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1194. 메주 만들기

한희철 | 2002.01.02 21:19:1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한희철1194. 메주 만들기

 

성탄절이 지나며, 놀이방이 겨울방학에 들어가며 올해도 메주를 쑤었다. 올해로 3년째, 해마다 이맘때면 시작되는 일이다. 

동네 콩 중에서 그중 잘된 콩을 사들였다. 처음 시작한 때 두 가마였던 것이 제는 다섯가마로 양이 늘었다. 얼마간 양을 더 늘여도 소화는 하겠지만 지금으로 선 다섯가마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치인듯 싶다. 

아침 일찍부터 여선교회 회원들이 모여 콩을 씻고, 가마솥을 있는 대로 걸고 불을 때기 시작했다. 그래도 모자라 김영옥 속장님네 솥에도 콩을 삶는다.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바쁘다. 뗄감을 마련하기 위해 작실로 올라갔다. 다행히 올해는 규성이네 담배 조리실 뜯을 때 나온 나무들을 쓰기로 했다. 

진왕근씨가 휘발유를 넣어 자동으로 자르는 톱을 가지고 와 수고를 해주었다. 일일이 손으로 자르는 것에 비하면 훨씬 쉬웠다. 

이상근 집사님이 트럭을 가지고와 나무를 날랐고, 정은근 집사님과 광철씨가 손으로 지게질로 나무를 옮겼다. 

놀이방 안에 메주 걸이를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 김남철씨가 공사할 때 쓰는 나무들을 빌려 층층이 사다리처럼 만들고 사이사이 나무들을 가로질렀다. 굵다란 철사줄로 동여 맸고 몇 개 버팀목을 고였다. 지난해, 달린 메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부러지는 바람에 하마트면 메주를 보러 들린 지집사님이 큰일 날뻔한 적이 있는지라, 더욱 꼼꼼하게 튼튼하게 만들었다.

메주를 만드는 틀도 새로 만들었다. 해마다 부론교회 것을 빌려 썼는데 이번엔 재목을 구해 우리 것을 만들었다. 부론교회 것이 메주 다섯개를 박도록 만들어진 것에 비해 두개씩 박도록 만들었다. 조기원 씨가 정성으로 만들어 주었다. 

잔뜩 흐린 날씨, 오후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겨울에 내리는 비는 몸보다도 마음을 춥게 만든다. 가마솥 마다에선 파란 연기와 하얀 콩김이 펑퍼짐히 빗속으로 피어올랐다. 

다 익은 콩을 퍼내어 곱게 이기고, 이긴 콩을 다시 놀이방으로 올려 네모난 틀에 박아 메주를 만들고, 짚으로 메주를 엮어 메주걸이에 걸고. 개미 역사하듯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선교회 회원의 대부분이 연로하고 병약한 분들, 콩을 들어 옮길 때마다 허리들이 휘청 거렸다. 

“내년부턴 못허겠어유. 당체 콩을 들 힘이 읍는 걸유” 그중 열심인 이필로 속장님이 탄식을 한다. 사실 모두의 형편이 그렇다 그나마 시골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그것이고, 그것이 서로에게 유익하여 하긴 하지만 실은 너무 벅차다. 

지난해만 해도 서울 용두동교회에서 전량을 기꺼이 사 주어 거기서 나온 수익금으로 선교사업을 했고, 그것이 큰 기쁨임을 확인했지만 생각과 현실은 점점 더 거리가 멀어져 간다. 

이 고생을 해서 만드는 메주. 메주에 쏟는 교우들의 지극한 정성. 겨울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고생하는 교우들을 바라보며 순간 순간 눈물겨웠다. 

겨우 마련한 얼마간의 기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찾으려고 하는, 이 고생을 담보로 선한 일을 계획하는 지순한 마음들.

정말 더는 힘이 없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메주는 밤이 늦도록 한장 한장 만들어졌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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