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292.약속을 지킨 종순이

한희철 | 2002.01.02 21:19:1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한희철292.약속을 지킨 종순이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나갔더니 종순이 할머니께서 종순이와 함께 나와 있었다. 벌말에 사는 친척네를 가신다 하는데 일곱 살 종순이가 따라나선 것이다. 지난 성탄절 때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은 목도리를 두른 것이 참 예쁘다. 나는 며칠 전 지나간 할머니 생신을, 할머니는 나의 득남을 서로가 축하했다.
제법 추운 날씨, 시간이 지났는데도 차가 오지 않는다. 대충 정해져 있을 뿐 하루 예닐곱대 다니는 버스가 늦기도 잘하고 어느 땐 시간보다 빨리 지나가버리기도 한다. 차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할머니가 종순이 예기를 하셨다.
지난번 언젠가 밤에는 종순이가 할머니 할아버지 계시는 방으로 건너와 두 분더러 누우라 하더니 팔이며 다리를 주무르기도 하고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평소에 안하던 일을 하더라는 것이다. 어쩐 이유인가 물었더니 교회에 목사님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줬다 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며 우리가 감사드려야 할 분이 누구인가 같이 얘기하다가 그 중 부모님 사랑도 큰 것이니 오늘 밤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팔다리를 시원하게 주물러드리고 안마를 해드리며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종순이가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할머니가 자기 얘기를 하자 부끄러워 목을 움츠리고 뒤돌아선 종순이. 예배시간 승호랑 까불고 떠든다고 종순이가 모든 걸 안 들었던 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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