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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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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http://je333.com |
히브리서 3:1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목회를 준비하는 한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일대일 만남을 위해서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며 살아갔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이 행동이 올바른 것인가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대답을 얻기 위해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랍비는 그에게 물이 가득 들어있는 그릇을 주면서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마을을 돌고 오라고 했습니다. 신학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이 가득 든 그릇을 들고 마을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물이 가득 찬그릇을 가지고 마을 한 바퀴를 돈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마을 한 바퀴를 돌고 랍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랍비가 물었습니다. “이 그릇을 들고 마을까지 갔다 오는 동안 당신은 몇 번이나 하나님을 생각했습니까?” 신학생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합니다. “사실은 물을 흘릴까 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랍비가 말합니다. “물이 든 이 그릇 하나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도록 당신을 사로잡았지요?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의 정신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기억한다면 좋은 목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생각처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생각의 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된다고 생각하면 될 확률이 많습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될 확률이 많습니다. “나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이 바로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 불행이 더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됩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불평하는 쪽이 아닌 감사하는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3절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이런 말 많이 하십시오. “여보!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감사해요!” 부모님에게도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자녀들에게도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단다!”라고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성도는 목회자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교인들끼리는 서로 서로 생각할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감사가 나오게 되고, 얼마나 행복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믿는 사람의 가장 복된 모습은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모습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때로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찾아와도 자세히 보면 그것이 꼭 불행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신앙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생각을 잘하면 행복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공도 추구해야 합니다.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고 땀도 흘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혼자 만족하며 결국 사명을 이루는데 실패하는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초자연적인 기적도 사모하고 축복도 사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에는 기적도 있고 축복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본질이 아니고 부산물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일부분, 비본질, 부산물을 너무 좋아하면 그 신앙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기적과 성공과 축복을 깊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성공한 것 같아도 내용적으로 실패하는 삶이 됩니다.
어떤 일이든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섣불리 행하는 일에는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에 깊이 생각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러한 이치는 우리의 신앙 속에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보다 깊이 묵상하고 더욱 깊이 있는 기도 생활에 힘쓸수록 우리의 신앙은 뿌리깊게 자리잡아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깊이 깨닫고 알아야 할 많은 말씀과 교리와 규범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집중하여 깊이 있게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신, 구약을 관통하여 말씀의 핵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할까요?
1. 예수님을 좀 더 알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신앙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기에 힘썼습니다. 왜 사람들의 영혼이 약해집니까?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오늘날 점집이 성행합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강한 것 같지만 아주 약하다는 반증입니다. 특별히 오늘날에는 자녀 문제 때문에 약해지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작명소에 가서 그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했습니다. 그러면 작명소에서 어떤 얘기를 할까요? 작명소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름이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 자체보다는 자기의 인격을 걸고 이름값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작명소 소장은 참회와 자기 변화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없이 “이름이 잘못되었다! 이름을 바꿔라!”고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남편의 사업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무속인에게 가서 그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했습니다. 그러면 무속인이 뭐라고 말할까요? 역시 참회와 자기 변화에 관한 말은 거의 듣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사업체를 누르고 있는 귀신의 저주의 사슬을 풀기 위해서 귀신을 달래자고 굿을 한번 하자고 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말에 유혹될 수 있겠지만 가끔 보면 성도들조차 그런 유혹의 말에 빠지는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고난이 있다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름에 저주가 붙어 있다고 말하고, 조상귀신을 운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이름이 예쁘지 않아서 예쁜 이름으로 개명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주의 사슬을 풀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무속인들이나 점치는 분들에게 가면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40대에 한 번 큰 죽음의 고비가 있겠네. 그러나 그 고비만 넘기면 좋은 길이 열릴 거야.” 그런 말이 한 번 들리면 그 말이 저주처럼 평생을 맴돌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예 그런 말은 듣지도 말고 그런 말을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만나지도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만약 그 말을 믿음으로 물리치지 못하면 40대라는 10년 동안 문제와 사고를 만날 때마다 그 말이 연상되고 마음과 영혼이 심약해지게 되고 믿음의 원리를 저버리는 행동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왜 믿는 사람들이 그런 잘못에 빠지게 됩니까? 확신과 신뢰가 없고 구원받았다는 명찰만 달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왜 확신이 없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깊은 묵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사람은 그런 말이 넘어가지 않는 견고한 영혼이 될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좀 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면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깊이 생각하면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한 상사병에 걸릴 정도로 주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 교제를 통해 우리의 영적 무지와 영적 가난을 넉넉하게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좀 더 닮기 위해서입니다.
부부가 살다보면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를 계속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부모들을 닮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유전자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대상과 닮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주님을 닮게 됩니다. 그때 주님의 평안이 나의 평안이 될 것이며, 주님의 겸손이 나의 겸손이 될 것이고, 주님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4. 예수님을 좀 더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은 아마 우리를 사랑하는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두고, 일을 할 때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며 산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처럼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창조한 가장 귀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에게는 보다 큰 유익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얻게 되는 유익한 결과란 과연 무엇일까요?
1. 더욱 바른 믿음의 도리를 깨닫게 됩니다.
신학적 지식의 충성함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이 없어 신앙적 빈곤을 면치 못하는 사람, 많은 직분을 맡아 봉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뚜렷한 말씀의 진리와 믿음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잇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도리의 근본이신 예수님께(행16:31) 집중하지 못했기에 바른 신앙이 무엇이고 믿음을 가진 자가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깨닫지 못한 자들입니다. 진정 바른 믿음의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말씀의 도덕성이나 신비하고 능력 있는 기사와 행적, 혹은 말씀 안에 약속된 축복과 영광, 종말에 대한 예언들에 예수를 바로 알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창조자요 구원자이시며, 심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분의 가르치심과 행적들에 대해 깊이 묵상하여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바른 믿음의 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요5:39)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구원을 이루는 믿음이 무엇이며,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찌 살아야 하고, 그 믿음의 끝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셨고 몸소 보여주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했던 바를 가장 핵심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로 바른 믿음의 삶을 사시기 원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가 되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2. 더욱 진실하고 성숙된 신앙을 갖게 됩니다.
예수를 깊이 마음에 두고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여 그를 더욱 깊이 신앙하게 되는 첫걸음이 되며 더욱 성숙한 신앙의 단계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예수를 피상적으로만 아는 데서 그치고 감각적으로만 예수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얄팍하고 감각적이며 헛된 신앙인이 되기 쉽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감각적 느낌만으로 신앙이 있다 하는 자들은 그 감정의 변화와 함께 열정이 식어지고 믿음을 배반하게 되며(딤후4:10),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만을 가진 자들은 그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확고한 믿음이 없습니다. 또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쉽게 배격하거나 무분별하고 맹신적인 유치한 신앙을 갖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진실하고 성숙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보다 깊게, 보다 열심히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사실과 그 목적(갈1:4), 그리고 그 분이 이 땅에서 하신 모든 일과 전하신 모든 말씀,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또한 다시 오실 그분에 대해 항상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새길 때(살전5:23) 우리는 진정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진실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보다 진지하고 성숙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더욱 삶이 풍성하게 됩니다.
시편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느낍니다. '아! 어쩌면 이렇게 신앙적 감동이 생생하고 풍성한 삶의 단계에 있을 수 있을까? 어찌 이리도 삶의 구석 구석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알았을까?' 그렇습니다. 시편 한 편 한 편의 주옥같은 글은 말만 잘하는 글장이의 글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시편은 참된 신앙인의 삶이 어느 정도까지 복되고 풍성해질 수 있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 표본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풍성한 삶은 시편 기자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시48:9) 라고 고백한 시편 기자와 같이 어려울 때면 어려움 속에서 기쁠 때면 기쁨 속에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러한 생각 속에서 여러분의 삶은 폭과 길이와 깊이가 확장될 것이며, 주님 안에 있는 참된 기쁨과 무한한 은혜와 사랑, 한없는 축복을 발견함으로써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전7:14) 어려운 중에서는 위로와 능력의 주님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기쁨과 담대함을 얻고, 기쁜 중에는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생각하여 더욱 감사가 넘치도록 하며, 곤핍한 중에도 하늘의 축복과 영광을 소망하게 하시는 주님을 생각함으로써 진정 만족함을 얻는 풍성한 삶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이루어지길 빕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축복보다도 끊임없이 주님을 추구하고 생각하는 복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에는 결코 밤이 자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항상 주님을 깊이 생각함으로 주님을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닮고, 더 많이 기쁘시게 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나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얼마나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나요?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신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요?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을 무시하고, 내던져 버리면서까지 하나님을 따라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은둔하듯, 도피적인 신앙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당신은 왜 믿음이 그 정도밖에 안되냐고, 세상살이가 그렇게 좋으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오히려 격려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자기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긍휼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지, 우리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는 일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얼마나 하나님을 생각하시렵니까? 그 생각의 깊이와 폭을 확장시켜 나가는 하루가 됩시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 아닙니다.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예수님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 차게 됩니다. 시편 1편에도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좋은 성경 구절을 암기해서 언제나 묵상하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게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마 여러분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에게 있어 진정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인에게 있어 가장 귀하고 소중한 믿음의 도리를 보다 바르게 깨닫게 하시고, 더욱 진실하고, 성숙된 신앙을 갖게 하며, 풍성한 삶을 보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깊이 생각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의 헛된 쾌락과 물질, 세상의 영광만을 깊이 생각하며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멀리하고 있다면 그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바른 신앙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고로 이제 여러분의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집중하십시오. 그분의 행적과 말씀, 선하신 뜻을 깊이 생각하고 그에 따라 바른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기도: 주님! 주님의 영원성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혼잡한 생각과 무질서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 사실을 너무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주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친히 말씀하신 줄 믿습니다. 주님! 주님을 더 많이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무지함으로 신앙에 실패가 생기지 않게 하소서! 주님!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가난을 해결하는 길은 그 길뿐임을 알게 하소서! 주님! 주님을 더 많이 닮기를 원합니다. 풍랑 속에서도 주무시던 주님의 평안과 넉넉함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주님!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저희들 삶의 최대의 목적이요 사명이 되게 하소서! 이 세상 속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 더 많이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위엣 것을 생각하라
공자가 한번은 제자들과 산으로 산보를 갔습니다. 산중턱쯤 올라가니 어떤 여인이 묘 앞에서 땅을 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하도 애처로워서 우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이 묘는 남편의 묘인데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옆에 산소 둘이 또 있는 것을 본 공자는 그 묘는 누구의 묘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는 시아버지 산소이며 다른 하나는 시조부의 산소인데 모두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라고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시아버지도 시할아버지도 모두 호랑이한테 물려죽었다면 저 산 아래에 가서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이 여인은 “비록 호랑이한테 물려 죽을 망정 이 산에서 살지, 마을로 내려가고 싶지 않습니다. 마을이야말로 얼마나 추잡하고 불의가 판을 치는 곳인지 모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은 하늘의 나라와 땅의 나라 두 나라에 걸쳐서 삽니다.
어느 나라에 관심이 더 많으냐에 따라서 신앙의 정도가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발은 땅을 딛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각은 하늘에 두고 땅에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오히려 하늘보다는 땅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2)
2. 묵상 및 토의
0 예수님을 깊이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0 나는 평소에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 중 어느 쪽을 주로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까?
0 나는 다음세대를 생각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0 요즈음 나의 생각은 미래지향적인 생각입니까 과거지향적인 생각입니까? 믿음의 생각입니까? 악한 생각입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동물과 사람의 다른 점은 사람은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도 보고 느끼고 냄새를 맡고 반응을 합니다. 독수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넓게 봅니다. 개는 사람보다 훨씬 더 냄새를 잘 맡고 구별합니다. 닭이 모이를 보고 그것을 찍는 정확도는 사람이 따라갈 수 없습니다. 무슨 동물이든 사람보다 뛰어난 기능은 다 한가지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동물들이 사람에게 다스림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물들은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몸에 들어온 정보가 짧게 끊어져 있고 그것을 이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이 없이 살면 동물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예화(2): 진정 당신은 누구십니까 ?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천국 문에 이르자 문지기가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문지기가 말합니다. “내가 보니 당신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오. 당신 머릿속에는 예수님의 말씀은 별로 없고 온통 철학자의 지식으로 가득 차 있소. 당신은 철학자일지는 모르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니오.”
깜짝 놀라 꿈에서 깬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이후로 굳게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렇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답게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만 생각하리라.’당신은 어떤 생각들로 꽉 차 있습니까? 성공, 철학, 돈 그리고 온갖 세상 것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바로 그 욕망, 혼돈한 생각으로 인해 당신은 오늘 방황하며 힘들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무엇보다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순(四旬)의 계절’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그분을 배우며 닮아가는 계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예화(3): 생각의 중요성
대구 지방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청년이 회사를 퇴근하면서 평소 좋아하던 미스 김을 불러내어 '오늘 저녁 데이트를 해야지'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청년과 미스 김은 만나서... 어디에서 멋진 데이트를 할까 생각하다가 팔공산으로 드라이브를 가자 생각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 생각대로 팔공산에 가서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청년이 너무 과속으로 차를 몰아 그만 큰 사고를 내어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그 날 두 사람을 죽게 했을까요? 데이트를 하자는 생각. 팔공산에 가자는 생각. 신나게 달려 보자는 생각. 그 생각이 그 날..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성공과 실패.. 일상생활, 나아가 운명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생각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나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생각은 알과 같다' 고 했습니다. 비둘기 알과 같이 좋은 알을 품으면 마지막에 아름다운 비둘기를 까는 것입니다. 독사 알과 같이 악한 생각을 오래 품으면 마지막에 독사 새끼를 깝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알아서 우리의 생각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에는 크게 나누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에 속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땅에 속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면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고 했습니다. 위에 속하는 생각이 있고 땅에 속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더욱이 믿는 사람들에게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속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땅에 속한 생각이 무엇입니까? 가령, 분한 생각, 남을 미워하는 생각을 오래 하면 안됩니다. 물론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혹은 재정적으로 손해를 받을 때 마음속에 섭섭한 생각이 들어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분한 생각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오래 품으면 이것이 원한이 되면 미운 생각을 그냥 오래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나 스스로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겸손과 온유와 의와 청결한 마음 등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채워지기를 바랍니다.
4. 금언
0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좋은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그것 이 계속되지 않았을 뿐이다. 어제 맨 끈은 오늘 허술해지기 쉽고 내일은 풀어지기 쉽다. 나날이 다시 끈을 여미듯 사람도 결심한 일을 나날이 새롭게 해야 한다.(죤 스튜오트 밀)
0 마음에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0 사고(생각)는 행동의 씨앗이다.
0 인간의 가치는 그 소유물이나 지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격과 그 사람의 생각에 있다.
0 불행의 원인은 늘 나 자신에게 있다. 몸이 굽으니 그림자도 굽는다. 나 이 외에는 아무도 나의 불행을 치료해 줄 사람이 없다. 내 마음을 평안하게 가져라. 그러면 그대의 표정도 평화롭고 자애로워질 것이다.(파스칼)
0 좋은 음식이라도 소금으로 간을 맞추지 않으면 그 맛을 잃고 만다. 음식을 먹기전에 간을 먼저 보듯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 생각은 인생의 소금이다.(리턴)
0 늘 원대한 포부가 나를 인도하고 깊은 사상이 나의 행동을 인도하게 해야 한다. 조그마한 눈앞의 감정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얕은 생각이 나의 행동을 명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톨스토이)
5. 찬송: (94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자의 위로와 없는자의 풍성이며 천한자의 높음과 잡힌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2.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자의 강함과 눈먼자의 빛이시며 병든자의 고침과 죽은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3.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자의 정함과 죽을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4. 예수님은 누구신가 온 교회의 머리와 만국인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되고 우리 영광 되시네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목회를 준비하는 한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일대일 만남을 위해서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며 살아갔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이 행동이 올바른 것인가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대답을 얻기 위해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랍비는 그에게 물이 가득 들어있는 그릇을 주면서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마을을 돌고 오라고 했습니다. 신학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이 가득 든 그릇을 들고 마을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물이 가득 찬그릇을 가지고 마을 한 바퀴를 돈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마을 한 바퀴를 돌고 랍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랍비가 물었습니다. “이 그릇을 들고 마을까지 갔다 오는 동안 당신은 몇 번이나 하나님을 생각했습니까?” 신학생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합니다. “사실은 물을 흘릴까 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랍비가 말합니다. “물이 든 이 그릇 하나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도록 당신을 사로잡았지요?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의 정신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기억한다면 좋은 목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생각처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생각의 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된다고 생각하면 될 확률이 많습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될 확률이 많습니다. “나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이 바로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 불행이 더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됩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불평하는 쪽이 아닌 감사하는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3절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이런 말 많이 하십시오. “여보!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감사해요!” 부모님에게도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자녀들에게도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단다!”라고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성도는 목회자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교인들끼리는 서로 서로 생각할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감사가 나오게 되고, 얼마나 행복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믿는 사람의 가장 복된 모습은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모습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때로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찾아와도 자세히 보면 그것이 꼭 불행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신앙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생각을 잘하면 행복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공도 추구해야 합니다.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고 땀도 흘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혼자 만족하며 결국 사명을 이루는데 실패하는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초자연적인 기적도 사모하고 축복도 사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에는 기적도 있고 축복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본질이 아니고 부산물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일부분, 비본질, 부산물을 너무 좋아하면 그 신앙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기적과 성공과 축복을 깊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성공한 것 같아도 내용적으로 실패하는 삶이 됩니다.
어떤 일이든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섣불리 행하는 일에는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에 깊이 생각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러한 이치는 우리의 신앙 속에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보다 깊이 묵상하고 더욱 깊이 있는 기도 생활에 힘쓸수록 우리의 신앙은 뿌리깊게 자리잡아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깊이 깨닫고 알아야 할 많은 말씀과 교리와 규범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집중하여 깊이 있게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신, 구약을 관통하여 말씀의 핵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할까요?
1. 예수님을 좀 더 알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신앙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기에 힘썼습니다. 왜 사람들의 영혼이 약해집니까?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오늘날 점집이 성행합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강한 것 같지만 아주 약하다는 반증입니다. 특별히 오늘날에는 자녀 문제 때문에 약해지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작명소에 가서 그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했습니다. 그러면 작명소에서 어떤 얘기를 할까요? 작명소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름이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 자체보다는 자기의 인격을 걸고 이름값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작명소 소장은 참회와 자기 변화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없이 “이름이 잘못되었다! 이름을 바꿔라!”고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남편의 사업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무속인에게 가서 그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했습니다. 그러면 무속인이 뭐라고 말할까요? 역시 참회와 자기 변화에 관한 말은 거의 듣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사업체를 누르고 있는 귀신의 저주의 사슬을 풀기 위해서 귀신을 달래자고 굿을 한번 하자고 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말에 유혹될 수 있겠지만 가끔 보면 성도들조차 그런 유혹의 말에 빠지는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고난이 있다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름에 저주가 붙어 있다고 말하고, 조상귀신을 운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이름이 예쁘지 않아서 예쁜 이름으로 개명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주의 사슬을 풀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무속인들이나 점치는 분들에게 가면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40대에 한 번 큰 죽음의 고비가 있겠네. 그러나 그 고비만 넘기면 좋은 길이 열릴 거야.” 그런 말이 한 번 들리면 그 말이 저주처럼 평생을 맴돌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예 그런 말은 듣지도 말고 그런 말을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만나지도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만약 그 말을 믿음으로 물리치지 못하면 40대라는 10년 동안 문제와 사고를 만날 때마다 그 말이 연상되고 마음과 영혼이 심약해지게 되고 믿음의 원리를 저버리는 행동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왜 믿는 사람들이 그런 잘못에 빠지게 됩니까? 확신과 신뢰가 없고 구원받았다는 명찰만 달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왜 확신이 없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깊은 묵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사람은 그런 말이 넘어가지 않는 견고한 영혼이 될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좀 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면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깊이 생각하면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한 상사병에 걸릴 정도로 주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 교제를 통해 우리의 영적 무지와 영적 가난을 넉넉하게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좀 더 닮기 위해서입니다.
부부가 살다보면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를 계속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부모들을 닮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유전자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대상과 닮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주님을 닮게 됩니다. 그때 주님의 평안이 나의 평안이 될 것이며, 주님의 겸손이 나의 겸손이 될 것이고, 주님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4. 예수님을 좀 더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은 아마 우리를 사랑하는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두고, 일을 할 때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며 산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처럼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창조한 가장 귀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에게는 보다 큰 유익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얻게 되는 유익한 결과란 과연 무엇일까요?
1. 더욱 바른 믿음의 도리를 깨닫게 됩니다.
신학적 지식의 충성함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이 없어 신앙적 빈곤을 면치 못하는 사람, 많은 직분을 맡아 봉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뚜렷한 말씀의 진리와 믿음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잇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도리의 근본이신 예수님께(행16:31) 집중하지 못했기에 바른 신앙이 무엇이고 믿음을 가진 자가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깨닫지 못한 자들입니다. 진정 바른 믿음의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말씀의 도덕성이나 신비하고 능력 있는 기사와 행적, 혹은 말씀 안에 약속된 축복과 영광, 종말에 대한 예언들에 예수를 바로 알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창조자요 구원자이시며, 심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분의 가르치심과 행적들에 대해 깊이 묵상하여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바른 믿음의 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요5:39)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구원을 이루는 믿음이 무엇이며,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찌 살아야 하고, 그 믿음의 끝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셨고 몸소 보여주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했던 바를 가장 핵심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로 바른 믿음의 삶을 사시기 원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가 되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2. 더욱 진실하고 성숙된 신앙을 갖게 됩니다.
예수를 깊이 마음에 두고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여 그를 더욱 깊이 신앙하게 되는 첫걸음이 되며 더욱 성숙한 신앙의 단계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예수를 피상적으로만 아는 데서 그치고 감각적으로만 예수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얄팍하고 감각적이며 헛된 신앙인이 되기 쉽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감각적 느낌만으로 신앙이 있다 하는 자들은 그 감정의 변화와 함께 열정이 식어지고 믿음을 배반하게 되며(딤후4:10),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만을 가진 자들은 그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확고한 믿음이 없습니다. 또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쉽게 배격하거나 무분별하고 맹신적인 유치한 신앙을 갖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진실하고 성숙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보다 깊게, 보다 열심히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사실과 그 목적(갈1:4), 그리고 그 분이 이 땅에서 하신 모든 일과 전하신 모든 말씀,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또한 다시 오실 그분에 대해 항상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새길 때(살전5:23) 우리는 진정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진실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보다 진지하고 성숙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더욱 삶이 풍성하게 됩니다.
시편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느낍니다. '아! 어쩌면 이렇게 신앙적 감동이 생생하고 풍성한 삶의 단계에 있을 수 있을까? 어찌 이리도 삶의 구석 구석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알았을까?' 그렇습니다. 시편 한 편 한 편의 주옥같은 글은 말만 잘하는 글장이의 글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시편은 참된 신앙인의 삶이 어느 정도까지 복되고 풍성해질 수 있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 표본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풍성한 삶은 시편 기자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시48:9) 라고 고백한 시편 기자와 같이 어려울 때면 어려움 속에서 기쁠 때면 기쁨 속에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러한 생각 속에서 여러분의 삶은 폭과 길이와 깊이가 확장될 것이며, 주님 안에 있는 참된 기쁨과 무한한 은혜와 사랑, 한없는 축복을 발견함으로써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전7:14) 어려운 중에서는 위로와 능력의 주님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기쁨과 담대함을 얻고, 기쁜 중에는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생각하여 더욱 감사가 넘치도록 하며, 곤핍한 중에도 하늘의 축복과 영광을 소망하게 하시는 주님을 생각함으로써 진정 만족함을 얻는 풍성한 삶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이루어지길 빕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축복보다도 끊임없이 주님을 추구하고 생각하는 복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에는 결코 밤이 자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항상 주님을 깊이 생각함으로 주님을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닮고, 더 많이 기쁘시게 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나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얼마나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나요?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신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요?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을 무시하고, 내던져 버리면서까지 하나님을 따라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은둔하듯, 도피적인 신앙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당신은 왜 믿음이 그 정도밖에 안되냐고, 세상살이가 그렇게 좋으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오히려 격려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자기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긍휼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지, 우리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는 일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얼마나 하나님을 생각하시렵니까? 그 생각의 깊이와 폭을 확장시켜 나가는 하루가 됩시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 아닙니다.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예수님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 차게 됩니다. 시편 1편에도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좋은 성경 구절을 암기해서 언제나 묵상하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게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마 여러분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에게 있어 진정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인에게 있어 가장 귀하고 소중한 믿음의 도리를 보다 바르게 깨닫게 하시고, 더욱 진실하고, 성숙된 신앙을 갖게 하며, 풍성한 삶을 보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깊이 생각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의 헛된 쾌락과 물질, 세상의 영광만을 깊이 생각하며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멀리하고 있다면 그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바른 신앙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고로 이제 여러분의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집중하십시오. 그분의 행적과 말씀, 선하신 뜻을 깊이 생각하고 그에 따라 바른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기도: 주님! 주님의 영원성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혼잡한 생각과 무질서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 사실을 너무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주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친히 말씀하신 줄 믿습니다. 주님! 주님을 더 많이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무지함으로 신앙에 실패가 생기지 않게 하소서! 주님!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가난을 해결하는 길은 그 길뿐임을 알게 하소서! 주님! 주님을 더 많이 닮기를 원합니다. 풍랑 속에서도 주무시던 주님의 평안과 넉넉함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주님!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저희들 삶의 최대의 목적이요 사명이 되게 하소서! 이 세상 속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 더 많이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위엣 것을 생각하라
공자가 한번은 제자들과 산으로 산보를 갔습니다. 산중턱쯤 올라가니 어떤 여인이 묘 앞에서 땅을 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하도 애처로워서 우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이 묘는 남편의 묘인데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옆에 산소 둘이 또 있는 것을 본 공자는 그 묘는 누구의 묘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는 시아버지 산소이며 다른 하나는 시조부의 산소인데 모두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라고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시아버지도 시할아버지도 모두 호랑이한테 물려죽었다면 저 산 아래에 가서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이 여인은 “비록 호랑이한테 물려 죽을 망정 이 산에서 살지, 마을로 내려가고 싶지 않습니다. 마을이야말로 얼마나 추잡하고 불의가 판을 치는 곳인지 모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은 하늘의 나라와 땅의 나라 두 나라에 걸쳐서 삽니다.
어느 나라에 관심이 더 많으냐에 따라서 신앙의 정도가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발은 땅을 딛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각은 하늘에 두고 땅에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오히려 하늘보다는 땅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2)
2. 묵상 및 토의
0 예수님을 깊이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0 나는 평소에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 중 어느 쪽을 주로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까?
0 나는 다음세대를 생각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0 요즈음 나의 생각은 미래지향적인 생각입니까 과거지향적인 생각입니까? 믿음의 생각입니까? 악한 생각입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동물과 사람의 다른 점은 사람은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도 보고 느끼고 냄새를 맡고 반응을 합니다. 독수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넓게 봅니다. 개는 사람보다 훨씬 더 냄새를 잘 맡고 구별합니다. 닭이 모이를 보고 그것을 찍는 정확도는 사람이 따라갈 수 없습니다. 무슨 동물이든 사람보다 뛰어난 기능은 다 한가지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동물들이 사람에게 다스림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물들은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몸에 들어온 정보가 짧게 끊어져 있고 그것을 이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이 없이 살면 동물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예화(2): 진정 당신은 누구십니까 ?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천국 문에 이르자 문지기가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문지기가 말합니다. “내가 보니 당신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오. 당신 머릿속에는 예수님의 말씀은 별로 없고 온통 철학자의 지식으로 가득 차 있소. 당신은 철학자일지는 모르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니오.”
깜짝 놀라 꿈에서 깬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이후로 굳게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렇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답게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만 생각하리라.’당신은 어떤 생각들로 꽉 차 있습니까? 성공, 철학, 돈 그리고 온갖 세상 것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바로 그 욕망, 혼돈한 생각으로 인해 당신은 오늘 방황하며 힘들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무엇보다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순(四旬)의 계절’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그분을 배우며 닮아가는 계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예화(3): 생각의 중요성
대구 지방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청년이 회사를 퇴근하면서 평소 좋아하던 미스 김을 불러내어 '오늘 저녁 데이트를 해야지'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청년과 미스 김은 만나서... 어디에서 멋진 데이트를 할까 생각하다가 팔공산으로 드라이브를 가자 생각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 생각대로 팔공산에 가서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청년이 너무 과속으로 차를 몰아 그만 큰 사고를 내어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그 날 두 사람을 죽게 했을까요? 데이트를 하자는 생각. 팔공산에 가자는 생각. 신나게 달려 보자는 생각. 그 생각이 그 날..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성공과 실패.. 일상생활, 나아가 운명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생각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나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생각은 알과 같다' 고 했습니다. 비둘기 알과 같이 좋은 알을 품으면 마지막에 아름다운 비둘기를 까는 것입니다. 독사 알과 같이 악한 생각을 오래 품으면 마지막에 독사 새끼를 깝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알아서 우리의 생각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에는 크게 나누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에 속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땅에 속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면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고 했습니다. 위에 속하는 생각이 있고 땅에 속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더욱이 믿는 사람들에게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속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땅에 속한 생각이 무엇입니까? 가령, 분한 생각, 남을 미워하는 생각을 오래 하면 안됩니다. 물론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혹은 재정적으로 손해를 받을 때 마음속에 섭섭한 생각이 들어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분한 생각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오래 품으면 이것이 원한이 되면 미운 생각을 그냥 오래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나 스스로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겸손과 온유와 의와 청결한 마음 등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채워지기를 바랍니다.
4. 금언
0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좋은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그것 이 계속되지 않았을 뿐이다. 어제 맨 끈은 오늘 허술해지기 쉽고 내일은 풀어지기 쉽다. 나날이 다시 끈을 여미듯 사람도 결심한 일을 나날이 새롭게 해야 한다.(죤 스튜오트 밀)
0 마음에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0 사고(생각)는 행동의 씨앗이다.
0 인간의 가치는 그 소유물이나 지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격과 그 사람의 생각에 있다.
0 불행의 원인은 늘 나 자신에게 있다. 몸이 굽으니 그림자도 굽는다. 나 이 외에는 아무도 나의 불행을 치료해 줄 사람이 없다. 내 마음을 평안하게 가져라. 그러면 그대의 표정도 평화롭고 자애로워질 것이다.(파스칼)
0 좋은 음식이라도 소금으로 간을 맞추지 않으면 그 맛을 잃고 만다. 음식을 먹기전에 간을 먼저 보듯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 생각은 인생의 소금이다.(리턴)
0 늘 원대한 포부가 나를 인도하고 깊은 사상이 나의 행동을 인도하게 해야 한다. 조그마한 눈앞의 감정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얕은 생각이 나의 행동을 명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톨스토이)
5. 찬송: (94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자의 위로와 없는자의 풍성이며 천한자의 높음과 잡힌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2.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자의 강함과 눈먼자의 빛이시며 병든자의 고침과 죽은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3.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자의 정함과 죽을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4. 예수님은 누구신가 온 교회의 머리와 만국인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되고 우리 영광 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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