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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 2022.06.09 07:01:1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자기 집이 없으면
꾀꼬리라는 새의 이름은 필시 그의 울음소리에서 왔지 싶습니다. 꾀꼴 꾀꼴 우는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까지 덩달아 맑아집니다. 메마른 마음 위로 맑은 이슬이 똑똑 떨어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푸릇푸릇 상큼한 기운이 마음속으로 번져갑니다. 그 파장이 길고 아름답습니다. 왜 새들의 노랫소리를 울음소리라 하느냐고, 잘 들어보라고, 울음이 아니라 노래라고, 꾀꼬리는 우리 입에 습관적으로 배인 말을 돌아보게 합니다.
꾀꼬리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한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오래 전 강원도의 한 시골에서 살 때 만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가 일하는 담배 밭에서 만나 잠시 쉬고 있을 때 가까이서 꾀꼬리가 울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지금 저 새가 뭐라 했는지 아느냐고 제게 물었지요. 알 리가 없는 나는 신기한 눈빛으로 할머니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할머니의 대답이 재미있었습니다. “담배 먹고 꼴 베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고된 일을 하는 것이 새도 안쓰러웠겠지요, 쉬어가며 일하라 했다는 꾀꼬리가 고마웠습니다.
꾀꼬리는 노랫소리만 청아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 빛깔이 일품입니다. 온몸을 덮은 진한 노란색은 대번 눈에 띄는데, 머리와 가슴에 박힌 검정색이 노란 빛깔과 어울리며 기품을 뿜어냅니다. 녹음이 우거진 골짜기를 잠깐 사이에 지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되는 감탄사가 깁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강원도를 찾았다가 꾀꼬리 소리를 들었습니다.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그것이 꾀꼬리의 노래라는 것을 대번 알 수가 있었습니다. 숲에서 들려오는 많은 새들의 노랫소리 중에서도 얼마든지 구별이 되는 소리였으니까요.
꾀꼬리의 소리를 듣고 참으로 반가웠던 것은 올해도 꾀꼬리가 찾아왔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꾀꼬리의 노래를 듣는 것과 꾀꼬리가 숲 사이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무 곳에서나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텃밭에서 풀을 뽑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꾀꼬리가 찾아왔네. 꾀꼬리는 어디에서 겨울을 날까? 그리고 때가 되면 어떻게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올까?”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꾀꼬리가 신기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의 대답이 조금은 엉뚱했습니다. “어디선가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났겠지요. 여기서 지내다가 날이 추워지면 또 다시 따뜻한 곳을 찾아갈 테고요. 사람도 저 꾀꼬리처럼 자기 집이 없으면 어디서든 자유롭게 살 수가 있을 텐데...”
아내의 말이 현자의 말처럼 들렸습니다. 소유욕에서 벗어나면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을 터,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얽매여 있습니다. 우리를 붙들어 맨 것 중 소유, 혹은 소유욕만큼 강한 것이 또 무엇일까 싶었습니다.
더 큰 집을 갖기 원하고, 집값이 더 오르기를 기다리고, 집값이 오르면 좋아하고 떨어지면 한숨짓고, 그게 우리들의 삶이라면 다시 찾아온 꾀꼬리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일 일입니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202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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