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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포리일기 114】숟가락 전설
저는 아주 어렸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숟가락을 사용한다는 걸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여 숟가락 하나를 10년 동안 사용한 기록이 있습니다. 손잡이에 줄무늬가 있어서 다른 것과 구별이 되었던 제 숟가락을 가족이든 누구든 사용하는 날이면 난리가 났지요.
한번은 학교에 갔다 왔는데 여동생이 제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울고불고 땅바닥에 뒹굴면서 난리를 치던 저는 갑자기 숟가락을 뺏어서 돌멩이로 쾅쾅쾅 찍었더니 숟가락 가운데가 오그라졌습니다. 그 오그라진 숟가락을 한 5년을 더 사용하였다는... 언젠가 가족모임에서 우연히 숟가락 이야기가 나왔는데, 30년 전 그 사건을 여동생이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더라니까요!(세상에...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또 한번은 가족들이 작당을 하여 낡은 숟가락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우연을 가장하여 돼지 똥물이 흐르는 하수구에 빠뜨렸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똥물 속에서 잘 절여졌던 숟가락을 건져내어 뜨거운 물에 삶는다고 한바탕 난리를 친 다음 태연하게 다시 계속 사용하였다는 전설! 숟가락을 한 10년 쓰니 목이 똑 부러졌습니다. (아...그때 용접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용접이라도 해서 계속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지금은 제 숟가락이 없습니다. 아무 숟가락이나 가지고 잘 먹습니다.
‘숟가락을 드는데 어제는 누가 이것을 사용했을까? 누구의 입에 들어갔던 것일까? 사용한 자국도 없이 잘 씻기고 반짝반짝 닦여서 얇은 종이에 싸여 있지만, 어느 누구라도 입과 입을 연결시키며 우리들 모두 한솥밥 나눠 먹는 형제들로 만들고 싶어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아닌가!’(박일/숟가락)
숟가락을 들 때마다 저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이 숟가락은 뽀뽀하고 싶을 만큼 이쁜 아가씨가 내가 사용하기 전에 이 수저로 밥을 떠서 입에 넣고 오물모물 쪽쪽 빨아먹었던 거야. 아 좋아. 음~ 좋아 여인의 향기가 느껴져~” 오늘 저녁 식사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숟가락 상상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2006.11.1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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