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615.거름

한희철 | 2002.01.02 21:19:1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한희철615.거름


고추를 심는다며 변 관수 할아버지가 밭에 거름을 폅니다. 지난해 당근을 심었다가 씨값도 못 건진 밭, 이번엔 제대로 심어야지, 닭똥 거름을 폅니다.
훅 꼬부라진 허리, 풀풀 날리는 파뿌리 머리, 일흔 넘은지가 별써 여러해, 지난 겨울 잘 넘기실까 조심스럽던 할아버지가 며칠째 밭에 나와 닭똥 거름을 펴고 있습니다.
“올해 까정만 짓구 내년엔 남 줄라요.”
해마다 반복해온 얘기를 올해도 반복합니다.
괭이 한번 헛 짚으면 고꾸라질 것 같은 모습으로 쌓인 거름을 골고루 펼쳐내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렇게 당신 스스로가 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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