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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네가 이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하나님, 이 아이를 축복하소서."
  
이 말은 이 세상에 막 태어난 내 아이를 향해 내가 한 첫 마디다. 아이를 낳을 당시 18시간 동안 긴 진통 끝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아이와의 첫 만남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는 아이를 향해 그렇게 외쳤던 것이다.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우리 부부에게는 많은 인내가 필요했었다. 6월 30일이 예정일이었으나 일주일이 되어도 진통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서 분만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수술이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태어날 시간을 정하는 것이기에 산모나 아이를 위해서도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좀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태어나는 것이 아이에게 무엇보다 큰 축복이라고 우리 부부는 믿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우리 부부는 조금씩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예정일이 너무 많이 지나면, 양수가 오염되어 태아가 먹게 되고, 그러면 여러 가지로 아이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저녁 9-10시경에 가정 예배를 본다. 매일 저녁 말씀 묵상하고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리는 이 시간은 하루의 삶을 돌보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은혜의 시간이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날 예정일이 일주일쯤 지날 무렵부터 우리 부부가 읽는 본문은 이사야 66장 7절 말씀, "몸을 비틀 사이도 없이 해산하여 진통이 오기도 전에 사내아이를 낳는구나" 하는 말씀과 마태복음 1장 1절로 16절까지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이다. 잘 알고 있듯이 마태복음 1장 이하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은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 하는 식으로 낳고 낳고 낳고가 꼭 40번이나 나오는 말씀이다. 나는 아내의 배 아랫부분(아이의 머리가 있음으로)에 손을 대고 이 말씀을 봉독한 다음,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린 지 또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아침에, 몸과 마음이 긴장해 있는 아내를 대신하여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며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거실에 앉아 있던 아내가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귀 기우려 들어 보니 크리스마스 때나 부르는 성탄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 어리신 예수 눌 자리 없어..." "탄일종이 땡땡..."

그날은 7월 10일이었다. 한여름에 성탄찬송이라니 나는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나 정말 진지하고 간절하게 성탄찬송을 부르는 아내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당시, 예정일이 2주가 되는 날,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할까.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었으면, 한여름에 탄생을 기원하는 성탄찬송을 부를까. 예수탄생을 묵상하며 찬송을 부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참으로 거룩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불안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를 건강하게 순산케 하시리라는 믿음이 우리 부부에게 있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리고 병원 근처에 사시는 김연숙 집사님이 맛있게 만들어주신 김밥을 아내와 나누어 먹은 후,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았던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 다음 날 낮 12시가 되어도 진통만 계속될 뿐 아이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고통에 함께 하지 못함을 안쓰러웠다. 잠시 담당 의사의 허락을 받고 진통중인 아내와 30분의 짧은 시간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1분 간격으로 오는 진통에 아내는 잘 참아내는 듯하였지만, 눈을 뜨고는 못 봐줄 것 같았다. 만약 그 때 30분 동안 아내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산고를 나는 피상적으로만 알았을 것이다.
  
아내와 면담 후, 더욱 초조하고 긴장하는 가운데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산모들은 아내보다 나중에 분만실에 들어가고도 하나둘 먼저 나오는 데,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는 아내를 기다리며 나의 초조는 곧 기도로 바뀌었다. 김철원 목사와 교우들 모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 주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린 지 15시간, 정확하게 7월 12일 오후 11시 15분 경에 이진영 보호자를 부르는 간호사의 소리가 드리고, 곧이어 조그만 신생아 보행기에 누워있는 한 아이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해서 내 아이와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이제 막 이 세상에 온 아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두리 번 주변을 바라본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가야, 이 세상에 온 것은 환영한다. 하나님 이 아이를 축복하소서"라고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니 그 큰 눈을 꿈벅이며 대답을 했다.

이 아이를 바라보면서 생명이 잉태하고, 탄생하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깨달음을 다시금 얻었다.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어머니가 한 일이 아니고, 아버지가 먹을 것을 주었다고 해서 아버지의 일이 아니다. 처음 내 손에 들려진 이 아이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지만, 하나님의 품에 있다가 방금 이 세상에 내려온 하나님의 아이이다.
  
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요, 그분이 보내신 아이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배속에서 이제 막 태어난 이 아이에게서 하늘냄새를 맡는다. 맑은 두 눈은 하늘의 풍경을 전해주고, 붉은 입술은 무엇인가 하늘의 비밀을 전해 주려는 듯 옹알거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람냄새는 없고 온통 하늘냄새로 가득했다.

한 처음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실 때 당신의 형상대로, 당신의 모습대로 만드셨던 것처럼, 바로 이 아이는 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사람의 손이 타지 않는 순결한 상태, 곧 태초의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어찌, 이 아이만 그러하겠는가. 이제 막 태어난 이 세상에 온 신생아 병실에 누워 이 낯선 세상의 공기를 마시며, 불빛을 호기심 어리게 바라보는 저 아기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순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 이 아기들에게서 사람냄새가 아닌 하늘냄새, 바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낀다.

우리는 거리를 거닐 때나 전철 안에서나 어린 아기를 보면, 제 아이 건 남의 아이 건간에 아기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보고 볼을 만져 보고 뽀뽀를 하곤 한다. 그것은 의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 무엇에 이끌리어 그 아이에게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아이에게서 우리에게 희미하게 남아 있는 하늘냄새를 맡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먹고 사람의 머리가 자라면 자랄수록 우리는 하늘냄새를 잃고 사람냄새에 찌들어 살아간다. 우리 몸은 온통 삶에 찌들었고 남을 이용하여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이 지상의 고약한 탐욕의 냄새를 풍기며 살아간다. 우리 아이들의 손을 놓고 잠시 서울한복판에 들어서면 이기와 배신, 음모와 술수가 가득한 사람들의 도시가 펼쳐져 있다.
  
주님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주님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하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오셔서 추한 사람냄새 풍기지 않고 하늘의 맑고 깨끗한 하늘냄새를 풍기시며 사셨다. 이 세상에 속하였으나 그분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가끔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이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의 눈동자에서, 산고를 온몸으로 겪고 분만실을 나오는 아내의 땀이 흥건한 얼굴에서, 하루의 삶을 하늘 뜻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모습에서, 자기 것을 아무도 모르게 내어주는 손길에서 우리는 하늘냄새를 느끼곤 한다.
  
이제 막 세상에 온 아기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살아가면 갈수록, 어른이 되면 될수록 하늘냄새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나는 내 아이가 이 세상에 온 거룩한 날에, 이 아기에게서 하늘냄새를 맡으며, 내 안에서 잃어버린 하늘냄새를 찾아보고 싶었다.
  
벌써 까마득하여 잃어버린 하늘의 이야기와 그 비밀을 이 아이에게서 듣고 싶다. 그래서 이 아이를 통해 다시 그 분과 호흡하며 살고 싶다. 이 아이의 맑은 눈을 통해 잃어버린 그분의 말씀을 찾고 싶다. 이 아이의 깨끗한 입술을 통해 그 분의 노래를 듣고 싶다. 그리고 내 아이가 태어난 날을 생각하며, 나는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아가야 아가야

        아가야
        하늘에서 온 아가야
        깊은 산골,
        옹달샘보다도 더 맑고
        아침 이슬보다도 더 영롱한
        너의 눈을 보면
        이른 아침,
        하나님이
        내리시는 보드란 햇살 가루
        살포시 뿌려진
        너의 고운 살결에 입맞춤해 보면
        아가야
        아가야
        너는 분명
        하늘에서 온 천사구나
        말씀만이 있던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하얀 품속에서 살다가
        이제 막
        엄마 품에 안긴 아가야
        너는 연실
        이 세상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이 아닌 하늘의 언어로
        하늘의 비밀을 전하고 있구나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는 아가의 눈동자
        천사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아가의 입술
        그러나 아가야
        이 엄마는 네가 전하는 그 분의 소리를
        조금은 알아들을 수가 있단다
        너를 이렇게 가슴에 꼭 안고 있으면
        너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과는 다른
        하늘 나라의 소식을
        바람소리보다도 더 부드러운
        꽃향기보다도 더 달콤한
        그 분의 음성을 느낄 수 있단다
        '엄마! 사랑해요'
        '사랑
        해요'
        '사
        랑
        해
        요'
        아가야
        그래
        엄마는 아가를 사랑한단다
        아빠는 아가를 사랑한단다
        하나님 품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산,
        우리들은
        하늘의 언어를 잊어버린
        우리 어른들은
        사랑을 버리고
        미움을 쌓으며,
        사랑을 지우고
        욕심을 적으며,
        사랑을 잊고
        절망을 기억하는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주 멀리
        멀리 떨어져 살아 왔단다.
        아가야
        사랑하는 아가야
        삼백육십오일 동안
        그 분의 곁을 떠나온 것처럼
        앞으로도
        아가가 살아 갈 만큼
        그 분의 품에서 점점 멀어진다해도
        아가야
        하늘에서 온 아가야
        그 분이 너를 사랑하는 그 마음만은
        엄마가 너를 꼭 안고 있는 그 따스한 품만은
        아빠가 언제나 네 손을 잡고 있다는 그 믿음만은
        아가야
        너의 그 맑은 눈동자에 담고 살아가렴
        너의 따스한 가슴에 고이고이 담고 살아가렴
        이 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잊고 살아 가야할
        사랑을 빼앗으려는
        쓰디쓴 인생길과
        매서운 바람을
        수없이 많이 맞이할 터이지만
        아가야
        아가야
        그럴 때마다
        아가의 마음속에
        아가의 영혼의 샘 속에
        살아 계셔서
        쉼없이 쉼없이
        생명수를 뿜어주시는
        예수님
        그 분의 얼굴을 찾아보렴
        아가야
        네가 태어나
        일년삼백육십오일이 지나
        앞으로 살아 가야할 수많은 날들과
        앞으로 만나야할 수많은 벗들과
        앞으로 해야할 수많은 일들과
        앞으로 걸어 가야할 수많은 걸음마다에
        아가야
        하늘에서 온 아가야
        천사처럼 아름다운 너의 얼굴과
        하늘의 이야기로 가득한
        오늘의 너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네 마음 속에 언제나 웃고 계시는
        그 분의 미소를 찾아보도록 하거라
        아가가 걸어가는
        맑고 아름다운 길 위엔
        언제나
        영원히
        엄마처럼
        아빠처럼
        따스한
        그 분이
        함께 걷고 계시다는 걸
        잊지 말아라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하는 아가야

사랑하는 윤기가 이 세상에 온 기쁘고 즐거운 날에 아빠가
채희동 (2002-01-09 오전 10: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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