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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4:1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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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윤은철 목사 |
참고 : | 갈릴리교회 |
100배의 결실을 맺으라.
막 4:14-20
봄이 옛날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벌써 곳곳에 꽃들이 한꺼번에 만개를 하고 있습니다. 봄과 더불어 농부에게는 씨를 뿌리는 시기가 다가온 것입니다.
성경에서 100배까지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인생에 있어서 로또에 당첨된다는 의미입니다. 대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땅에서 100배의 개념도 놀라운 것이지만 이것이 천국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열매의 차이는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땅의 개념으로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사실은 하늘의 개념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옥토에서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지극히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인간들에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축복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을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비결을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천국에서 뿌리는 것은 말씀뿐입니다.
14절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마 4: 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뿌리는 자는 누구이실까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씨를 뿌리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씨를 뿌리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병이 낫기를 원하고 우리들의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 해결되기 전에 먼저 말씀을 주시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 때 수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을 만났지만 말씀이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한꺼번에 찾아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무 바쁘셔서 개인적으로 말씀을 전해 주실 수 없는 경우도 더러 있었을 것입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했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을까 하여 예수님에 옷자락에 손을 대니 병이 나았습니다. 이 여인은 전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했지만 병이 나았습니다.
여기에서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이천 년 전의 예수님은 그저 단순히 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요 1: 14) 다시 말씀 드리면 그 분 자체가 말씀이시기 때문에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어도 그 분을 본 사람들은 이미 말씀을 접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예수님 자신이 말씀으로 이 땅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천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신의 예수님을 통해 말씀자체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아드님이 사람의 모양인 예수님으로 이 땅에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보이는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난 것은 인간의 눈에 기이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것은 말씀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뿌리러 이 땅에 오셔서 한 알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씨앗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땅이 아무리 좋아도 좋은 씨앗이 없으면 결코 그와 같은 열매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한 알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는데 열매는 무엇입니까? 열매는 다름 아닌 땅에 떨어져 죽은 바로 그 한 알인 것입니다. 쌀의 종자를 심어 쌀을 거두고, 보리 종자를 심어 보리를 거두고, 밀의 종자를 거두어 밀을 거두는 것입니다. 종자가 된 씨앗을 통해서 똑 같은 종류의 맛과 향을 가진 그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그 분께서 역사적으로 이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그 분을 통해 많은 밀알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열매는 인간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 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열매라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모습의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예수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은 형태의 삶이 될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인격을 가지셨지만 그 분은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신 것이 아니십니다. 그 분이 나타내신 것은 바로 성령님의 인격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스타일이 있으셨지만 한 번도 그것을 드러내시며 사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선물하신 삶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령님을 모시면 비록 죄인이지만 예수님과 같이 성령님을 모신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실 때 예수님의 인격으로 사신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격으로 사신 것처럼 우리들도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들이 죄인이지만 죄인의 모습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격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성령님을 모신 것이나 죄인인 우리가 성령님을 모신 것이나 외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예수님의 모습과 죄인인 우리의 모습 속에서 나타나는 것은 동일하게 성령님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되셔서 뿌려주신 한 알의 밀알의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말씀을 뿌리시는 데 영의 언어로 말씀을 하시는 것이 한계가 있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기 이전에는 아벨이나 에녹, 노아와 같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이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전하셨습니다. 그것도 왕이나 선지나의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어느 곳에 있는 인간이든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직접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로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하시면서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셨을 때 첫 번째 시험이 무엇입니까? 돌덩이를 떡 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자신의 신성을 움직여서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 4)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으로 움직이는 나라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좋지 않은 땅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15절부터 19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마 4: 16-19)
씨앗이 뿌려진 곳이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 나무 밑입니다. 이 세 종류의 마음 밭은 각기 다른 육신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길가라는 것은 아예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돌밭은 믿음의 초보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요 가시떨기 밭은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믿음이 연약한 사람입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가 열매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제대로 가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믿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 세 사람들은 모두가 말씀을 붙잡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붙잡는 대신 길가의 사람은 마귀를 붙잡았습니다. 돌밭의 사람은 환란이 붙잡았습니다. 가시떨기의 사람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욕심을 붙잡았습니다. 처음에는 마귀 자신이 말씀을 빼앗아가더니 신앙생활을 좀 더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을 통해 위협하거나 유혹해서 말씀을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우리들에게 빼앗아가려는 것은 건강이나 물질이나 재산이나 사랑하는 가족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믿고 있는 말씀을 빼앗아 가려는 것입니다. 초신자나 건성으로 믿는 사람들은 말씀이 그렇게 귀한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는 세상에 있는 것들을 통해서 시험을 하거나 유혹을 해서 말씀 믿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잘 살고 행복해 보여도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정말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붙잡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믿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애를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초보요 또한 마지막인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의인이 누구입니까? 성경에 나와 있는 의인은 인간적으로 선하거나 착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바로 의인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행위와 노력으로 의인이 되려고 하는 방법을 버리고 오직 말씀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의인이 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믿음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도 말씀을 붙들고 사는 믿음으로 끝나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에 실패한 사람들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다양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믿지 못하고 말씀 대신에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의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옥토만이 놀라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0절의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마 4: 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맺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듣고(hear) 받아들였다(accept)”라는 것은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이 단순한 것이 바로 백배까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각이나 의식을 모두 지배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식 속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빼낸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마귀, 환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그리고 욕심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옥토가 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자신의 마음의 토양에서 빼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말씀을 심는 것입니다. 말씀을 심는 것이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미국에서 집을 새로 사서 이사를 왔는데 잔디에 너무나 문제가 많았습니다. 잔디는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잡초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분이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겠다는 소망이 있는 분이라 이 망가진 잔디를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잔디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아침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운동 삼아 잡초를 하루에 50개씩을 뽑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매일 실천한 결과 2년 뒤에 아름다운 잔디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을 웹사이트에 사진과 함께 올려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 분이 한 일이라고는 잔디에 그렇게 많은 잡초를 보는 족족 하루에 시간이 나는 대로 뽑았더니 시간이 흘러 잔디의 모습이 달라지더니 이년 뒤에는 아주 푸른 잔디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본질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전에는 우리들이 마음의 잔디에 잡초로 가득 차서 어디서부터 손을 댈 수가 없는 그런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의 토양이 바뀌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땅 자체가 옥토로 바뀌게 되어서 잡초가 자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믿음으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앙의 잡초를 뽑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들이 불신앙의 잡초들을 뽑아낼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불신앙 제거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답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말씀이 자신의 삶 속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라는 확신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 밭에 아름다운 황금색 잔디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음 밭에 아름다운 잔디로 심어 놓으셔서 그 모습이 지금 실제의 모습으로 된 것처럼 믿음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마귀는 성도의 지금 잡초로 가득 찬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이 아니라고 우기게 될 것입니다. 마귀는 믿는 자들이 지금까지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절대로 잡초로 우거진 마음의 정원을 깨끗하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이 믿는 자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모습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이미 변화시켜 주신 모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자식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100세의 자식을 낳아 마침내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입니다. 100세가 되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니 100세나 되어 75세의 젊었을 때의 아브람과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브라함의 겉모습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하나님 앞에 믿음의 모습으로 서 있는 100세의 늙은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보시는 것입니다.
현재 지금의 모습, 여러분 마음 밭의 잡초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의 실상인 여러분 마음 밭에 아름답고 푸르른 잔디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이 행위가 단순한 것 같지만 100배까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천부께서 심으신 아름다운 잔디를 생각하면 늘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100배의 열매를 맺는 비결이 되는 것임을 깨달으시고 항상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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