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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디 가르침, 다다다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116 추천 수 0 2012.01.08 23: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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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6:30-44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세 마디 가르침, 다다다
막6:30-44

지난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후배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에서 ‘전교인 여름 수련회’를 하는데 첫 날 와서 특강을 두서너 시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00년이 되어가는 교회의 담임자가 된 내력과,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숙이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대답을 하고 다녀왔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차를 한 잔 나누는 시간에 후배는 지나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목사님이 춘천 근교의 아주 작은 예배당에서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했을 때 내가 그에게 쌀도 나눠주고 가끔씩 명절에 돼지고기도 싸들고 가고 밥도 잘 사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주 오랫동안 가슴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었답니다. 이제나 저제나 자기의 모습을 한 번 보여 드려야 할 텐데 하면서 벼르다가 오시라고 했다는 겁니다. 물론 나는 내가 그에게 그런 일을 했는지 기억에 없습니다만, 그 날 나는 그때 했음직한 내 나눔의 행위에 수 십 배나 되는 강사료를 받았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나눔으로 인해 결국 나는 더 큰 기쁨과 소득이 생긴 셈입니다.

우파니샤드라는 오래된 책이 있습니다. 거기 [프라자파티]라는 신령한 존재가 나옵니다. 그는 이 땅의 인간들에게 세 마디를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프라자파티는 사람의 말로 하지 않고 하늘의 말로 했는데 그것은 ‘벼락’이라는 것입니다. 번개와 천둥칠 때 떨어지는 큰 불덩어리 말입니다. 우리는 그 벼락치는 소리를 어떻게 표현하나요? ‘딱딱딱’하나요? 그러나 인도 사람들은 ‘다다다’그렇게 표현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프라자파티라는 하늘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게 바로 ‘다다다’입니다. 우파니샤드의 해석에 따르면 ‘다다다’라는 말은 ‘다타, 다미아타, 다이디암’을 줄인 말이랍니다. 그러면 그건 우리말로 어떻게 되느냐? 이 세마디 말은 “주어라, 너 자신을 다스려라, 자비로워라.” 라는 겁니다.  
        
지난 번 미국의 대통령은 클린턴 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책을 한 권 썼는데 제목이 Giving, 즉 [주기]입니다. 정치가는 늘 Getting(챙기기)에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다고 술회합니다. 표 챙기고, 후원금 챙기고, 지지자 챙기기에 바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을 그만둔 이후에 어떻게 살까 깊이 기도하다가 결론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 더 따뜻한 곳, 사람 살기에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면 사회 자원을 모아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주는 일을 해보자, 이것이 대통령을 한 클린턴의 선택이었답니다. 그의 책 [주기]에는 이런 구상으로 퇴임 이후 그가 해 온 일들, 앞으로 할 일들, 도와주고 싶은 일들, 그리고 도움주기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클린턴은 말합니다. “돈과 시간과 아이디어는 남을 돕는 세 가지의 형태다.”
  
안철수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지요? 컴퓨터를 쓸 줄 아는 이들에겐 아주 낯익은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보급되고 난 후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을 만들어서 유명해진 의사입니다. 그는 의과대학의 교수이기도 했지만 의사 일을 그만두고 컴퓨터백신 회사를 차려서 성공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에 가서 경제학을 공부하여 생애 5번 째 학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 이번에는 카이스트의 석좌교수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지식인에다가 부자인데도 청교도처럼 살고 있습니다. 왜 그처럼 지독하게 공부를 하느냐고 하자 “남을 주기 위해 공부한다.”고 해서 더욱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도 그에겐 수익이 아니라 ‘워킹모델’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오늘 주제에 맞게 해석을 하자면 ‘잘 사는 모범’이라 할 수 있겠죠.

존 번연의 천로역정 속에 이런 이야기를 여러분은 읽으셨습니다. ‘정직’이란 이름의 순례자가 여관 주인 가이오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더 많이 버릴수록 더 가지게 되는 건 누구일까요?” 가이오는 대답합니다.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그는 준만큼, 아니 그 열배는 더 갖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이게 사실인지 조사를 했습니다. 가족 수와 인종. 교육수준. 종교 등 조건이 모두 같은 두 가정의 수입을 비교했더니 연간 100달러를 더 기부한 가정이 375달러를 더 벌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 나누는 게 아니라 나누다보니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이오의 역설’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을 받으면서 제 자신의 나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나누는 방식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잘 나누고 있는지, 나누는 그 자체가 내게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는지 등등이었습니다. 제 통장에서 매달 빠져나가는 것들은 여러 종류입니다. 통신비, 금융비 같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아주 적습니다. 그리고 여섯 일곱 개의 단체나 시설로 나가는 고정적인 기부금이 대부분 저의 지출 품목입니다. 이것들은 통장에서 자동적으로 결제되는 것들이고, 예배때 드리는 헌금과 이런저런 모임과 또 모임의 식사비는 통장과 무관하게 지출되는 것들입니다. 영혼의 약국에도 헌금 작정을 했지만 금년엔 한 번도 내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나날들은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들어오는 수입이 없는데도 나눠야 할 것들은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나누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이런 삶은 기적 중에 하나이고, 마음껏 나누어 보고 싶은 제마음에는 늘 모자라서 안타깝지만 그나마 저의 기본적인 삶이 유지되는 것은 나누며 살려고 하는것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베풀어야 오래 산다.” 이것은 미국 미시간 대학 사회학 연구소, 브라운 박사의 연구결과입니다.  423쌍(800여명)의 노인부부가 노년기의 삶을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조사하여 보니, 남한테 베푸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노인들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노인들이 베풀며 사는 노인보다 일찍 숨질 가능성이 두 배나 높다는 뜻입니다(한겨레, 11월 16일 9쪽).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성구도 있지만, 또 삶의 질을 보지 않고 무턱대고 장수가 복이라고만 할 수 없지만, 여하간 나누는 삶이 우리의 수명연장에도 유익하다는 연구결과는 새삼 ’나눔‘의 삶이 바람직하고 좋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거죠.

예수의 많은 기적 중에서 4 복음서에 다 기록된 기적은 떡(보리)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 천명을 배부르게 먹인 기적 하나뿐입니다. 4 복음서에 다 기록되었다는 것이 우연일 수 있고 또 그만큼 어느 기적보다 인상 깊은 기적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5병2어“기적을 5000명 급식(給食)기적이라고 하는데, 사실적으로 기적이 일어났다는 해석 외에 달리 해석할 여지를 많이 가진 본문이기도 합니다. 이 급식기적은 풍랑을 잠잠하게 한 기적(마 8:23-27)과 함께 자연기적에 속합니다. 치병(治病) 기적, 귀신축출 기적 및 자연기적 등은 오직 예수만이 일으킨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당시 다른 사람들도 기적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막 2: 22-34의 바알제불 논쟁 참조). 따라서 기적행위로써 예수의 정체를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 당시의 사람들은 당시의 세계관에 의해서 말한 것을 현대인이 자의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위에서 5병 2어 기적의 해석이 여럿이라고 말했는데 그 중에서 3개를 알아보겠어요. 하나는 이 기적이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인 기적과 모양이 비슷하다는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이른바 모세 유형론적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은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회중이 엘림과 시내산 사이의 광야에서 그들의 지도자 아론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애굽의 고기 가마 곁이 그리워 토해낸 원망입니다. 그 때 야훼 하느님은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릴 것을 말씀하시고 “저녁에는 고기(메추라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만나)으로 배불리”(16: 2-12) 먹이십니다. 5병2어 기적본문과 출애굽기(16: 1-)에 유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즉 광야, 고기와 떡, 불평(이스라엘백성과 제자들), 배불리 먹는 것 등, 유사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5병2어 기적이 모세를 통해서 하느님이 보여주신 기적과 같은 유형으로 본다는 것이죠. 즉 본문의 5병이어 기적은 구약에서 모세가 백성들을 메추라기와 떡으로 배부르게 먹이었듯이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모세처럼 5병2어로 무리를 배불리 먹였다는 것을 말한다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모세처럼 아니 그보다 더 크신 분으로서 예수를 말하려는 것이 5 천명 급식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5병2어 기적을 성례전적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초대교회의 성만찬예식의 뿌리는 예수의 최후만찬에 있습니다. 예수는 최후만찬에서 “그들이 식사하는 중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막 14: 22) 하시듯이 초대교회는 성만찬예식에서 그리고 본문 기적에는 같은 말들이 나타납니다. 즉 (떡)을 드시고,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여기 밑줄 친 4 낱말은 모두 동사들로서 초대교회의 성만찬 전승에서 사용된 말들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5병이어 기적 이야기는 초대교회의 성만찬 전승에서 기적이야기로 발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초대 교회에서 실행되던 성만찬 예식을 오병이어 기적으로서 ‘역사화’했다는 해석인 것이죠. 이런 해석은 결국 본문의 초점은 기적에 있기보다는 떡을 떼며 거행된 성만찬 예식에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만찬 예식의 강조가 보다 확실한 것은 공관서보다 요한복음입니다,

셋째는 나눔의 기적입니다. 폭풍진압이라는 자연기적은 흉흉한 바다, 폭풍의 바다를 향해서 예수가 ‘잠잠 하라’ ‘고요 하라’고 명령을 하자 바다가 조용해진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떡과 물고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나는 내용이 없습니다. 복음서의 많은 기적이야기 양식(Form)에 따르면, 기적은 군중들의 ‘놀람’과 ‘찬양’으로 끝나는데 우리의 본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병이어 기적은 전형적인 기적이야기 양식을 갖추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본문은 기적이야기로 읽기보다 소유의 분배 또는 나눔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광야에 운집한 군중들의 먹거리가 문제가 됩니다. 요한복음 본문에서는 예수가 먼저 이 문제를 제기합니다. 예수의 질의를 받은 필립의 계산에 의하면 “이들 각 사람에게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200 데나리온어치의 떡을 가지고도 오히려 부족하겠습니다”(요 6: 7)고 반응하고. 안드레는 한 아이가 보리떡(가장 가난한 자의 먹거리)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6: 9)고 대답합니다. 필립과 안드레의 계산은 매우 이치에 맞습니다. 합리적입니다. 더 읽어 가면 공관서의 본문에서는 군중의 먹거리를 먼저 걱정하는 측은 요한 복음과 달리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제 각자 식사를 해결하게 하겠다는데, 예수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자 제자들은 반문합니다. “우리가 가서 떡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랍니까?”(막 6: 37). 불평(불경)스러운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은 예수는 그 현장에 떡이 얼마나 있는가? 고 묻고 제자들은 5병2어가 있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성만찬 예식을 거행하듯 떡을 들고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요한복음에서는 사람들에게 직접) 주시며, 나누어 주(分配)라고 명하십니다. 결과는 그들이 만족하게 먹고도 남은 것을 모으니 12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가진 것을 나누니 모두가 만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유의 독점이 아니라 분배를 말한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소유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 5병2어의 기적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굳이 기적이라 할 것이 있다면, 도시락(모든 정통 유대인은 항상 정결 의식에 벗어나지 않게 깨끗한 음식을 먹으려고 각자의 음식을 자기의 바스켓에 지참하였다고 한다. W. Barclay, The Gospel of Mark, p. 159)을 지참한 사람들이 자기들만 음식을 먹지 않고 먹거리 없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은 그것이라 할 것입니다. 소유의 분배 그것입니다.

우리의 본문을 기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소유의 분배를 가르치는 교훈으로 해석하는 것은 믿음이 깊지 않거나 경건하지 않다고 주장할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당신은 겨자씨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옳길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문자대로 믿는다는 말인가요? 교리를 믿는 것이나 문자대로 믿는 것이 신앙의 깊이를 재는 규준은 아닙니다. 본문에는 떡과 물고기가 5 천명이 먹고 남을 만큼의 양으로 부풀어 나는 과정이나 내용이 전무하죠. 다만 축사하시고 떼고 나누어주는 것( 예수가 제자에게, 제자들이 사람들에게)만이 있지 않습니까?

모든 소유는 하나님이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따라 나누고 또 분배하는 것을 기적인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기적을 우리가 바라고 만들어야 합니다. 이 지구촌의 굶주림과 질병으로 인한 끝없는 비극은 바로 이 기적, 나눔의 기적이 없어서입니다. 지금 경제가 어려워서 모든 것을 줄이려고 합니다. 우리 영혼의 약국도 후원금이 바닥 나 있습니다. 사렙다 과부가 어린 아들과 함께 먹고 죽을 마지막 음식 두어줌 까지 선지자 앞에 기쁘게 내 놓았을 때 인간의 헤아림으로는 얻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모두가 어렵다는 이럴 때일수록 나누고 베풀어서 ‘나눔의 기적’을 일으켜야 합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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