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없을 때 못하면 있어도 못한다

한희철 | 2003.04.04 09:20:0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2071 없을 때 못하면 있어도 못한다

 

지난 여름은 곳곳에서 일어난 물난리로 어려움이 많았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물난리 소식들은 여느 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극심한 재난 그 자체였는데, 비슷한 기간에 독일은 독일대로 큰 물난리를 겪었다. 과학이 발달하고 물질문명이 발달했다는 이 세상에서 폭우로 인해 인간의 삶이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을 보면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자연 앞에 겸허한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교만한 것인지를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물난리로 어려움을 겪는 고국의 수재민들을 생각하며 같이 마음을 모으기로 했다. 한 주 날을 정해 '사랑의 헌금'을 드리기로 했다. 그동안 속회에서는 속회헌금을 지역의 선교를 위해 사용해 왔던 터라, 뜻이 있는 속은 속회별로도 동참하기로 했다.
모두가 정성으로 동참을 했고 드린 헌금을 어디로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의논하는 시간, 홍장로님이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우리가 한국사람으로 고국의 수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가 발붙여 살고 있는 독일의 수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독일 내에 있는 한인교회가 독일의 수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은 아름답고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냐는 지적에 모두가 공감을 했다.
우리가 드린 헌금에 교회에서 세워놓은 사회봉사부 예산을 합해 한국과 독일의 수해지역으로 보내기로 했다. 한국에는 수해지역 중 그 중 극심하게 피해를 입은 강릉지방 앞으로 보내기로 했고, 독일지역은 독일감리교회 감리사님께 자문을 구해 보내드리기로 했다. 따로 비율을 정하지 않고 똑같은 액수를 보내기로 하여 한국과 독일에 각각 1,000Euro 씩의 헌금을 보낼 수가 있었다.
당장 교회의 씀씀이를 살펴보면 급한 일이 여럿이다. 건물 구입에 따른 상환금이 매달 5,000여 Euro씩 지출되어야 하고, 필요한 교육기자재도 있고, 필요한 비품들도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는 일이 마땅할지 모른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서 늘 깨닫는 것이 있다. 없다고 못하면 있어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넉넉해지면 하겠다는 이야기는 대개가 핑계일 뿐이다. 넉넉해지면 넉넉해진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씀씀이가 생기는 법이다. 예배당 건물을 지으면 교육관을 지어야 하고, 그런 뒤 교회버스를 사고, 또한 수양관을 마련하고, 공원묘지를 구하고… 언제나 교회 안에 새로운 목표가 생겨 주변을 돌아보기가 어려워진다.
'어려울 때 못하면 있어도 못한다'는 말을 감당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러기에 더욱 지켜가야 할 일이라 여겨진다. (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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