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50호 |
2015년6월24일에 띄우는 오천이백쉰번째 쪽지! ◁이전l 다음▷
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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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존재’이다
구원이 소유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구원은 ‘존재’입니다. ‘존재(存在)’란 ‘실제로 현실에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는 순간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호적에 기록이 된 존재가 됩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갈 자격과 의무가 생긴 것입니다. 구원을 ‘이 다음에 죽으면 천국에 간다’라고 미래만 생각하면 그것은 구원은 천국입장 티켓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현재, 지금 내 삶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구원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지 맘 꼴리는 대로 사는 사람은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초월적인 사건임과 동시에 철저하게 내재적인 사건입니다. 만약 구원이 미래에 천국에 입장하기 위한 초월적인 의미뿐이라면 이 땅에서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구원은 철저하게 ‘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내재적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교회 안과 교회 밖을 구분하는 이분법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0세기에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말하기 전 까지만 해도 교회 안과 교회 밖을 딱 가르는 그런 구분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일반 성도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세상 일이다’ 이런 구분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 지금 나와 함께 있다는 ‘존재론’입니다. 예수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구원이 되시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원이란 ‘존재’라고 했으니 그럼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예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최용우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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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1744 <서른통/말씀사>중에서 ○지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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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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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오늘도 사면을 두루 살피시며, 당신 앞에 온전하고자 애쓰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지 않은 사람 1만 명보다 완전한 사람 한 명을 더욱 가치있게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사람 곧 온전하고자 애쓰지 않는 1만 명보다 온전하고 자 애쓰는 한 사람의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주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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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내가 너희 열 두명을 직접 뽑았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은 마귀이며 멸망의 아들이다. 그가 나를 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가리옷 사람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큰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요6:70-71)
[꼬랑지] 오늘날도 예수님 이용해 돈 좀 벌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룟 유다과’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모르시는 것 같아도 다 알고 계십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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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 -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것들 ○지난일기 |
□예수님 얼굴
서기 3세기까지 예수를 그리거나 조형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것이 고대교회와 교부들의 입장이었으며, 이 때문에 예수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은 5세기 들어 가능해졌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수님 얼굴은 20세기 미국인 화가 워너 셀만이 그린 ‘예수님 얼굴’인데 전 세계에 5억장 이상 퍼져있고 그 그림 이후의 모든 예수님 얼굴은 워너 셀만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워너가 그린 예수님은 ‘파란눈의 백인’이라는 것!) 미대생인 나의 큰 딸을 두고 오랫동안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 “주님! 좋은이가 당신의 용안을 그리는 화가가 되게 해주세요.” 워너가 서양인 예수의 기준 제시했다면, 좋은이가 동양인 예수 얼굴의 기준을 제시할 만큼 훌륭한 ‘예수님 얼굴’을 그려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좋은이는 지금 계속 해골바가지만 그리고 있다.ㅠㅠ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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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과거의 태만함
우리가 아무리 위대하고 고결한 행동을 해도, 그러한 행동은 과거의 태만함을 보상하지 못하며 오히려 정죄합니다.
ㄴ한번 지나가버린 시간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현재의 삶을 신중하게 살아서 미래에 후회할 일을 만들면 안 됩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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