관계에 대해 남자에게는 관대하지만, 여자에겐 매우 가혹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를 끌고 온 남자들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남자들 보라고 땅바닥에 글씨를 쓰지요. “짜식들아, 쪽팔린 줄이나 알아라. 재미는 너그들이 다 보고 죄는 여자에게 덮어 쒸우냐? 차라리 덜렁거리는 것 다 띠어버려라. 창피하다”... 라고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시공동체에서는 아이를 낳고 모유를 제공하는 여자의 생물학적 능력은 공동체의 존속이 여성의 몸에 달려 있다고 보았기에 남자들은 여자의 모성을 경외하고 찬양했습니다. 원시공동체에 ‘여신’이 많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기원전 3천년 전후 가부장제가 확립되면서 남자들은 여자를 ‘소유’의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십계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자신의 소유인 여자가 ‘간음’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내 아이의 엄마여야 되는 모성이 간음을 하면 가부장은 자신의 대를 잇지 못할 수도 있기에 모성을 상당히 폭력적으로 통제해 왔던 것입니다.
만약 이 시대에 다시 십계명을 만든다면 제 7계명은 ‘남자도 간음하지 말라’ ⓒ최용우


♥2015.9.4. 쇠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493 2019년 하동 예수 믿는 거 진짜 맞소? [1] 최용우 2019-10-24 279
6492 2019년 하동 하나님은 나의 방탄조끼 최용우 2019-10-23 174
6491 2019년 하동 하나님은 나의 방패 최용우 2019-10-22 244
6490 2019년 하동 교회와 사명 최용우 2019-10-21 201
6489 2019년 하동 중보기도 [4] 최용우 2019-10-19 211
6488 2019년 하동 선포기도 최용우 2019-10-18 181
6487 2019년 하동 간구기도 [1] 최용우 2019-10-17 291
6486 2019년 하동 화목기도 최용우 2019-10-16 144
6485 2019년 하동 대적기도 [1] 최용우 2019-10-15 543
6484 2019년 하동 보호기도 최용우 2019-10-14 158
6483 2019년 하동 임재기도 최용우 2019-10-12 229
6482 2019년 하동 감사기도 [1] 최용우 2019-10-11 314
6481 2019년 하동 회개기도 [1] 최용우 2019-10-10 230
6480 2019년 하동 식사기도 [3] 최용우 2019-10-09 878
6479 2019년 하동 감각과 지성 최용우 2019-10-08 177
6478 2019년 하동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면 최용우 2019-10-07 317
6477 2019년 하동 구심점 [1] 최용우 2019-10-05 245
6476 2019년 하동 무너진 마음 [2] 최용우 2019-10-04 313
6475 2019년 하동 선지자들과 성경 [1] 최용우 2019-10-03 154
6474 2019년 하동 선지자의 설교 [3] 최용우 2019-10-02 202
6473 2019년 하동 선지자의 외침 [1] 최용우 2019-09-30 135
6472 2019년 하동 전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2] 최용우 2019-09-28 255
6471 2019년 하동 선지자로 부르심 [1] 최용우 2019-09-27 247
6470 2019년 하동 선지자와 백성들 최용우 2019-09-25 137
6469 2019년 하동 선지자와 목사 최용우 2019-09-24 184
6468 2019년 하동 선지자와 하나님 [1] 최용우 2019-09-23 161
6467 2019년 하동 잠언과 지혜 최용우 2019-09-21 250
6466 2019년 하동 뱀과 지혜 [1] 최용우 2019-09-20 485
6465 2019년 하동 지혜의 말씀 최용우 2019-09-19 379
6464 2019년 하동 지혜와 윤리도덕 [1] 최용우 2019-09-18 130
6463 2019년 하동 지혜와 계시 최용우 2019-09-17 125
6462 2019년 하동 지혜와 지식 최용우 2019-09-16 210
6461 2019년 하동 시편과 희노애락(喜怒哀樂) [1] 최용우 2019-09-12 233
6460 2019년 하동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최용우 2019-09-11 284
6459 2019년 하동 시편기도 최용우 2019-09-10 215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