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56호

201572일에 띄우는 쉰여섯번째 쪽지!    ◁이전l 다음▷ 지난호

히브리어를 배워보세요.jpg

월간 새벽기도 구독하시려면 누르세요

바이블웨이 -구입하시려면 누르세요

목사님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

2015년 감사주보 구입하시려면 누르세요

플러스예화

갓피플-책은 이곳에서

호환성보기를 클릭해주세요.

여러분의 정성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합니다.

매일 바뀌는 기독교 바탕화면

Jesus365 설치하세요(무료)

 

□요구와 요청

‘요청(要請)’은 사전적 의미로 ‘필요한 일이 이루어지도록 요긴하게 부탁함. 또는 그런 부탁’의 뜻합니다. 즉, 필요한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쪽이 몸을 낮추고 부탁을 할 경우에 ‘요청’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요구(要求)’는 사전적 의미로 ‘받아야 할 것을 필요에 의해 달라고 청함. 또는 그 청’을 이른다. 즉, 무엇을 해 달라고 당당하게 말할 권리가 있는 쪽에서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요청’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지만 들어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맘대로 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 요청하고 기다릴 뿐 하나님께 따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신 분이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감히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기대하고 기다릴 뿐입니다.
요구와 요청이라는 단어를 흔히 쓰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요구는 요구를 받은 쪽에서 반드시 응해야 하는 강제성이 있지만, 요청은 ‘부탁’한다는 뜻에 가깝고 요청을 받은 쪽에서 반드시 응해야 하는 강제성이 없습니다.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은 약한 사람에게 ‘요구’를 하고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강제로 빼앗습니다. 그러나 약자들은 강자에게 좀 도와 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강자가 그것을 무시해 버리면 어쩔 수 없이 그냥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지혜로운 옛 조상들은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다’ 라는 속담을 만들어 썼지요. ⓒ최용우  more...

 이메일을 적어주시면 매일아침 따끈한 말씀의 밥상을 차려서 정성껏 보내드려요.

 

클릭하세요. 입력할 수 있는 창이 뜹니다

구독자: 14210명

책을 구입하시려면 클릭하세요.

●김남준1750 <바랄수 없는 날의 믿음/말씀사>중에서 지난글

 □시험 받는 것인가. 당하는 것인가?

시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전재로 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그 무엇을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해 평소와는 다른 어떤 조건이나 상태를 그 대상에게 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험을 해서 인간의 반응을 보기 전까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실 수 없는 분이 아닙니다. 착각하거나 오해하실 가능성도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시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만생  - 마음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오바글바글  지난일기

901.우선순위
많은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행복할 줄 알고 부를 위해 인생 전부를 겁니다. 그러다가 부부관계가 깨지고, 인격이 파탄되고, 양심이 화인 맞고, 자식농사를 망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한 자나 부자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고, 금은보화보다 은총을 택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902.알고 보면 같다
지나가다가 으리으리한 저택을 바라보며 “저기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하지만, 집안에 들어가면 병자가 누워있습니다. 병들어 대 저택에 누워있는 것보다 건강하게 그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이 낫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눈물과 불행이 똑같고 가정문제와 자녀문제와 죽음의 문제도 똑같습니다.

 

●감사일기 -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것들 지난일기

□나무의 크기

아내와 함께 저녁에 초등학교 운동장 뺑뺑이 돌며 운동을 하고 오다가 느티나무 아래 잠깐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 둘이 오더니 느티나무를 서로 안아보며 “우와... 보기보다 다르네. 나무가 엄청 크다. 역시 나무는 재보고 사람은 누워 보아야 그 크기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했지”
우리 동네 느티나무는 약 150년 수령에 동네 할아버지들의 집합소이다. 노인정을 할머니들에게 빼앗긴 할아버지들이 하루 종일 나무 밑에 앉아 계신다. 가끔 동네 사람들이나 교회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을 것을 사다 드리면 다들 맛있게 드신다.
그냥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느티나무를 올려다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자리에 변함없이 오랫동안 서있는 나무 같은 존재’가 된다면 좋겠다. 내가 죽어서 관 속에 누워 보아야 비로소 나의 크기가 어느 정도 였는지 알게 되겠지? ⓒ최용우

 

 

 

50.주님을 위해 포기한 것

주님을 위해 포기한 것은 결코 잃은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그것은 여러 배가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ㄴ밭에 씨를 뿌리는 것은 그 씨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씨를 포기하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지만, 씨를 포기하면 그것은 흉년이면 30배, 평타는 60배, 풍년이면 100배의 결실을 가져다줍니다.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