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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글방551】그림을 그리는 일은 정말 신나는 일이어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동생은 6살이었지요. 제가 잠시 살았던 동네에 막걸리를 만드는 주조장 옆에 우리집이 있었습니다.
창문을 열면 막걸리 냄새가 솔솔 풍겨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커다란 찜통에 밥을 찌기 위해 걸어놓은 대형 솥이 우리 집에서 보면 빤히 보였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때 어린 여동생과 같이 그 솥이 있는 곳으로 기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솥바닥에 검댕이가 너무 새까맣고 보드라운 게 참 예뻐보였습니다. 손으로 만져보니 손에 검댕이가 물감처럼 묻었습니다. 저는 여동생의 얼굴에 화장을 해준다면서 검댕이로 분장을 시켜 주었지요. 제가 봐도 여동생은 제법 근사한 흑인 소녀가 되었습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빨리 자랑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어떻게 되었냐구요? 다리몽댕이가 부러지도록 맞았지요.
저는 맞으면서도 배실배실 웃었습니다. 여동생을 모델로 온 몸에 검댕이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과 저는 홀라당 벗겨져서 물통 속에 들어가 검댕이를 씻어내야 했습니다.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저는 검댕이 그림이 또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순진한 여동생을 살살 꼬드겨서 다시 한번 구멍 속으로 들어갔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여동생의 얼굴에 수염도 그려보고 토인 분장도 해보고 눈에 안경도 그려보고... 아까 부러진 다리몽댕이가 또 부러졌습니다.
아...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다리몽댕이가 부러져도 재미있었습니다. 겁을 먹고 이제 안 따라가려는 여동생을 강제로 끌고 구멍으로 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또 신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니... 그런데 갑자기 저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아이고 지금 내가 먼 짓을 한 거야? 와락 겁이 났습니다.
동생과 함께 하수구 속으로 숨었습니다. 제가 하수구 속으로 들어가니 여동생은 얼덜결에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야단을 안 칠테니 나오라는 말을 순진하게 믿고 기어나 왔다가.. 또 다리몽댕이가 부러졌습니다.
그 뒤로 저는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비록 결심대로 화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가끔 그림을 그립니다. 지금은 여동생의 얼굴에 안 그리고 종이에 그립니다.^^
좋은이가 그런 아빠의 유전을 이어받았는지 제법 그림을 잘 그립니다. 저는 꿈을 접었지만, 다리몽댕이가 부러져도 좋은 그 그림을 딸은 열심히 그릴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려고 합니다. ⓒ최용우 201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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