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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터져 나오는 함성 --출 3:1-12, 눅 18:1-8

수필칼럼사설 문동환............... 조회 수 3077 추천 수 0 2003.01.16 23: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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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동환(한신대 명예교수)

시작하는 말

지난 몇 주간 동안 온 세계의 눈은 한국 축구단과 붉은 악마로 불리는 한국의 응원단에게 집중되었다. 축구 서열 16강에 오를 것을 목표로 한 한국팀이 4 위에 오르고 붉은 악마 응원단은 운동 경기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시가지 곳곳에 있은 광장마다 빽빽이 모여 열화 같은 응원을 했다. 놀라운 정열과 팀웍을 기른 선수들의 기량도 기가 막혔지만 그들이 발휘한 운동정신 역시 온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패자들의 싸움이라고 별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3,4위 전 역시 전 세계의 열열한 관심을 끌었으며 그 경기 역시 세인을 놀라게 하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끝났다. 미친 듯이 승부를 겨루던 두 팀 선수들이 승부가 끝나자 서로 어깨를 엮고 운동장을 돌아가면서 응원을 한 붉은 악마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이 응원단 사이에는 다른 한 아름다운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 시작하기 전 터키 국가가 연주되자 붉은 악마단 들은 엄청나게 큰 터키 국기를 그들 머리 위에 나타나게 하는가 하면 터키가 게임에 이겨서 3 등 상을 받게 되자 또 터키 국기를 펼치어 그들의 승리를 축하해 준 것이다.

또 한 가지 감격스러웠던 것은 한참 경기를 하는 도중에 서해안에 벌어진 남과 북의 해군 충돌 사건이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응원단은 "오 필승 코리아!"라고 외치던 외침을 "오, 평화 코리아"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세계 운동사에서 본 일이 없다. 세계의 언론들은 이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어떻게 한국 백성들이 이렇게 아름답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는가? 특히 한국의 청년들이 말이다.

나는 이에 대한 성서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다. 이런 우리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면 거기에는 반듯이 하느님의 뜻이 반영되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1. 오래 억압을 받은 자들의 자기주장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민족주의의 극단적인 발로라고 하여 오히려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날로 더 세계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민족주의가 지나치게 발현이 되는 것은 바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혹은 의외로 잘하는 한국 축구팀의 성과를 보면서 놀라운 민족적인 단결심이 생겼다고 한다.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약소민족이라고 멸시를 받아오면서 심적으로 이에 항의해 오던 우리 민족의 주체성이 이 축구 경기를 통해서 강력하게 살아난 것이라고 보고 싶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는 다 “나는 천하보다 소중한 존재다”라는 깊은 자의식을 가지게 된다. 머리가 좋던 나쁘던, 잘생겼든 못 생겼든, 지위가 높든 낮든 다 하느님의 아들, 딸로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 그런 우리를 향해서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너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취급을 한다면 우리는 이에 사력을 다해서 항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 없는 부모들이 어린 자식들의 인권을 무시할 때 발버둥을 치면서 항거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본다. 이것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영혼의 항거이다.

이런 억압이 오래 동안 반복이 될 때 약자들은 자포자기하고 체념하기 쉽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비참하기 그지없다. 밀면 밀리고, 짓밟으면 찍 소리 못하고 짓밟히고, 기라면 기고 춤을 추라고 하면 되지 않는 춤이라도 추어야 한다. 기가 다 죽어서 꼭두각시처럼 노는 것을 보면 그에게서는 하느님의 형상이 완전히 제거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들의 주체성은 그렇게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 누르면 누를 수록 주체성이 말살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주체성이 깊은 곳에서 한으로 엉켜서 기회가 있으면 화산처럼 터져 나올 무서운 화력을 보유하게 된다. 한국 속담에 “여자들이 한에 맺히면 5,6월도 서리 가 온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런 한을 가진 자들이 한데 엉킬 때 태산까지도 옮길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출애굽 사건이 그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다. 그들이 당한 서러움이란 이루 더 말할 수 없다. 일년 365일을 뼈 빠지게 일을 해보아도 그 열매는 다 바로의 것이 된다. 바로의 군병들의 채찍 밑에서 남자들은 썩은 나무처럼 쓰러졌다. 그렇게 되면 과부와 고아들의 삶이란 더욱 비참해진다. 이런 비참한 환경 속에서 저들은 항거도 해 보았다. 아첨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상황은 날로 더 힘들어만 갔다. 그리다가 때가 이르러서 하느님의 명을 받은 모세가 저들 사이에 나타나자 저들은 놀라운 힘으로 폭파했다. 저들은 애굽을 탈출하면서 애굽 군대를 홍해에 수장한 것이다.

1960년대에 있은 미국의 흑인운동도 마찬가지다. 수백 년 동안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당한 억압과 수모는 실로 말로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국에 잡혀온 흑인 남성들은 다 아프리카의 당당한 투사들이었다. 그들이 모진 채찍과 총칼로 길들여져 짐승과 같은 노예생활을 했으니 그들의 한이 어떠했겠는가? 그 쌓이고 쌓인 분노란 태산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분노를 함부로 나타내지 못했다. 백인 여성을 한 번 잘못보기만 해도 린치를 당했으니까 말이다. 이런 분노가 말틴 루터 킹 목사나 말콤 엑스의 지도하에서 하나가 되자 전 미국 천지를 뒤흔들어 놓았고 세상은 달라지고 말았다. “나도 사람이다”하고 터져 나오는 민중의 동력이란 실로 놀라운 것이다. 이것은 다 하느님이 우리를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백성들이 그랬다. 강대국 사이에 끼운 약소민족으로 수천 년을 두고 서러움을 겪었다. 중국은 우리를 보고 소국이라고 대국인 중국이 하라는 대로 하라 고 해 왔었다. 그리다가 20 세기에 들어오면서 서구 문명을 먼저 받았다고 무기를 흔드는 일본 밑에서 “센진”이러고 불리면서 서러움을 당했다. 문명적으로 앞서 있었고 어느 모로나 그들에게 질 까닭이 없는데 서구 문명을 그들이 먼저 받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모멸을 당한다는 것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다가 이차 대전이 끝나면서 상반되는 이념을 가진 외세가 몰아쳐 들어 와서 국토와 민족을 둘로 갈라 노아 우리들의 꿈을 제대로 펼 수가 없게 되었다. 거기에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들의 패거리의 이익에 사로 잡혀서 민중들의 권한은 아랑곳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민중들의 서러움이야말로 끝간데를 모르게 되었다.

그러던 참에 정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민중들의 힘으로 하는 운동 경기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지지 않는 능력을 나타내게 되자 민중들은 어디 내 놓아도 뒤질 것이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자기 자신을 발견한 저들은 늠름하게 장부답게 일어서서 자기의 자기 됨을 천하에 천명한 것이다.

2. 창조적인 자아 선언

그런데 우리 청년들의 자기 선언에는 남다르게 아름답고 창조적인 것이 있었다. 우리는 많은 국제적인 축구 경기가 참극으로 종결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런 치열한 경기가 전개될 때 많은 나라에서는 경찰을 대대적으로 동원을 한다. 어떤 불상사가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던 흑인 해방 운동을 보라. 킹 목사가 평화적인 시위를 그렇게 강조했음에도 불고하고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 갖가지 불상사가 발생했던 것이다. 특히 Black power 운동에 가담한 자들은 백인 경찰들을 White Pig이라고 매도 하면서 이에 폭력으로 항거했었다.

그랬는데 우리들의 젊은이들의 자세는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적이었다. 메워지라는 듯이 거리를 메운 붉은 악마들은 너무나 질서 정연했다. 헤어진 후에 운동장과 거리에 종이 한 장 널려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기에 지고도 승자 나라의 국기를 흔들면서 그들을 축하해 주었다. 선수들은 서로 어깨를 걸고 오래간만에 만난 형제들인 양 춤추듯이 운동장을 돌았다. 서해 바다에서 함포사격이 일어났다는 소식들 듣자 “오. 빅토리.코리아?” 라고 외치든 구호를 순식간에 “오! 피스 코리아”라고 바꾸어 불렀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는가?

  2. 한국의 얼과 오랜 염원

어느 민족이나 선사시대 붙어 이어받은 얼이 있다. 그 얼이 그 민족의 무의식 속에 깊이 흐르면서 그들의 삶을 형성시켜준다. 스위스의 유명한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이 민족의 무의식 속에 흐르는 얼을 민족의 원형(Archetype)이라고 부른다. 흑인 남성들은 몹시 투쟁적이다. 본래 아프리카 대륙을 주름잡던 투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랜 노예생활을 하면서 깊이에서 바라는 염원은 해방과 자유다. 따라서 그 자유를 쟁취하는 방법이란 투쟁적이 폭력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얼과 염원은 이런 모양으로 표현이 된다.

애굽에서 뛰쳐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보라. 그들의 얼은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땅을 줄 터이니 그 곳에서 평등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룩하라는 것이다. 이 얼은 애굽에서 오랜 동안 노예생활을 하면서 전 민족적인 염원으로 발전이 되었다. 결국 저들은 과부, 고아, 나그네들까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평등 공동체를 이룩했었다. 폭력을 일삼는 임금을 두지 않고 말이다.

우리 민족이 선사 시대 붙어 소중하게 보듬어 내려온 얼은 무엇인가? 요즈음 선사시대의 우리 선조들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그것은 생명 사랑과 평화라는 것이다. 중국 고대사에 산재해 있는 우리 선조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들은 생명을 살리기를 좋아하는 평화로운 백성이라는 것이다. 동의 사람의 후예인 묵자는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하고, 이웃 동리를 자기 동리처럼 소중히 여기고, 이웃 나라를 자기 나라 같이 존중하라. 그리하면 평화가 온다. 그 까닭이란 우리가 다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느님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느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 “하느님이 햇빛과 단비를 우리 모두에게 주시지 않느냐?”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얼과 삶의 자세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그들이 살아온 환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들의 선조는 어둡고 추운 계절이 길고 긴 우랄 알타이와 시베리아 광야에서 존명을 위해서 투쟁하다가 생명을 주는 해가 돋는 방향으로 이주했던 것이다. 일부는 알라스카를 경유해서 미 대륙으로 건너 왔으나 다른 일부는 몽고를 거쳐서 만주 벌판으로 이주했다. 이런 생활 환경 속에서 저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것은 생명이다. 서로 껴안고 도우면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있는 정성을 다 부었다. 저들이 지향한 삶의 방향은 평화였다. 인정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더불어 사는 길이요 거기에서 그들은 삶의 기쁨과 보람을 경험했다. 단군 조선의 이야기를 살펴보아도 부락 부락이 화목하게 살 뿐 아니라 부락 장들이 모여서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협의하고 언제나 만장일치의 원칙에 따라서 결정을 한 다음 모두 이에 따라서 화목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그 후 중국의 한나라가 철기를 가지고 침입함으로 이에 저항하는 고구려와 같은 나라들이 태어났고 힘의 투쟁이 심해지면서 각가지 타락과 비극이 태어났지만 민중들의 심중 깊은 곳에는 언제나 평화를 갈망하는 심정이 가시지 않았다. 통치자들이 힘의 철학에 심취되어 인권과 평화가 여지없이 파괴될 때에는 언제나 민중들이 들고 일어서서 기존 세력의 터전을 뒤흔들어 놓곤 했다. 이렇게 함으로 역사를 한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했다. 그것이 고구려와 진골 김씨의 신라가 망하는 데서 시작해서 이씨 조선이 망하는 데까지 이른다.

일제의 잔혹한 수탈의 시기를 지나 해방이 된 뒤에서 기득권 세력은 여전히 자기 배만 생각을 했고 민중은 평화를 갈망하면서 투쟁해 왔다. 이런 혼탁한 사회에서 무시를 당하면서 자주와 평화를 갈망해 오던 청년들이 발랄한 정신으로 신나게 축구를 하는 동료 청년들을 보면서 홀연히 일어서서 깊이 잠재해있던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이 “붉은 악마”들의 멋있는 행동이었다.

“우리는 살아 있다.” “이것이 우리들의 진면목이다.” “우리는 서로를 아끼면서 생명을 살리는 평화의 사자들이다,” “더불어 평화롭게 살자” 하고 외친 것이다. 선사 시대에 우리 선조 들이 가졌던 아름다운 얼의 부활한 것이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영혼이 재생한 것이다.

맺는 말

정치가들은 이 폭파하는 젊은 얼들을 자기들의 정파를 위해서 이용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붉은 악마”들은 이런 행태에 코웃음을 친다. 분출하는 저들의 화산은 모든 민족을 비참하게 만드는 모든 구태들을 불사르려는 것인데 그들을 자기들의 염치없는 책략에 이용을 하려고 하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물론 “붉은 악마”의 폭풍에 가담한 자들이 다 이런 순박한 동기를 가진 자들이 아니다. 이 운동 역시 다시 악마들의 꼬임에 이끌려서 그릇 나갈 수도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생명이 넘치는 운동이 평화를 이룩하는 방향으로 진전이 되어 온 인류의 평화를 조장하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국이 아시아뿐만 아니라 인류의 횃불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 이 운동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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