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2015년 나도할말 최용우............... 조회 수 604 추천 수 0 2015.04.28 09:21:33
.........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5205번째 쪽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인구인데, 길게 잡아 몇 년 정도 이 숫자를 유지하다가 다시 줄어들어 앞으로는 다시는 5천만명을 넘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라 합니다.
흔히 국민의 25%가 기독교인 인구라 하는데 그러면 1250만명이고, 여기에는 천주교인 400만명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로는 800만명입니다. 이 숫자 안에는 또 기독교가 아니면서 기독교 흉내를 내는 유사기독교 인구가 200만명이 포함되어 있어 순수한 기독교인은 600만명입니다.
국민의 약 10%만이 진성기독교인입니다. 나머지 90%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바라보아야 할 시선의 방향은 명확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90%입니다. 교회의 모든 역량이나 정책이나 설교나 재정을 90%를 바라보고 쏟아 부어야 그게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현실을 정직하게 직시하면, 교회의 시선은 10%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새로운 신자가 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수평이동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커졌다는 것은 다른 교회 성도들을 많이 빼왔다는 말밖에 안 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요? 복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언제부터인가 물질만능에 빠져 주님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고 십자가의 고난과 회개를 설교하지 않습니다. 기복신앙, 물질만능, 출세 성공 같은 세상의 누룩이 교회 안에 가득합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철저한 십자가의 삶을 설교하면 오히려 이상한 곳으로 몰리는 기가 막힌 현실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90%의 사람들이 원하는 기독교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원래 본 모습인 십자가의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90%의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최용우


♥2015.4.28. 불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댓글 '1'

기쁨행복

2015.04.29 18:03:34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목숨과 번영을 위한 기독교라면 소망이 없습니다.
생명과 거룩을 위해 청기기의 삶으로 90% 영혼들에게
선한영향력되는 기독교가 되길 소망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458 2019년 하동 시편 찬양 최용우 2019-09-09 248
6457 2019년 하동 고난과 성숙 최용우 2019-09-07 270
6456 2019년 하동 고난과 침묵 [2] 최용우 2019-09-06 196
6455 2019년 하동 고난의 신비 [1] 최용우 2019-09-05 227
6454 2019년 하동 고난의 유익 최용우 2019-09-04 250
6453 2019년 하동 고난과 나 최용우 2019-09-03 177
6452 2019년 하동 고난과 하나님 [1] 최용우 2019-09-02 220
6451 2019년 하동 나는 조국을 사랑합니다 [2] 최용우 2019-08-30 389
6450 2019년 하동 있고 없고 최용우 2019-08-29 238
6449 2019년 하동 손해와 이익 [2] 최용우 2019-08-28 241
6448 2019년 하동 그냥 믿어짐 [4] 최용우 2019-08-27 206
6447 2019년 하동 한국인의 의식구조 [1] 최용우 2019-08-24 331
6446 2019년 하동 미국인의 의식구조 [1] 최용우 2019-08-23 192
6445 2019년 하동 중국인의 의식구조 [1] 최용우 2019-08-22 189
6444 2019년 하동 일본인의 의식구조 최용우 2019-08-21 247
6443 2019년 하동 인간의 의식구조 최용우 2019-08-20 219
6442 2019년 하동 어려움을 극복하는 다섯가지 방법 [1] 최용우 2019-08-19 734
6441 2019년 하동 철학과 사랑 최용우 2019-08-17 184
6440 2019년 하동 철학과 생명 최용우 2019-08-16 126
6439 2019년 하동 철학과 은혜 최용우 2019-08-15 162
6438 2019년 하동 철학과 용서 최용우 2019-08-14 121
6437 2019년 하동 철학과 신학 [1] 최용우 2019-08-13 132
6436 2019년 하동 붉은 성경 [2] 최용우 2019-08-12 214
6435 2019년 하동 생각 훈련 최용우 2019-08-10 287
6434 2019년 하동 생각 선택하기 최용우 2019-08-08 235
6433 2019년 하동 다른 생각 [1] 최용우 2019-08-07 227
6432 2019년 하동 생각과 마음 [1] 최용우 2019-08-06 349
6431 2019년 하동 제목질 안하기 최용우 2019-08-05 159
6430 2019년 하동 당신을 도와줄 유일한 사람 최용우 2019-08-03 318
6429 2019년 하동 종지기 집사님 [2] 최용우 2019-08-02 216
6428 2019년 하동 한석봉 글씨 최용우 2019-08-01 703
6427 2019년 하동 낀 나라의 운명 [2] 최용우 2019-07-30 226
6426 2019년 하동 찢어진 왕국 [1] 최용우 2019-07-29 134
6425 2019년 하동 세번째 왕 솔로몬 최용우 2019-07-27 345
6424 2019년 하동 두 번째 왕 다윗 최용우 2019-07-26 215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