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엇이든 › ▷◁ *solomoon의 1428번째이야기

손로문 | 2005.02.19 23:54:4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더니

금세 비가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 보니 저쪽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목처럼 여윈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웃고 계신 분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말없이 나에게 우산을 하나 건네주고는

당신 먼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셨다.

얼떨결에 우산을 받아 든 나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다음엔 할말이 없어 잠자코 뒤따라갔다.

그 뒤 비가 올 때마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우산을 건네 주셨다.

그러자 나는 아버지의 마중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그날도 나는 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와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중 나오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대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갔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집에 들어선 나는 잔뜩 부어오른 얼굴로 아버지를 찾았다.

그런데 잠시 뒤 나는 가슴이 뜨끔해졌다.

아버지가 갈고리 같은 손에 우산을 꼭 쥐신 채로 누워 계셨던 것이다.

"그렇게도 말렸는데도 너 비 맞으면 안 된다고 우산 들고 나가다가

그만 몇 발자국 못 가 쓰러지셨단다."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주름살에 허연 머리카락을 하고

맥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워졌다.

마중 나온 아버지께 힘드실 텐데 그럴 필요없으시다고 말하기는 커녕

아주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나는 그날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뒤늦게 깨달으며 한참을 울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때가 떠올라 가슴이 아파온다






친정에 다녀온 동생이 보따리를 내려놓고 갔다.

챙겨보낸 프라스틱 김치통이 그대로 다시왔다.

안에는 다시 꽉꽉채운 갖가지 김치와 양념이 들어있었고

보따리 귀퉁이엔 하얀 가제손수건에 싼 작은 꾸러미가 있었다.

손수건에 싸여서 엄마가 보내온건 곶감다섯개.

곶감을 좋아하는 큰딸 때문에 명절때건 제사가 있건

다른사람은 손도 못대게 하신다.

엊그제 제사후 남은걸 보낸걸로 생각했었다.

엄마는 농사일도 지으시면서 가까운곳에 직장에도 다니신다.

근사하고 좋은 일터는 아니지만 한푼이라도 벌어보시겠다고 욕심부리신다.

식권한장이 이천원씩이나 한다고 그거 아까워 도시락 꼭꼭 챙겨가시고

큰딸이 사준 보온도시락이 따근해서 좋다고

겨우내 일터에서 자랑을 했노라 하셨다.

곶감 다섯 개는, 그 일터에서 누군가 심심풀이로 드시라고 가져온거란다.

휴식시간에 나눠준 곶감다섯개를..

남들이 오물오물 맛나게 먹고있을 때 우리엄만..

엄만 주머니속에 살그마니 넣으셨단다..큰딸이 좋아하는 곶감이라서..

그곶감을 다른형제들이 볼까 무서워

손수건에 싸서 김치보따리에 넣어주신거다.

곶감은 찌그러지고 뭉개졌지만 다른어떤 귀한것보다 값져보였다.

목까지 왈칵 넘어오는 울음을 삼키느라 곶감을 먹을수가 없다.

프라스틱통 가득 담겨있는 김치도 먹을수가 없다.

작은소주병에 담겨있는 참기름도 먹을수가 없다..

엄마의 땀방울을 고스란히 받아놓은것만 같아서..

시골에서 가져오는 양념들이며 푸성귀를

당연한 듯 얄밉게도 받아먹었었는데...

거기다 손수건에 싸인 곶감까지 자꾸만 날 울린다.

바보같은 엄마.

우리엄만 정말 바보다.

나를 자꾸만 울게하는 바보다.

나에겐 그런 바보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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