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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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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0-09-12 http://www.yullin.org |
예수님의 기도생활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I. 본문해설
본문은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한 토막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새벽 미명에 기도하기 위해 일어나셨고, 한적한 곳에서 홀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셨다. 아마도 이 기록은 후에 예수님을 찾아 나선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에게 전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신 앞부분에 보면 예수님이 하신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돌보시며, 많은 논쟁과 시름 속에서 그들과 함께 싸우시고 하나님의 진리를 전해주셨다. 그런가하면 베드로의 집에 찾아가셔서 열병을 앓고 있는 그의 장모를 고치시기도 했다. 날이 이미 저문 때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계신 곳을 알았기에 온갖 병든 사람들을 데리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많은 무리를 이루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고쳐주셨다. 분명 육체의 병만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어 그들로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사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깨우쳐 주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지난 하루 동안에 일어난 많은 일들을 뒤로 하고 당신 자신의 기도생활이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계시다.
II. 예수님이 기도하셔야 했던 이유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셨다. 그렇기에 예수님 자신에게는 기도가 필요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 신성을 사람의 인성 아래 감추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 복종하셨다. 뿐만 아니라 짧은 생애를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에 우리에게 우리와 꼭 같은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알고, 섬겨야 할지를 모본으로 보여주셨다.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영광스런 신성을 인성 아래 감추신 채 사셨기에 예수님에게도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있었고, 당연히 기도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 속에서 박해를 이기며 하나님의 참 사랑을 전하셨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주린 자를 먹이시기 위하여 매일 매일 하늘로부터 임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의 은혜를 힘입어야 했던 것이다.
III. 예수님의 기도생활
A. 새벽에 헌신하심
그러한 기도생활 속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새벽에 헌신하셨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말한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아직 어두움이 사라지지 않고 아침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당신의 마음을 쏟으며 간절히 기도하심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 전날 밤에는 늦게까지 어쩌면 이른 새벽까지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그들을 돌보셔야 했던 피곤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새벽 만물이 깨지 않고 어둠 속에 있을 때에 홀로 적한 곳으로 나아가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어나기 힘든 새벽 미명의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선택하셨을까? 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예수님이 늘 기도하셨지만, 낮에는 간단한 기도였고, 장시간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붓는 기도의 시간은 이른 새벽 미명과 깊은 밤중이었다. 우리의 육체의 성질로 볼 때에 가장 헌신하기 어려운 시간을 선택하신 이유는 새벽과 밤 시간에 어떤 신묘한 효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낮에 기도하면 영혼을 섬기는 일에 방해를 받고, 그 손해는 사랑하는 양떼들이 고스란히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새벽 미명 그리고 깊은 밤, 자기의 양떼들이 당신의 섬김을 아직 받지 않을 시간에 기도하심으로 낮 시간을 영혼들을 돌보는 일에 온전히 헌신하셨다.
성경을 놓고 볼 때 예수님의 생애는 풍광이 수려한 자연 속에서 조용히 수도나 하던 수도자들과 같은 생애가 아니었다. 도시와 초원을 두루 다니시면서 자신의 마음을 쏟아 영혼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신 생애였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주린 자를 먹이시며, 상처받은 자를 싸매시면서 일생을 사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도 잠들고 싶어 하신 새벽 미명을 기도의 시간으로 택하셨고 하루의 피곤을 이기기 위해 휴식을 취하셔야할 깊은 밤을 하나님 앞에 통곡으로 수놓으시며 기도의 생애를 사셨던 것이다.
우리의 몸은 한번 쓰고 버릴 일회용품이 아니기에 오래도록 주님을 섬기면서 살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한편으로 살아있는 날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모두 쏟아 부어 섬기신 것처럼 옥합을 깨뜨리듯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여야 한다. 먹고 싶을 때 모두 먹고, 자고 싶을 때 모두 자고, 쉬고 싶을 때 모두 쉬면서 어떻게 주님을 섬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두 사이에 끼여 있다. 얼마만큼이 주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우리의 육체를 잘 보존하여 주님을 오래도록 잘 섬길 수 있게 스스로 보살피는 것인지, 얼마만큼이 자기의 육체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욕심에 빠져 안일한 것인지 우리는 뚜렷이 선을 그을 수가 없고 이러한 갈등은 주께서 우리의 인생을 마감하게 하시는 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실 동안에는 당신 자신을 돌보실 겨를 없이 하나님과 이 땅에 이루어져야할 아버지의 나라와 사랑하는 영혼들과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쏟아부어주신 생애를 사셨다는 것이다. 그 전날 자신의 체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 모든 일을 감당하시고, 새벽 미명의 한 적한 곳에 나아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기도생활을 보면서 우리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닌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보다 더 어렵고 고단하실 때에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힘들고 고단하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은 더 많이 힘드셨는데도 기도하셨다고 우리 자신을 타이르자.
B. 한적한 곳을 찾으심
또 하나, 우리들이 발견할 수 있는 예수님의 기도생활은 장소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적한 곳을 찾으신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지 정처 없이 다니셨다. 주님의 거처는 일정하지 않았고 식사 장소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복음서 속에서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장소가 다양하게 제시된다. 산, 한적한 곳, 광야에서, 감람산에서, 심지어 강에서 기도하셨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예수님의 기도 장소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가 얼마나 분주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셨던 생애였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당신이 얼마만큼 이 세상에서 섬기다가 언제 주님이 자기를 부르실지 아셨다. 예수님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3년이었고, 그 시간동안 예수님께서는 후회 없이 당신 자신을 다 쏟아 부으시며 연약한 자를 고치시고, 병들고 주린 자들을 치료하고 먹이시며,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진리의 빛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
예수님은 숲속에나 경치 좋은 산 속에서 혼자 수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대신 영혼들과 함께 계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래서 마가복음에는 제자들을 선택하신 이유가 바로 예수님이 그들로 당신 자신과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하여 선택하셨다고 기록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온 마음을 다하여 섬기셨고, 그래서 불꽃같은 생애를 사셨다.
그러나 그분도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적합한 장소에서 아버지께 간절히 당신의 마음을 쏟아놓는 기도의 시간은 방해받지 않도록 유지하셨다. 그 달콤한 시간에 당신 자신을 쏟아 붓는 아름다운 헌신의 삶을 사시면서 하루 동안의 고난과 시련을 이기셨고,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야 할 강한 힘을 회복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한적한 곳을 선택하신 이유였다.
IV. 결론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는 많은 짐들, 이것을 짊어지고 고생하고 고민하고 근심하며 걱정하는 대신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부었더라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을까? 염려와 근심은 우리의 마음과 육체를 썩이고 하나님 앞에 상 받을 것이 없이 우리의 영혼의 아름다움을 파괴하지만 마음을 쏟아 붓는 기도의 고뇌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상 받을 만한 헌신이요,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하늘의 능력을 이 땅 아래로 불러 내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죄 없으신 분이 당신 안에 있는 결함 때문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영혼들과 당신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없는 불쌍한 인간의 영혼을 위해 자신의 진액을 짜내 기도하셨다.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온갖 연약함에 둘러싸여서 고통을 받으시면 서도 한적한 곳을 찾아 당신의 마음을 쏟아 바치던 헌신의 삶을 사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게으름이 우리에게 엄습할 때마다 주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우리의 육체를 꾸짖어야 한다. 안일한 마음이 될 때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기억하자.
한 번의 마음을 쏟아 붓는 간절한 기도는 열 번의 마음을 썩이는 근심보다 낫고, 한번 들려오는 하나님의 응답은 이 세상에서 천만인이 우리를 돕겠다는 약속보다 더 뛰어나다. 주님을 꼭 붙들고 기도의 삶을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201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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