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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 살해음모

마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699 추천 수 0 2012.05.05 23: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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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5:1-15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584084 

jys.jpg 정용섭 목사

 

메시야 살해음모

마가복음 15:1-15,

종려(사순절 여섯째) 주일, 2012년 4월1일

 

1975년 4월9일 반공법 위반으로 도예종을 비롯한 8명이 사형 당했습니다. 소위 인혁당 사건입니다. 대법원에서 사형판결이 난지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합니다. 제네바 국제법학자학회는 이 날을 사법역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했습니다. 당시는 유신독재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2007년 1월23일에 서울중앙지법은 유가족이 낸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사형당했던 이들을 무죄로 선고했습니다. 당시 사형을 구형한 검사와 선고한 판사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을까요? 그리고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이건 인격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도 나름의 법 정신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법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킨 이들도 법을 근거로 그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막 14:53절 이하에 따르면 체포당한 예수님은 당일 밤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막 14:55) 많은 거짓 증언들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다시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실제 성전을 허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 말한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에게 이런 고발에 대답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대제사장은 직접 심문합니다.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막 14:61) 하나님의 아들이냐, 메시아냐, 하는 질문입니다. 대답에 따라서 예수님의 유무죄가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로 대답하십니다. 하나는 “내가 그니라.”입니다. 이것만 보면 예수님이 자신을 그리스도로 인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복음서에 그렇게 받아들일만한 표현이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이 자신을 그리스도로 내세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 문장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초기 기독교가 고백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자, 즉 ‘사람의 아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들은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이것은 산헤드린 법정에서 일어나는 의례적인 행동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정죄했습니다. 신성모독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돌로 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 총독인 빌라도에게 신병을 넘겨야만 했습니다.


빌라도 재판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산헤드린이 빌라도에게 그런 죄목으로 고발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네 말이 옳도다.” 루터는 “Du sagst es.”(두 작스트 에스)라고 번역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또는 ‘그것은 당신의 말이오.’라는 뜻입니다.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의 이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어서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했습니다. 이러저런 소문을 다 끌어들였겠지요. 예수님이 사회를 소란하게 만드는 선동가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의 고발에 대해서 자신을 방어해보시오.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이런 사태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겠지요. 산헤드린의 고발이 아무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형 선고를 내릴만한 사안도 아니었습니다. 빌라도의 입장이 곤란했습니다.

    

마침 예루살렘 민중들이 유월절 특사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특별한 날에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민중들은 바라바가 사면되기를 원했습니다. 빌라도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예수 문제를 해결해볼 생각으로 민중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의 시기심으로 예수가 고발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중들은 대제사장들의 사주를 받아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요구합니다. 빌라도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예수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민중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총독이지만 민중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그 상황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막 15:15) 그 뒤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로마법에 따라서 기계적으로 진행됩니다. 이것이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에 일어난 재판의 전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빌라도는 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것일까요?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유대교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의 고발과 민중들의 요구를 물리칠 수 없었다는 게 대답입니다. 그렇게만 보면 성서텍스트를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겁니다. 당시의 총독은 로마의 지방장관으로서 로마의 이념에 철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산헤드린과 예루살렘 민중의 압박이 아무리 강했다고 해도 그것이 로마 이념을, 즉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를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로마 체제를 위태롭게 할 인물로 판단했다는 게 가장 정확한 대답입니다. 기독교와 로마체제가 갈등을 겪었다는 의미입니다. 가벼운 갈등이 아니라 정체성 자체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대로 당시 유럽과 근동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던 체제가 바로 로마였습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처형의 책임을 다루는 대목에서 산헤드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오직 본디오 빌라도만 거론합니다. 초기 기독교가 누구와 대립하고 있었는지를 거기서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로 대표되는 로마, 로마법, 로마 체제는 신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 황제에게만 ‘퀴리오스’, 즉 ‘주님’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그 칭호를 붙였습니다. 로마 황제와 예수 그리스도는 경쟁관계입니다. 마치 구약에서 가나안 바알과 하나님과 경쟁관계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걸 간파한 빌라도는 산헤드린과 예루살렘 민중의 요구를 핑계 삼아 나사렛 예수에게 당시 로마인이 아닌 사람으로 반역을 일으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십자가형을 선고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산헤드린으로 대표되는 유대교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책임이 하나도 없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초기 기독교와 끊임없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예언자 중의 한 사람으로만 인정합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산헤드린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했겠지요. 산헤드린 대표를 빌라도에게 보내서 선처를 바란다는 뜻을 전할 수도 있고, 앞에서 거론한 유월절 특사로 예수님을 선택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복음서의 설명에 따르면 산헤드린은 오히려 반대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산헤드린이 로마 총독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예수님을 지켜낼 생각이 강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빌라도는 메시아 살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면 산헤드린으로 대표되는 유대교는 최소한 방조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알게 모르게 흔히 일어납니다.


기독교와 로마

    

빌라도는 어떤 근거로 예수님이 로마 체제를 위태롭게 할 인물로 본 것일까요?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로마 정권과 투쟁한 것은 아닙니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 적이 있습니다. ‘케사르의 것은 케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예수님을 무력적으로라도 로마를 몰아내고 유대의 독립을 이루려는 혁명 지도자로 보면 곤란합니다. 무정부주의자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로마 정치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 나라만이 절대적인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선포한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초기 기독교는 바로 그 사실에 자신들의 미래를 걸었습니다. 빌라도는 바로 그 하나님 나라가 로마 체제를 위태롭게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가 정확하게 판단한 것일까요? 아니면 세기의 오판일까요?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신자들이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쯤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 그의 치유와 축귀와 사죄선포도 모두 임박한 하나님 나라로부터만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생명의 통치입니다. 살리는 능력입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 앞에서는 인간의 모든 체제와 질서는 상대화됩니다. 안식일이라는 유대법도 상대화됩니다.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고 예수님이 질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빌라도의 로마 이념은 자기들의 체제를 절대화합니다. 거기에 도전하는 세력을 향해서는 가차 없이 응징을 가했습니다. 이런 로마 체제 아래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불가능했습니다. 거꾸로 하나님 나라 아래서 로마 체제는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우리의 삶과 거리가 멀게 들리시나요? 오늘의 빌라도가 누구인지를 돌아보십시오. 오늘의 로마 체제가 무엇인지 보십시오. 오늘 우리의 삶을 가장 강력한 힘으로 억압하는 대상이 누구, 또는 무엇인지 보십시오. 자기를 절대화하는 이념이 무엇이며, 그것을 강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십시오. 각각 경우가 다를 겁니다. 자본주의가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요즘은 신자유주의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돈의 유혹, 또는 폭력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뚫고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입니다. 이런 체제 아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체제 아래서는 교회의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여전히 잘 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이 작동된다는, 즉 로마 체제에 순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2천 년 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법정신에 따라서 메시야 살해의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빌라도만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를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법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산헤드린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오해해서 결국 십자가 처형의 방조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방조자들로 인해서도 방해받습니다. 예루살렘 민중들은 아무런 판단 능력이 없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세뇌당하거나 사주당합니다. 이런 일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결론이 무엇이냐고요? 결론은 따로 없습니다. 당시 상황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답은 여러분들이 찾아야 합니다. 제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소극적으로는, 메시아 살해음모에 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죄한 자의 죽음에 연루되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메시아 살해음모를 분쇄하는 것입니다. 각자 처해진 자리에서 생명을 죽이는 일을 거절하고, 살리는 일에 참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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