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48호 |
2015년6월22일에 띄우는 오천이백마흔여덟번째 쪽지! ◁이전l 다음▷
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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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을 받고
성경이 말하는 ‘예수 구원’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확하게 <예수 믿으면 구원>이 아니고, <예수 믿고 죄를 용서받으면 구원>입니다.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 왔다고 바로 감기가 낫는 게 아닙니다. 때를 맞춰 약을 먹어야 감기가 낫는 것처럼,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자동으로 받는 게 아니고 죄 문제를 해결해야 구원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구원 받았다’는 고백은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했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의 죄 문제를 예수님과 진지하게 결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단과 결심과 행동이 요구되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내가 구원받았다고 할 일이 아닙니다. 왜 구원파들이 구원받은 날짜를 그렇게 강조합니까? 구원의 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죄 문제’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죄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지요. 한번 구원을 받으면 그 구원이 변경되지 않는다거나, 칼빈주의에서 주장하는 ‘구원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슨 죄를 지어도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예정론 또한 ‘구원과 죄 문제’를 하나로 보지 않은 견해입니다. 물론 구원파나 예정론이 예수 믿고 죄를 지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본질은 ‘죄 문제’인데 이에 대한 해석과 적용은 외면한 채 단지 구원받았다는 결과에만 치중하고 집착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완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죄인’과 ‘의인’으로 딱 갈랐습니다. 지금은 구원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으로 딱 가르는 것 같습니다. 이런 배타론적 구원은 구원을 ‘소유’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마치 티켓처럼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최용우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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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1742 <서른통/말씀사>중에서 ○지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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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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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사랑받고 사랑하며 사는 삶입니다. 그것과 바꿀 수 있는 가치는 이 세상은 물론 하늘나라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당한 모든 문제의 원인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사는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하나님 면전에서 사는 기쁨을 잃어버리고, 주님의 등 뒤에서 기쁨을 찾기 시작할 때 그 영혼은 황폐해지기 시작합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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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내가 너희 열 두명을 직접 뽑았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은 마귀이며 멸망의 아들이다. 그가 나를 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가리옷 사람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큰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요6:70-71)
[꼬랑지] 오늘날도 예수님 이용해 돈 좀 벌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룟 유다과’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모르시는 것 같아도 다 알고 계십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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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 -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것들 ○지난일기 |
□피자
기숙사 생활을 하는 밝은이는 한 달에 한번 전교생이 집에 가는 ‘전체귀가’날 금요일 오후 5시에 집에 온다. 집에 오면 그때부터 온갖 것들을 다 사 내라고 한다. “너는 학교에서 먹을 것만 생각하다가 오냐?” 한참 먹고 쑥쑥 클 나이에 기숙사 감옥에 갇혀서 삼시세끼 주는 밥만 먹다보니 야자 끝나는 밤 11시쯤 되면 극심한 배고픔에 시달린단다. 나도 고등학교를 기숙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극심한 허기짐을 잘 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 빵 사먹으러 밖에 나가기 위해 3층에서 담 밖으로 뛰어내리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후, 아찔하다. “미쳤지!” “육개장이 먹고 싶어요. 엄청 매운 짬뽕이 땡겨요. 칼칼한 칼국수나 시원한 열무국수, 피자도 치킨도 먹고 싶고 또...... ” 어휴, 정신없어. 도대체, 뭐가 먹고 싶다는 거야? 그냥 오늘은 피자 먹어! 피자마루에 가서 피자를 사가지고 와 먹었다.ⓒ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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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사망에 아르는 죄
사망에 이르는 죄,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요일5:16). 성도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죄 때문입니다.
ㄴ사망에 이르는 죄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방해하는 ‘의심’입니다. 의심은 성령님을 제한합니다. 흔히 성령 회방죄라고 부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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