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1213. 신앙이란 이름으로

한희철 | 2002.01.02 21:19:1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한희철1213. 신앙이란 이름으로

 

지난 해 여름에 있었던 일 두 가지 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있었던 서로 다른 일이지만 웬지 두 가지 일은 서로 나란한 기억이 되어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일이 있어 서울을 갔다가 내려 오는 길, 기차를 타러 청량리역으로 나왔는데 얼마간 시간이 남았습니다. 청량리역에서 가까이 있는 ‘다일공동체’에 전화를 했습니다. 아는 청년이 그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최일도 목사님이 전화를 받았고 목사님은 짧은 시간이더라도 꼭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뜻을 밝혔습니다. 언젠가 한번 우연히 만나 잠깐 인사를 드렸을 뿐 별다른 교분이 없었는데도 기억하며 만남을 첨 하는 일이 고마워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3층인가 4층 꼭대기의 더없이 허름한 집, 교회랄 것도 없는 허술한 공간이 다일교회였습니다. 교회는 건물로써가 아니라 신앙고백으로써 존재하는 것임을 새삼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최목사님을 비롯하여 다일공동체를 섬기는 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교회안으로 들어서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모든 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반가운 분이 왔으니 우리 인사드리자고 최목사님이 짧게 내 소개를 하며 인사를 청했습니다. 

꾸벅 머리를 숙여 같이 인사하려던 나는 순간적으로 그 일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고개만 숙인다든지, 악수를 한다든지 그런 인시가 아니라 큰절이었습니다.  

인사를 하려고 일어섰던 분들이 모두 바닥에 넓죽 엎드려 큰절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생각지 못할 뜻밖의 모습 앞에 엉겁결에 맞절을 함으로 겨우 당황함을 가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큰절로 인사를 하고, 나니 왜 그렇게 서로가 편하게 느껴지던지요. 어디 있지도 않던 벽 하나가 시원스레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여름, 서울의 한 교회 대학부에서 단강으로 수련회를 내려왔습니다. 청년들 밥을 해주러 따라온 몇몇 여선교회 분들이 예배당에 있는 의자를 치워 줄 수 있겠느냐는 것부터 이런 일 저런 일 몇 가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수련하러 왔다면 당연히 그들이 할 일 이었고, 사실 일철 나선 교우들로선 따로 시간을 낼 수가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나중에 도착한 나이 많은 여전도사는 교육 목사 숙소로 내 서재를 고집했는데, 그 요구가 하도 당당하여 마치 내방을 내가 쓰겠다는 투였습니다. 마침 대구에서 단강을 방문한 이가 있어 천상 그의 숙소가 서재가 되어야 함에도 그들은 조금도 양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용료를 낼텐데 당연하지 않냐는 투였습니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너무나도 분명한 담 하나를 높게 쌓고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이란 수련회를 마치며 은혜 베풀듯 전하는 사용료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앙이란 이름으로 단번에 막힌 담을 헐어 내기도 하지만 때때론 어이없는 담을 높게 쌓아 올리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은 기억 속에 나란히 자리하여 ‘신앙’ 이란 똑같은 이름으로 행해지는 서로 다른 두 결과가 얼마나 두렵고 치명적인 것인지를 조용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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