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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스트] 묵상기도

기도자료 리처드 포스터............... 조회 수 1838 추천 수 0 2008.08.25 23: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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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스터의 기도        (리처드 포스터 / 송준인 역   두란노)

묵상기도
          
     "묵상이란 영혼의 언어이며 우리 영의 말이다" <제레미 테일러 (Jeremy Taylor)>

     소가 되새김질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점잖은 동물은 풀과 다른 먹이로 그배를 채운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앉아서 되새김의 과정을 통해 이미 먹은 것을 다시 씹는다. 그리고 반추하는 과정에서 입을 천천히 움직인다 이렇게 하여 소는 이미 먹은 것을 완전히 소화시킬 수 있고 그 소화된 음식은 부드러운 우유로 변하게 된다
     묵상 기도도 마찬가지다. 묵상을 통해 진리가 입에서 머리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조용한 묵상, 즉 반추를 통해 그 사람 속에서 믿음으로 충만한 사랑의 반응을 기도로 표현하게 된다.

조깅하는 수도사

     전에 내가 가르친 학생 중 짐 스미스(Jim Smith)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정말로 총명했던 짐은 계속해서 미국동부에 있는 한 유명한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2년째 되는 해까지 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개인적인 수양의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수양관에 도착하여 그는 그 주간 동안 자신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줄 수사를 소개받았다. 그러나 짐은 곧 실망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수사의 옷 밑으로 조깅화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디다스 조깅화라니 !  짐은 수염이 나고 당대의 지혜로 가득 찬 현인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을 양육할 수사가 조깅이나 하는 사람이라니 !
     그 수사는 짐에게 단 하나의 과제만을 내주었다 그것은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성 수태고지 (예수 탄생 기사)를 묵상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짐은 자기 방으로 돌아가 성경을 펼쳐 들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예수님의 탄생 기사라. 아마 천 번도 더 읽었을 걸." 처음 두세 시간 동안 그는 여느 훌릉한 주석가가 그러하듯이 그 말씀을 쪼개고 분석하여 나중에 설교에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유용한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의 나머지 시간은 말없이 빈둥거리며 보냈다.
    다음날 짐은 수사를 만나 자기의 영적 생활에 대해 상의하였다. 수사는 짐에게 과제로 내준 말씀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짐은 자기가 깨달은 것을 나누며 그 도감동해 주기를 바랐으나 그렇지 못했다.
    "그 말씀을 읽은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수사가 물었다 "목적이요? 그야 그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것 아니겠습니까?" "그 밖의 다른 목적은 없나요?" 짐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뇨. 그 밖의 다른 목적이란게 있나요?" "예. 말씀 속에는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무슨 뜻인지 하는 것 외에 우리가 찾아내야 할 그 이상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 본문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신가?'  '감동받은 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더욱중요한것은 '말씀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는가?' 하는 질문들입니다. "
     그 수사는 짐에게 똑같은 본문을 주면서 그 날 하루 종일 묵상하되 머리로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묵상하며 읽도록 권면 하였다. 온종일 짐은 그 수사가 가르쳐 준 대로 시험삼아 해보았으나 계속해서 실패하고 말았다. 밤이 되었을 때는 본문을 실제로 거의 암기할 정도가 되었으나 여전히 그 말씀에는 생명력이 없었다. 짐은 적막함으로 인해 마치 귀머거리가 된 것 같았다.
     그 다음날 그들은 다시 만났다. 짐은 낙심하여 수사의 지시대로 할 수 없었노라고 말했다. 바로 그때 그 조깅화 뒤에 감추어져 있던 지혜가 여실히 드러났다. "짐, 당신은 너무 힘들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조종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받겠다는 자세로 마음 문을 여세요. 하나님을 당신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말고 단지 받아들이기만 하세요. 하나님과의 교제는 당신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잠자는 것과 같아요. 당신이 스스로 잠들 수는 없어요. 단지 잠잘수 있는 조건을 만들뿐이지요. 당신이 이제 해야 할 일은 그 조건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성경을 펴서 천천히 읽으세요. 그리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가만히 묵상해 보세요."
     짐은 자기 방으로 돌아가 다시 말씀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오가 되어서 그는 천장을 향해 소리쳤다 "저는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이기셨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는 책상 위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성경을 집어 들고 그 본문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낯익은 말씀이었지만 어딘가 달라 보였다.  머리와 마음이 부드러워짐을 느꼈다. 마리아의 대답이 그의 말처럼 느껴졌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 말씀이 계속 그의 머리 속에 맴돌았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마치 창문이 갑자기 활짝 열리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께서 친구처럼 말씀하고 싶어하시는 듯했다. 그 대화는 계속되었다. 누가복음의 그 사건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마리아에 대해서, 그리고 짐 자신에 대해서 계속 대화가 이어졌다.
     성령께서 짐으로 하여금 마리아의 느낌과 마리아의 의심과 마리아의 두려움과 마리아의 믿기지 않는 신앙의 답변 등을 깊이 체험하게 하셨다. 물론 그것은 짐 자신의 느낌과 두려움과 의심이기도 했다. 성령께서는 치유의 사랑과 부드러운 손길로 짐이 가지고 있던 과거까지도 상한 감정들을 어루만져 주셨다.
     짐 자신도 거의 믿을 수 없었지만, 천사가 마리아에게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고 한 이야기는 바로 자신에게 하는 말씀인 것 같았다. 또 마리아가 놀라서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고 반문한 것은 짐 자신의 질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이 그러했다. 그래서 짐은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 품에 안겨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성경의 그 구절을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알려 준 것이 나온다. 짐의 미래는 어떤가? 하나님과 짐은 이 문제, 즉 앞으로 어떻게 될지, 또 어떻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짐은 하나님과 기도하며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다. 태양이 커다란 상수리나무 뒤에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해가지평선 너머로 막 내려간 바로 그 순간, 짐은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마리아의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고백할 수 있었다. 짐은 자기 삶의 주권을 포기한 바로 그 순간, 새로운 주권을 발견한 것이다.

성경에 근거한 묵상

     짐의 이야기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기독교인의 묵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 근거한 묵상이며 또한 여러 유명한 경건 서적들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장에서 우리는 묵상 기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접근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참된 유익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의 임재 속에 직접적으로 교통할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의 마음이 성경으로 충만하고 성경으로 훈련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편에 묘사되어 있는 믿음의 사람들, 즉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 (시 1 : 2)에게 뒤져서는 안된다. 유사이래 경건한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성경 묵상을 모든 형태의 묵상을 바르게 유지시키는 준거의 중심으로 생각해 왔다. 묵상 기도에서 성경은 더 이상 인용을 위한 사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생명의 말씀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생명의 말씀' 이 된다. 그것은 성경을 공부하는 것과도 다르다. 성경 공부가해석이라면 성경 묵상은 그 말씀을 내면화하고 인격화하는 것이다. 기록된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 이것은 전문적인 연구나 분석을 위한 시간이 아니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자료를 모으는 시간도 아니다. 그 시간에는 교만한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종종 이러한 시간에 특히 적합한 자세는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분석하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에게 말씀이 선포될 때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마리아처럼 성경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서 곰곰이 생각하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 본회퍼가 핀켄발데(Finkenwalde)에 신학교를 세웠을 때, 모든 사람들은 거기서 매일 30분 동안 조용히 성경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요한 것은 많은 성경 구절들을 수박겉할기식으로 대충 하고 싶은 유혹을 버리는 것이다. 수박겉할기식의 묵상은 우리의 내면 상태를 반영해 준다. 그런 우리의 내면 상태는 변화되어야 한다. 본회퍼는 하나의 본문을 일주일 내내 묵상하라고 권한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사건이나, 하나의 비유나, 몇몇 구절이나, 아니면 단 하나의 낱말이라도 일단 그것을 붙잡으면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릴 때까지 묵상하라고 권하고 싶다.
     묵상할 때 우리는 쇠렌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가 성경의 '동시대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한다. 이는 과거가 단순히 현재와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재와 교차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실에 대해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설교가 알렉산더 휘트(Alexander Whyte) 목사는 말하기를, "성경은 온통 당신의 자서전과 같다"고 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성경을 묵상하다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신 대목에서 그 말씀을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받아들여 그의 입장이 아님을 감사하며 읽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바로 아브라함의 입장에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한 가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결단의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우리도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위치에 서야 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산에서 내려 올 때는 그 말씀의 의미를 나의 말씀으로 깨닫고 새롭게 내려와야 한다.

상상력의 성화

     성경 본문을 가장 간단하게, 가장 기본적으로 묵상하는 방법은 상상력을 통해서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알렉산더 휘트가 "예배와 그리스도인의 상상력의 놀라운 역할"이라는 말로 잘 묘사하고 있다. 추상적인 묵상만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모두는 감각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릴 필요가 있다.
     감각은 우리가 성경 본문을 접하게 될 때 유용한 도움이 된다. 우리는 성경의 사건을 보고 듣고 만지기를 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갈 수 있고 그 사건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말씀을 멀리서 관찰하는 태도에서 이제 적극적인 참여의 자세로 돌아서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는, 보다 간단하고 겸손한 이 방법을 경멸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방법으로 직접 가르치셨고, 비유 속에서도 계속해서 상상력을 강조하셨다. 수많은 신앙의 대가들도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를 격려한다. 테레사(Teresa of Avila)는 이렇게 말한다. "묵상을 할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저는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그리려고 애쓴답니다. 저는 이런 식의 일들을 많이 하곤 합니다. 제 영혼이 이런 방법을 통해 많은 유익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기도를 시작했거든요." 우리도 그녀의 말에 대부분 공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묵상할 때 지적으로만 접근하려고 애써왔으며 그런 방법이 너무나 기계적이고 우리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상상력은 우리의 생각을 고정시키고 우리의 주의를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프랜시스 드 쌀레(Fransois de Sale)는 이렇게 말한다 "새를 새장에 가두어 둔다든가, 매를 가죽끈으로 묶어 두는 것은 편안히 쉬게 하기 위함이듯이, 상상력에 의해서 우리가 묵상하는 그 신비로운 사건에 우리의 마음을 국한시킬 수가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게 된다. "
    상상력을 사용하면 감정의 균형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지성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성경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그 말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온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이 신뢰할 수 없고 또 악한자에 의해서 잘못사용 될 수 있다고 해서 아예 상상력 사용하기를 거부해 온 사람들도 더러 있다. 사실 그 사람들이 염려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다른 기능과 마찬가지로 타락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이 비록 타락하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택하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그것을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사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타락한 상상력을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사용하실 수 있음도 믿는다. 물론, 우리의 상상력이 사탄에 의해서 왜곡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기능이 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 상상력을 부여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로서 그 상상력까지도 구속하실 수 있을 뿐더러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신다
     상상력의 사용에 대한 또 다른 우려는 사람이 그것을 조작할 수 있고, 또 자기 기만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의 이미지를 수시로 꾸며 낼 수가 있다. 더구나 성경도 악한 자들의 허망한 생각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롬 1 21)
     이와 같은 우려 역시 합당하다 이 모든 것이 헛된 인간의 노력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좇아 생각하려 하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며, 하나님의 진리와 길을 따르고자 애쓰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살수록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력을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그만큼 더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상력을 거룩하게 하셔서 사용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을비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으므로 우리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심상들을 사용하셔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성경을 체험하며 사는 법

     우리는 묵상을 통해 성경을 체험하며 살아가고자 애쓴다. 알렉산더 휘트는 이렇게 말한다.

신약 성경을 펼치면, 당신은 상상력에 의해서 그 순간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때 그곳에 있게 되며 예수님의 발 앞에 서게 된다. 상상력에 의해 당신은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 세리가 되기도 하고, 탕자가 되기도 하며, 막달라 마리아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현관에 서 있는 베드로가 되기도 한다.

     성경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서,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toyola)는 우리에게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하라고 권면 한다. 우리는 바다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해변가의 찰싹거리는 물소리를 들을수 있다. 사람들이 나오면 시각을 동원할 수 있고,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열을 느낄 수 있고, 굶주리면 배가고픈 것을 느낄 수 있다. 공기 중에 있는 소금기를 맛볼 수 있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수 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14'27) 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을 묵상한다고 하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구절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그 구절이 말씀하고 있는 실제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에서 지금 우리에게 평안을 주고 계신다는 진리를 곰곰이 묵상한다. 마음과 뜻과 영이 예수님의 넘치는 평안에 깨어 있게 된다. 모든 두려운 감정이‥‥‥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 (딤후 1 : 7)에 의해 극복되고 안정되는 것을 느낀다. 평안을 분석하고 쪼개는 대신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속에 둘러싸여 흡수되고 통합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에서 놀라운 일은 자신을 완전히 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어떻게 하면 더 평안해질 수 있을까 염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있는 평안을 나누어주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평안하게 행동하는 방법을 애써 생각해 내려고 하지 않는다. 평안한 행동이 이제 자연스럽게 안에서 밖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성경의 많은 구절이 묵상 기도의 시금석이 된다. "가만히 서서 내가 하나님임을 알지어다. "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나는 선한 목자다. "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이 말씀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 가까이 계심을 발견하려고 애쓰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를 갈망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기억할 점은, 묵상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의 뜻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도전하시며 선택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의 음성을 들었으면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회개와 변화와 순종을 요구하는 윤리적인 부르심이다. 그것은 동양의 세속적인 명상의 결과와는 너무도 분명하게 구별된다 묵상기도에는 자아 상실이 없으며, 우주적인 의식과의 하나 됨이 없고, 공상적인 영적 세계로의 여행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삶을 변화시키는 순종을 요구받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치유하시고 용서하시고 변화시키시며, 권세를 주시기 위해 실제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
     이러한 내용을 말해 주는 전문 용어가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라는 말이다. 그 말은 '거룩한 독법'이라는 뜻인데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책을 읽을 때 지적인 마음이 정적인 마음으로 내려가서 그 두 가지가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독법을 말한다. 헨리 누웬은 언젠가 자기 아파트에 걸려 있는 한 아름다운 그림을
가리키며 "저것이 바로 렉치오 디비나 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그림은 한 여자가 무릎 위에 성경을 펴놓고 위를 쳐다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무슨 내용인지 알겠는가? 우리는 글을 읽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칼바르트의 말을 빌면 우리는 기록된 글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내주하시는 성령님께 마음의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듯 소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 묵상이 우리의 덕을 세워주며 우리를 강건하게 해준다.

풍성한 우물

     렉치오 디비나를 위한 최우선의 가장 순수한 자료는 성경임이 틀림없지만, 수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해 준 여러 위대한 경건 서적들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경건 서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가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것이 오늘날 소위 경건 서적으로 통하는 진부하고 가벼운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내가 말하는 경건한 글은 광야에서의 오랜 경험과 참회를 통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그것은 시내 산에 살면서 여전히 그들의 삶의 수준에서 우리에게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흘러나오는 글이다.
    우리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는 우물은 광대하고 깊다. 여러분이 시작할 때는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가 쓴 「모세의 생애 (The Life of Moses)」가 좋겠다. 이 책은 고결한 삶을 살아가는 데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그레고리에게 있어서 미덕이란 목적지에 도달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시도하고 투쟁하고 경주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의 순수함에서부터 미덕을 발견한다. 마지막 목적지는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것은 영예롭고 소망할 만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온전한 생활이다."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바칠 가치 있는 목표가 아니겠는가?
     그 다음 책으로는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이 좋다. 해방을 향한 어거스틴의 구부러진 길을 따라가는 것은 우회 도로도 많고 막다른 길도 많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불순종과 제도적인 악, 그리고 사회적인 부패가 어거스틴과  우리 삶의 바탕을 이루는데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살펴 보라.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꼬인 매듭을 누가 풀 수 있겠는가? 나는 이것을 견딜 수 없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다. "
     시세로에서부터 마니교도까지, 아카데미 학파와 플라톤에서부터 사도 바울까지 이른 그의 지적인 순례도 연구해 보라. 그리고 어거스틴에게서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 꾸준히 영향을 주었던 모니카와,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젊은 시절의 친구인 빅토리누스, 그리고 안토니와 암브로스를 주목해 보라.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마침내 소위 '악의 구렁텅이', 즉 교만과 야심과 육욕과 게으름과 방탕함과 경쟁심과 두려움과 복수심에서 해방시키신 그 놀라운 은혜를 생각해 보라.
     성 어거스틴의 엄격하고 투쟁적인 삶을 맛본후에는 「성 프랜시스의 작은 꽃들(The Little Flowers of St. FraNcis )] 이라는 책의 소박한 기쁨을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프랜시스와 함께 찬양하라. 그의 '태양 찬가' 를 부르며 태양 형제와 달 누이, 바람 형제와 물 누이를 축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라. 버나스 형제와 클래어 누이, 맛세오 형제와 내가 좋아하는 주리퍼 형제의 놀라운 간증들을 들어 보라. "길즈 형제의 말"에 나오는 지혜와 훌륭한 감각이 놀랍지 않은가? 죄악된 행동으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 사람에게 길즈는 이렇게 충고한다. "죄에 대해 슬퍼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지나치게 슬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용서의 능력은 당신의 죄의 권세보다 크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사실을 믿고 늘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그 다음으로 노리치의 줄리아나(Juliana)가 쓴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Revelations of Divine Love)를 들 수 있다. 그 책에는 1373년 5월 8일에 그녀가 직접 받았던 열여섯 가지의 환상에 대한 그녀의 성숙한 묵상이 실려 있다 그 내용 중에는 모든 종교 문학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가 들어 있다.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전심으로 그를 의지하기 원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붙잡기 원하신다. - 오늘날 너무 쉽게 열정 없는 신앙생활로 내려앉는 우리는 그녀의 열정적이고 열심 있는 말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주시고 붙잡아 주신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껴안아 주시고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
     근 오백 년 동안 경건 문학의 독보적인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도 보기 드물게 좋은 책이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이 단순한 책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부요해졌다. 이 책에는 공동생활의 형제단이라고 알려져 있는 15세기의 역동적인 영적 운동의 통찰력이 정제되어 담겨 있다 이 책의 엄청난 인기는 그것이 오십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설득력 있는 말들로 가득 차 있어서 그 말을 가지고 구일 동안 참된 유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그 책의 군데군데에서 뽑아 놓은 말들을 묵상해 보라. "마음에 큰 평안이 있는 사람은 칭찬이나 비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  "육체 노동으로 땀을 흘리는 것보다 우리의 약점을 이겨내는 것이 더 큰일이다. " "모든 좋은 감정을 좇는데 급히 서두르지 말고 모든 나쁜 감정을 피하는 데 너무 열심 내지 말라." "옛 뱀이 너희를 유혹하고 시험할지라도 기도로 그를 가두어 놓을 수 있고, 시험을 받는 동안 유익한 일을 하면 그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
상처받고 깨어진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을 넓혀 주는 작가로는 존 울만(Johnwoolman)이 있다 그의 책 「저널(Journaj)」은 비록 18세기에 저술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씨름하는 인종 문제, 소비자 보호 운동, 군국주의 등의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울만의 책을 읽고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그 두 가지를 두 계명이 아니라 하나로 정확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울만은 노예 해방운동의 신념을 확산시키는 일에 지도자격이었다. 그는 그 여론을 확산시켜서 미국의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150년 전쯤, 퀘이커 교도들 사이에 있었던 노예 제도의 관습을 공박하여 결국에는 그것을 철폐시켰다. 그가 사랑과 용기, 온유함과 확고함을 잘 조화시켰다는 점이 가장 놀랍다. 울만의 [저널」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끈기 있게 읽을 만한 좋은 책이다.
     영적인 생활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가장유서 깊은 방법 중 하나는 수세기에 걸친 성인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앞서 간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했는지를 배우고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좇아갈 수 있는지를 배운다. 우리가 읽을만한 책들은 너무나 많다. 14세기에 쓰여진 「안토니의 생활(The Life of Anthony) 과, 역시 14세기에 아빌라의 테레사가 쓴 「자서전(Aotobiography) 그리고 20세기의 「도요히꼬 가가와」 등을 들 수 있다. 신앙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증거들에 대해 정말로 도움을 주는 입문서가 있다면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제임스 길크리스트 로슨(James Gilchrist La-wson)의 「유명한 그리스도인들의 더 깊은 체험 (Deeper Experiences
of famour Cfristiars )]이라는 책이다.
     우리 마음의 영양소가 되는 이러한 놀라운 글들을 계속해서 소개하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자제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한편으론 다른 곳에서 그런 유혹에 넘어가 보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처음부터 너무 많은 선택의 강을 만나게 되면 그곳에서 헤엄을 치기보다는 빠져 죽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인격을 형성할 때까지는 몇 가지 영적인 기본 품목들만 먹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신앙의 대가들이 쓴 책을 직접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진실로 가치 있는 경험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그들이 정확한 묘사에서 가장 열정적인 기도로, 그리고 또 다시 이야기의 서술로 아무런 꾸밈없이 수월하고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믿기로는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일과 기도 이 두 가지를 꿰맨 자국이 없는 하나의 옷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파스칼은 그의 「팡세」를 '무릎을 꿇고' 기록했다고 선언하였다.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저술가로서의 자신의 천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문자그대로 사람이 아버지와 함께 살듯이 진실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왔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일하기 시작한다. 저녁이 되면 정해진 시간에 잠시 일을 중단하고 다시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나서 잠자리에 든다. 나는 늘 이렇게 살아간다.

     성 베네딕트가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 를 일상 생활을 위한 그의 '규율'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기도로 충만한 그러한 독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기 위해 하도록 시키시는 것이다. 앞서 읽은 것처럼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충고를 따르면 좋을 듯하다. "거룩한글들 속에 담긴 웅변을 찾지 말고 진리를 찾아라. 거룩한글들은 모두그것이 쓰여질 때와 똑같은 정신으로 읽어야 한다. 크든 작든 저자의 권위나 학식에 영향 받기보다는 순수한 진리에 대한사랑으로 읽으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묵상 기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살아 계신 음성을 체험하고자하는 소망까지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 하실 때 생겨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원래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Thomas Melton)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묵상을 하고자 하는 소원과 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저 묵상을 시작하는 사람은 이내 포기하게 된다. 묵상하고자 하는 소원과 묵상을 시작할 수 있는 은혜는 더 큰 은혜를 받기 위한 절대적인 약속이다. "
     내가 알기로는, 묵상하고자하는 욕구는 당신에게 이미 주어졌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 큰 은혜는 필요할 때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나에게 마음속으로부터 시편 기자의 이런 말을 고백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 : 97, 103).

기도

    주님, 나는 지금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눅 12 :49)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 말씀을 통해 내게 주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내 속에 불타 없어져야 할 것이 있습니까? 교만, 두려움, 분노‥‥ 주님, 이러한 것들을 하나씩 불태워 주십시오. 이 세상에도 주님께서 태우기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낯을 피해 숨는데 사용하는 종교적 제도들과, 혹인과 백인, 남자와여자, 부모와 자녀 등 서로를 분리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그은 선들, 약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에게 자행되는 끔찍한 불의, 여자들과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생명들에게 행하는 말할 수 없는 폭력. 바로 이러한 것들이 소멸되어야할 것들이 아닌가요? 오! 주님, 우리를 용서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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