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840.침

한희철 | 2002.01.02 21:19:1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한희철840.침


마을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치료의 수단은 침입니다. 웬만한 증세엔 침부터 맞습니다. 침부터 맞아보고 그래도 안 나으면 그제야 병원을 찾는 것입니다.
옛부터 서민 생활 속에 침이 뿌리를 내린 탓도 있겠고, 아직도 시골에선 정서적으로 침이 더 친근하게 여겨지고 있는 탓도 있겠습니다.
하기사 병원은 너무 멀고 복잡합니다. 접수하고 기다리고 찾아가 약타고 돈내고, 여간 신경 안 써가지곤 제대로 진료받기도 어렵고, 자칫 무식한 시골 노인네로 박대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를 들이대면 속이 다 보이는 신식 기계도 신기하지만, 머리 허연 노인네가 지긋이 눈을 감고 지맥을 하고 이런 저런 처방을 내리는 게 더 효험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고된 일이 끊이지 않는 농촌생활, 허리, 어깨, 팔다리, 무릎 등이 쑤시고 아플 때가 많은데 오히려 그런 통증엔 몇대 침을 맞는 게 일단은 눈에 띄는 효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데 골짝 어느 노인네가 침 잘 놓더라, 용하더라 소문이 나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그곳을 찾아 나서게들 됩니다.
속회예배를 마쳤을 때 침 얘기가 나왔고, 교우들은 돌아가며 침을 통해 본 효험들을 얘기했습니다. 얘기가 끝나갈 즈음, 가만히 얘기를 듣고만 있던 허석분 할머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교회 댕긴 뒤로부턴 하나님이 고쳐 줄줄 믿구 사람들이 침 맞으러 가재두 난 안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할머니가 갖는, 어찌보면 절대의 믿음. 할머니의 얘기를 다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한편 할머니의 지극하고 단순한 믿음이 은근히 부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얘기마을1992)

댓글 쓰기

목록 삭제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