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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빛을따라간사람들] 존번연

영성묵상훈련 한기호 전도사............... 조회 수 2222 추천 수 0 2010.04.18 01: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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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ohn_Bunyan.jpg 

[빛을 따라간 사람들]     존번연

 

마귀의 종이 하나님의 종이 되기까지   - 존 번연

출생

 

존 번연은 1628년 영국 잉글랜드 베드포드 근처에 있는 엘스토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몹시 가난한 땜장이였기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가 없었다. 번연은 초등학교에서 읽기와 쓰기를 겨우 익힐 정도밖에는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어려서부터 글보다는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워야만 했다. 번연은 그 지역의 모든 가문들 가운데 가장 천하고 보잘것없는 출신이었으므로 부자집 아이들과 같이 글을 배우며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번연 역시 공부에 소질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가난한 아이들과 같이 초등학교에서 읽고 쓰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그나마 어렵게 배운, 적은 지식조차도 쉽사리 잊어버리는 머리가 좋지 않은 아이였다.

 

그러나 주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도 주께서 세상의 천하고 약한 사람들을 택하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은혜를 찬양했기 때문이다(고전1:29). 존 번연을 보면 하나님의 택하시는 은혜가 IQ의 높고 낮음과 돈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의 뜻에 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9:11). 따라서 번연도 역시 이러한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도록, 좋으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좋지 않은 머리와 가문 위에 넘치도록 부어 주심을 볼 때, 그 기이하신 은혜를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음을 번연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구제불능의 사람

 

좋지 않은 것은 그의 머리만이 아니었다. 번연은 특히 어릴 때부터 행실이 좋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의 상태가 그리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세상 풍속을 좇아 육신의 정욕에 따라 방탕하며 살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경우는 더욱 좋지 않고 정도가 매우 심각하기까지 하다. 바로 번연이 그러한 경우였다. 번연은 마치 소돔성에 찾아온 두 천사를 향해서 음욕이 불일듯하여 숨을 헐떡거리던 소돔사람과 같고, 하나님과 모세를 반역한 고라와 같으며, 두 눈 뽑힐 삼손같이 매사에 신중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같이 미련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번연은 많은 오락과 유치한 생각과 나쁜 일을 즐기고 다녔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보통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장난끼 많지만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번연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악에 일찍 눈을 뜨고 심판의 두려움과 지옥의 고통으로 번민하던 애늙은이였다. 하나님도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서운 악몽으로 그를 다루고 계셨는데 이것을 볼 때 확실히 번연은 보통사람과는 달리 악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이때부터 죄악은 그의 본성처럼 되어버려 악한 말과 행동이 상습적으로 굳어지고 갈수록 난폭하고 흉악한 사람으로 커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의 형상보다는 마귀의 자식같은 행동만 더 일삼는 번연은 구제불능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러한 번연을 당신의 자녀로 택하신 것은 7대불가사의 보다 더 미스테리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씨 속에서 사과를 보시는 분

 

마귀의 종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그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싸개에 둘러싸여 있었으며(삼상25:29) 심지어 마귀도 놀랄 만큼 큰 죄악을 행하기도 했지만 주님의 은혜는 그치질 않았다. 번연이 얼마나 더러운 죄와 불의에 빠졌는지 주님을 멀리하며 회개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래도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은 그치질 않았다. 왜 주님은 번연을 이토록 편애하셨을까? 어떤 사람은 회개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심판을 맞기도 하는데 똑같은 죄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짓고도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은 번연에게 언제나 자비가 풍성히 섞인 심판을 내렸을 뿐 완전히 파멸에 이르도록 하시지는 않으셨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바보도 사과 속의 씨는 헤아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씨 속에서 사과를 헤아리신다”. 사람은 외모를 보던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고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설령 안다해도 그 사람을 완전히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종국에는 그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분이시므로 우리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모든 것을 아신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뱃속에서부터 이미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렘1:5).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끝에서 처음을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므로 우리의 작은 일생도 끝에서부터 다 보고 아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구제불능인 번연도 장차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을 아셨다. 그분의 신성한 능력은 결코 실수가 없으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며 의지할 수 있는 이유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11:29)고 하신 것이다.

 

죄악의 사도

 

번연은 어릴 때부터 마귀에게 사로잡혀(딤후2:26)서 사단의 뜻을 따르고 그것을 평생의 즐거움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온갖 불의와 악을 다 행하고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저주와 헛된 맹세, 그리고 거짓말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모독하는 일을 수없이 했다. 번연은 원래 신앙심이 깊은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난폭하고 거친 욕을 하는 습관이 그를 지배했다. 번연이 얼마나 심한 욕쟁이였는가에 대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그가 상점 진열창 앞에서 미친 사람이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를 향해서 굉장한 욕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를 한참 희롱하고 있는데 그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욕을 잘하고 불경스런 여인이 우연히 번연의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곧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욕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고 번연을 죄악 중에 우러러보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불경스런 사람은 처음 본다. 만일 읍의 청년들이 이 사람과 사귀게 된다면 모든 청년들을 타락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번연의 하루일과는 죄의 묵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죄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죽기 전에 어떤 죄를 짓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살핀 후, 하나도 남김없이 그 죄를 실천했다. 그의 고민은 오늘 내가 짓지 않은 죄는 무엇이며 내일은 무슨 죄를 지을 것인가였다. 번연은 항상 내가 용서받기는 너무 늦었기 때문에 천국을 포기하고 대신 유일한 낙으로 맘껏 죄를 짓자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기도 끔찍한 죄를 지으며 살았던 번연은 마침내 지옥이 없기를 바라며 차라리 자기가 마귀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래도 하나님의 자비섞인 심판이 내려지고 나면 가끔씩 교회에 나갔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양심과 마주칠 때마다 괴로워하기도 했다. 죄책감은 그의 즐거움을 빼앗고 무거운 마음으로 그의 발걸음을 인도했다. 이것은 분명히 죄에 민감하게 하시고 회개케 하시려는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러나 번연은 역시 죄악의 사도답게 고수였다. 밥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면 이내 더욱 죄악에 치달았다. 필사적으로 설교를 마음에서 몰아내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락과 도박을 행했다.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자 한없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빠져있더니 전보다 더 열심히 죄를 짓기 시작했다. 그를 위로하는 것은 주님의 용서가 아니라 죄악의 달콤함이었다. 번연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어떤 죄를 범해야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했다 나는 죄의 달콤한 맛을 보고자했다. 나는 나의 욕망을 채우기 전에 죽지나 않을까 하여 가능한 한 서둘러서 죄악으로 내 배를 채우고자 했다.”
빗물에 한 두번 흙탕물이 튀면 피하려고 하지만 아예 물세례를 받으면 포기하게 된다. 사단이 죄악을 이용해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이 마치 이와 같다. 한 두 번 행한 죄가 반복되고 나중에는 습관으로 굳어져 더 큰 죄악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어 회개도 못하고 양심도 마비된 채 하나님을 떠나 살게되는 것이다. 존 번연 역시 이러한 상태로 자신의 정욕에 따라 죄악과 온갖 불의를 다 행하고 죄성에 지배받는 생활을 하며 마귀의 종노릇을 해가며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이었다.

 

결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가장 큰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좋은 배우자의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잠31:10)고 했다. 또한 아내를 얻는 자는 여호와께 은총을 얻은 자(잠18:22)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마19:6)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좋은 아내를 얻는 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주권과 은총에 속한 일임에 틀림없다. 번연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번연이 실질적으로 신앙에 눈을 뜨게된 것이 바로 결혼을 하고서부터였다. 결혼할 때 번연 자신도 가난했지만 그의 아내 역시 비참할 정도로 가난했기에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것은 책 두 권이 전부였다. 아더 덴트(Arthur Dent)의 「평범한 사람이 천국으로 가는 좁은 길」과 루이스 베일리(Lewis Bayly)의 「경건의 연습」이 그것이다. 아내가 가지고 온 경건 서적 두권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사실은 하나님이 번연에게 주신 최고의 결혼선물이었다. 번연은 그의 아내가 가지고 온 이 두권의 책을 읽고서 마침내 이 세상 어떤 종교라 할지라도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셔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화평을 가져오는 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하며 학대받다가 모세가 나타나 출애굽을 통해 신앙과 자유를 얻게 된 것같이 번연에게도 구원의 손길이 서서히 임하고 있었다.

 

진리는 나의 빛

 

창세기에 나오는 돕는 배필의 원어 ‘에제르 크네그도’는 세가지 뜻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아내는 남편에게 ‘신적 도움을 주는 자’라는 뜻이다. 번연에게 있어서 아내는 현숙한 여인을 넘어서 생명의 조력자가 되었다. 번연은 이 당시만 해도 지독한 죄를 짓는 일을 그치지 않았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캄캄한 암흑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더 추한 모습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아내가 옆에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들려주었다.

 

탄의 반역으로 저주받고 깨어진 이 땅은 오랜 세월동안 혼돈과 흑암의 깊음 가운데 무질서 속에 흩어져서 뒤엉켜서 고통받고 있었다(창1:2). 사탄의 뒤를 따라 죄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들 역시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불순종으로 인해 고통 중에 신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며 한계이다. 어떤 것으로도 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너진 세상을 향하여 ‘빛이 있으라’ 하시므로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셨다. 만물은 새롭게 되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죄악의 혼돈과 무질서에 빠져 고통하고 신음하는 인간에게 빛을 비추시는 분이다. 진리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영혼에 비춰질 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고후4:6). 하나님은 번연에게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빛을 비춰주셨다. 아내가 가지고 온 두 권의 경건한 책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가 이야기하는 장인어른의 경건한 신앙생활의 모습을 들으면서 서서히 하나님께로 향한 의지가 싹트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번연의 마음에서 어두움이 진리의 빛으로 밝혀지는 가운데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고픈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다.

 

교인이냐 성도냐

 

이따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믿는 것들’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은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고 부패한 곳에 소금의 역할을 해야할 기독교인들이,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는 말이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12명으로 시작한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단 60년만에 로마를 복음으로 완전히 변화시키고 말았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초라한가.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백년이 넘도록 복음을 전하면서도 이 사회가 좀처럼 변화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썩어져 가는 것은 왜 그럴까.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요3:3)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 말씀의 의미를 경험한 사람은 많지가 않다. 교회만 단지 왔다갔다하는 교인과 거룩한 성도는 분명히 다른 말이다. 진짜 그리스도인보다는 기독교 종교인이 많기 때문에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 사회가 변하겠는가.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넘치는 까닭은 아마도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은 연고이리라(마22:14).

 

초기에 번연이 그러했다. 마음에 영적인 자각이 일어난 후 줄곧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우 열심으로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불렀다. 불신자들이 교회에 대하여 느끼는(비록 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신성한 감정을 가지고 헛되이 숭배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번연이 신실하게 변화된 듯이 보였고, 번연도 그러한 사람들의 시선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변한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사악하고 더러운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뭇 사람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행위를 살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것을 모르실 리가 없다. 성경은 이런 자를 향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라고 책망하셨다(딤후3:5). 이런 사람은 비록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도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한 것이다(요일1:6).

 

죄인의 노래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자두를 패러디한 앵두의 미니공연을 본적이 있다. 그때 앵두의 여성 멤버가 부르는 노래 가사 가운데 이런 고백이 나온다. ‘화끈한 세상을 따르자니 주님이 슬피 울고 영원한 생명을 따르자니 세상이 놓질 않네’. 아마도 오늘날 교회와 세상을 오가는 연약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가싶어 공감이 갔다. 하나님은 이러한 번연의 모습을 보시고 그를 깨우치기 위해 설교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목사님의 설교는 그를 죄에 대하여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이끌었다. 그때마다 번연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무척 괴로워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는 살아야겠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다. 죄 때문에 괴로워 고민하면서도 죄를 지으면서 느끼는 쾌락의 달콤함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는가. 하나님이 교회에서 번연을 향한 말씀의 결론은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이곳에 들어왔느냐”(마22:12) 였다. 그래서 마치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한 것처럼 번연도 믿음과 성결의 예복을 입지 않은 채 교회에 나와 거룩한 척하는 위선자임을 하나님이 발견하시고 지적하시는 것 같아 불편했다. 실제로 세상 마지막 날에는 천사들이 의인들 사이에서 악인을 가려낸다고 하셨다(마13:49). 번연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듯한 설교를 듣고 나면 곧 심판의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잠시나마 번연이 그렇게 오락을 즐기던 것을 재미없게 하고 죄로부터 오는 쾌락의 달콤함들이 도리어 쓴맛이 나도록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곧 원기를 회복하고 이전에 행하던 죄를 다시 짓기 시작했다. 번연은 스스로도 다짐을 하고 용기를 내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서 밀어내고 도리어 탐식을 마음속에 채웠다. 또 다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기쁜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마을 여기 저기를 돌아다녔다.

 

하늘의 음성을 듣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레갑 족속을 불러모으고 포도주를 마시라고 명하셨다(렘35:2). 그러나 레갑족속은 선조 요나답의 명을 받들어 이를 완강히 거절했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죽은 선조의 말이라도 신실하게 지키는 레갑의 후예들을 보고 칭찬하셨다. 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신실치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고 탄식하셨다. 번연은 날마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번연의 모습을 보시고 탄식하셨음에 틀림없다. 급기야 그 탄식소리가 번연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어느 날 자치기 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한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울렸다. “네 죄들에서 떠나 천국으로 가겠느냐, 아니면 그 죄들을 그대로 가지고 지옥으로 가겠느냐?” 화들짝 놀란 번연은 손에 든 막대기를 떨어뜨리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하니 하늘을 보며 서 있었다. 이때의 사건을 두고 번연은 죄의 댓가로 혹독한 지옥의 형벌을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뵌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당시 그가 얼마나 공포와 절망에 휩싸여 있었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번연은 생각하기를 어차피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에 갈거라면 살아있는 동안에 화끈하게 죄를 짓자라고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일이 이 지경이라면 난 정말 비참한 처지에 놓인거다. 내 죄들에서 손을 떼든지 그것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든지 비참하기는 매 한가지일 뿐이다. 내게 남은 거라고는 저주 밖에 없다면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차라리 죄를 많이 짓고 저주받는 게 낫다.”
번연은 하나님의 손길을 피해서 죄의 소굴로 더 깊이 깊이 빠져 들어갔다. 하지만 하나님의 작업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으셨다. 번연이 두려움과 공포, 오래된 죄의 습성에서 돌이켜 빛으로 나아오도록 끊임없이 부르고 계셨다.

 

한기호 전도사(부천· 밝은빛교회)   그리스도복음신보 2002.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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